진급률 낮아지고 점심시간도 줄고…증권사들 흉흉해진 분위기
입력 2022.12.29 07:00|수정 2022.12.29 09:59
    "점심시간 빠듯하니 커피는 테이크아웃"
    사원→대리 진급 누락되기도…"이례적"
    주니어 "말로만 들었지 직접 위기 겪으니 당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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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경영환경 악화에 증권사들의 근무 분위기에도 한파가 불고 있다. 인원 감축은 물론, 저연차의 진급 여부를 엄격하게 따지고, 출퇴근 시각·점심 시간 그리고 연차사용이나 수당지급까지 통제하는 모습들이 나타나고 있다. 과거 불황과 위기를 겪어보지 못한 저연차 직원들일수록 이번 한파를 더욱 뼈저리게 체감한다는 평가도 나온다. 

      최근 일선 증권사 직원들에 따르면 최근 유동성 호황시기때 누리던 넉넉한(?) 점심시간이 '원상복귀'된 점이 화제가 되고 있다. 

      증권사들은 경기침체·금리상승·고환율 등의 각종 대외변수로 실적 감소에 직면하자 근태부터 통제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경기가 좋을 때는 점심에 오랜 시간 자리를 비워도 '돈을 잘 벌어오니 괜찮다’는 암묵적인 관행도 줄어드는 추세라는 것. 한 운용사는 2시간까지 늘어난 점심시간이 최근 1시간으로 줄어들어 식사 후 커피 마시는 시간이 빠듯해졌다는 후문이다. 

      따로 회사에서 점심시간을 단축하라는 지시가 없더라도 직원들이 먼저 나서 줄이기도 한다. 한 증권사 프론트 담당 직원은 "일찍 나가고 늦게 돌아오는 직원들을 윗선에서 아니꼽게 보기 시작해 다들 눈치를 보고 있다"며 "점심시간뿐 아니라 장 마감 이후에도 쉽사리 퇴근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다"고 전했다.

      근무일수ㆍ연차사용 등에 대한 강압(?)도 슬슬 가해지는 분위기다. 일부 증권사에서는 "본인도 모르게 '연차 사용 처리'가 되어 있더라"든가, "회사에서 노무수령거부 통지서를 일괄적으로 돌렸다"라는 흉흉한 얘기도 들려오고 있다. 직원이 근무한 날에 회사가 연차를 사용한 것으로 처리하고, 이에 대해 노무수령거부 통지를 하게 되면 직원은 비록 근무를 했다고 해도 연차수당을 요구할 수 없게 된다.

      일부 대형 증권사를 중심으로 승진과 임금 관리도 깐깐해지고 있다. '보릿고개'를 넘기 위해 인건비부터 줄이며 비용을 절감하려는 움직임이다.

      한 대형 증권사는 올해 사원에서 대리로 진급하는 비율을 줄이기로 결정했다. 지난해는 대부분 사원이 대리로 진급했으나 올해는 그 비율이 70%까지 줄어든 것으로 전해졌다. 내부에서는 '푼돈'마저 줄이려한다며 아쉬움을 토로하고 있다.

      일괄 연봉제 도입을 추진하거나 희망퇴직 신청을 받는 대형 증권사도 나타났다. 한국투자증권은 일부 호봉제로 남아있던 직군을 일괄 연봉제로 바꾸기 위해 제도 개편을 추진하자 일부 직원들의 반발도 나오고 있다. 

      KB증권은 최근 1982년생 이상 정규직 직원을 대상으로 2년 만에 희망퇴직 신청을 받았다. KB증권은 회사의 인력구조를 개선하고자 자발적으로 희망퇴직을 실시한다는 입장이다. 다른 증권사들도 본격적으로 인력 감축을 실시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제기된다. 

      세대별로 침체된 금융업계 분위기를 체감하는 정도는 다르다는 목소리다. 최근 10년 동안 금융위기를 겪어본 적 없는 2030 세대에게 이번 위기는 상대적으로 더 크게 다가온다는 평가다.

      한 증권사 저연차 직원은 "코로나19가 터졌을 때도 초반에는 잠깐 위기의식이 있었지만, 오히려 주식투자 열풍이 불고 저금리에 신규 투자 자금 수요가 늘며 증권사는 호실적을 이어갔다"며 "'겪어보지 못한 세대'로서 아무리 계약직이 노동유연성이 크다지만 진짜로 잘릴 수 있을 거라 생각 못했고, 이렇게까지 상황이 어려워질 줄은 몰랐기에 날벼락을 맞은 느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고 말했다.

      반면, 고연차 직원들은 '지금 시기를 버티면 살아남는다'는 태도를 보이기도 한다. 이들은 20여년 전 동아시아 금융위기, 10여 년 전 서브프라임 모기지사태·유럽 재정 위기 등 시장의 여러 굴곡을 겪고 이겨낸 경험이 있다. 위기에서 버틸 '체력'을 기를 수 있었다는 평가다. 아울러 험난한 시기에 버티고 살아남게 되면 향후 호황기가 도래할 때 승진ㆍ연봉인상 그리고 선호하는 업무 배정 등에서 많은 기회를 받게 된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는 것. 

      또 일부 직원들은 아예 적극적으로 이번 기회에 희망퇴직을 전략적으로 활용할 의향도 내비쳤다. 한 증권사 부장급 인사는 "몇 년 치 임금을 보상금으로 받고 생활지원금·전직지원금까지 지원 받으니 오히려 목돈을 받고 쉬면서 재취업할 좋은 기회라 생각한다"며 "주위에 능력 있고 평소에도 타사에서 '러브콜’을 받던 분들이 희망퇴직을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