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제로' 선언한 금융사들...탄소배출 포트폴리오 조정 '발등의 불'
입력 2023.01.04 07:00
    탄소배출 데이터 측정 등 기본모델은 구축
    탄소배출량 기준 포트플리오 조정이 과제
    실질 감축이 관건…구체적 실행 단계 돌입
    • (그래픽 = 윤수민 기자) 이미지 크게보기
      (그래픽 = 윤수민 기자)

      국내 금융사들이 2023년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의 일환으로 탄소배출량 감축을 시급한 과제로 꼽고 있다. 단순히 금융사 내부 차원의 감축을 넘어, 기존에 투자한 자산 포트폴리오의 탄소배출량을 줄이는 것이 아젠다다. 데이터 측정 및 관리 등 기본적인 모델은 구축해뒀지만 구체적인 실행 전략을 세워두는 것이 관건이 될 전망이다. 

      최근 KB금융은 ESG 위원회를 열어 2022년 한 해 실적 성과를 평가하고 새해 계획을 수립하는 시간을 가졌다. 최근 기업체를 중심으로 2050년까지 ‘탄소 넷제로(탄소 순배출량 0)’를 선언한 가운데 금융사들 역시 ESG 관련 조직을 만들어 일반기업을 대상으로 컨설팅에 나서고 있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 금융사들은 투자한 자산 포트폴리오를 탄소배출량 기준으로 분류하고 점진적으로 배출량이 많은 자산은 줄여나가는 모델도 구축 중이다. 

      기업 활동으로 발생하는 탄소 배출은 성격과 측정 범위에 따라 3가지로 분류되는데, 금융회사의 경우 일반기업과 다른 기준이 적용되고 있다. 직·간접 탄소 배출량인 유효범위(Scope) 1~2 외에 기업 외부에서 발생하는 Scope 3의 경우 금융회사는 보유 자산 포트폴리오의 탄소 배출 기여도를 측정해 장기적인 감축 목표를 설정해야 한다. 

      국내에서는 4대 금융그룹을 포함해 10개 이상 금융사가 이미 탄소회계금융(PCAF)이 제시한 가이드라인에 참여하고 있다. 해당 가이드라인은 채권과 대출, 프로젝트금융(PF)과 부동산, 모기지, 자동차 대출 등 금융사 자산을 6가지로 분류해 각각 탄소배출량 산정 공식을 제시하고 있다. 

      KB금융은 국내 금융사 중에선 최초로 지난 2021년 3월 PCAF에 가입해 7월 자산 포트폴리오 내 탄소 배출량을 산정해 공개한 바 있다. 지난해 '기후변화 대응(TCFD)' 보고서를 발간해 자산 포트폴리오 탄소배출량(Scope 3)을 2030년까지 33.3% 감축해 단계적으로 2050년 중 탄소중립을 달성하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신한금융 역시 지난 3월 PCAF 가이드라인에 맞춰 여신과 투자 등 그룹 금융자산에서 발생하는 탄소를 측정하는 금융배출량 측정 시스템을 개발했다.

      이렇듯 작년부터 산업은행, 수협은행, 기업은행 등 국책은행은 물론, 신한 및 KB금융 등 대형 금융사들은 관련된 기본 모델 구축에 힘써왔다. 금융사가 투자한 자산의 탄소배출량을 감축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인 배출량 측정 및 데이터 관리 등이 필수 요소다. 이제 남은 과제는 이 같은 측정 모델을 더욱 고도화하고 구체적인 실행 전략을 구축하는 것이다. 

      국책은행 제외 국내 금융지주들 중에서는 KB금융과 신한금융이 가장 앞서있다는 평가다. 외부 컨설팅을 통한 장기적인 목표를 수립하고 이를 위한 실행전략 수립에도 적극적이라는 의견이다.

      한 회계법인의 ESG 관련 파트너는 “금융사들이 ESG 관련 10년 중장기 목표는 세워뒀지만 이제는 이를 어떻게 현실화할지 고민하고 있는 단계”라며 “예로 탄소배출량을 줄인다고 재무제표상 실적이 좋은 투자자산의 비중을 마구잡이로 줄일 수는 없고 투자 수익성 등 여러 요소를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실행 단계에서 고민이 많을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금융사들로서는 탄소배출량 감축 등 ESG 경영이 이제는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어가고 있다. 미국과 유럽 등 이미 글로벌 시장에서는 해당 움직임이 본격화되고 있다. 특히 외부 자금 조달이 필요할 경우 ESG 경영 성과가 중요한 핵심 지표가 될 수 있다는 의견이다. 

      컨설팅업계 한 관계자는 "유럽은 물론 미국까지 기업의 ESG 전략 대응을 강하게 주문하고 있는 만큼 국내 금융사들도 자체 평가 모델을 구축해야 시장 대응이 가능해질 것"이라며 "내년 이후 금융사 ESG 전략이 디지털 전환 못지 않은 역량으로 자리매김할 것으로 본다"라고 말했다.

      국민연금이 향후 석탄기업과 관련한 투자 제한 방안을 확정할 계획을 세워두고 있는 점도 여타 금융사들로서는 적지 않은 부담이 될 전망이다. 국민연금은 2022년 석탄투자 배제 기준과 관련한 용역연구를 마쳤고, 조만간 기금운용위원회에서 관련 상세 기준을 수립할 계획이다. 

      현재까지 석탄 매출 비중을 기준으로 석탄 투자 배제 기준을 수립한 금융기관은 AIA생명, 삼성화재, 한국투자증권, 미래에셋증권 등 네 곳이다. 이에 국내 시중은행들 역시 국민연금의 상세 기준 발표안에 따라 석탄투자 제한 움직임에 속도가 붙을 가능성이 크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금융사들이 외부 투자 유치를 계획하는 경우나 주주 관리 필요성이 점점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전반적인 탄소배출량 감축 및 포트폴리오 자산 조정이 중요 기준으로 작용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