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 올라갈 자리가 없다"…PEF 인력유지 핵심될 승계 전략
입력 2023.01.05 07:00
    시장 성숙하는 동안 창업주 입지는 여전히 공고
    소수 전문가 조직 성격상 신분 상승 여력 제한적
    버섯형 인력 구조 부담…기존·신규 인력 잡기 고민
    상장·지분 및 이익 분배·운용사 신설 등 다양한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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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올해는 국내에 사모펀드(PEF) 제도 도입 후 가장 어려웠던 시기로 기록될 전망이다. 투자 및 회수, 자금 모집 어느 하나 쉽지 않았고 성과급 잔치를 벌이기도 어려웠다. 운용사의 창업자나 초기 멤버들과 달리 비임원 직원들의 고민은 커질 수밖에 없다. 

      위로 올라갈 구멍은 좁은데 옆으로 떨어져 나오기에도 시장 분위기가 여유롭지 않다. PEF들이 이번 위기를 지나 다시 성장하기 위해서는 기존 인력들을 계속 묶어둘 수 있는 당근과 승계전략을 갖추는 것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국내 주요 운용사의 인력 구조는 이른바 '버섯형'(?)으로 변해가고 있다. 임원들은 많은데 한참 일할 쥬니어가 상대적으로 적다. 시장에 진입해 자리를 잡은 곳들은 핵심 창립 멤버의 이탈이 드물고 아직도 현역으로 뛰기에 나이가 많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함께 오래 일한 직원들도 하나둘 직급이 올라가 임원이 되고 있다. 소수의 전문가가 일하는 PEF의 특성상 인력을 공격적으로 늘리지 않는다. 일찍 합류해 몇 손가락 안에 드는 입지를 선점한 직원 외엔 수년간은 위로 올라갈 기회를 잡기 쉽지 않다.

      창업자 라인이 공고할수록 젊은 직원들은 다른 직장으로 이직하려는 모습을 보인다. 

      이에 운용사들 사이에선 최근엔 대졸 신입사원이나, 경력이 3년을 넘지 않는 젊은 피를 수혈하려는 움직임이 늘고 있다. 특히 바로 일을 시킬 수 있는 투자은행(IB)이나 컨설팅 경력직을 선호하는 경향이 강하다.

      올해 경쟁사에서 주니어 직원을 여럿 뽑은 외국계 운용사 관계자는 “직원에게 이직을 한 이유를 물어보니 위로 올라갈 가능성이 너무 안 보여서 나왔다고 했다”며 “버섯 모양의 인력 구조가 가장 안 좋은데, 위에 있는 사람들이 예전처럼 역동적으로 일하기 어렵다는 점도 문제”라고 말했다.

      PEF 시장에선 투자 인력을 유지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 기껏 키운 인력이 나가거나 경쟁사에 빼앗기면 유무형의 타격이 크기 때문에, 남을 명분을 만들어 주는 것이다. 유수의 글로벌 PEF들은 대부분 상장 및 이사회 경영을 통해 승계를 이어가지만 한국에서는 벤처캐피탈(VC) 외에 그런 사례가 드물다. 스틱인베스트먼트가 상장 모회사에 흡수합병된 후 기존 이름을 계속 활용하는 우회상장 유사한 방식으로 증시에 입성한 바 있다.

      운용사의 지분을 나눠주는 방식은 실행하기 쉽지 않다. 조단위 펀드 운용사의 한 임원은 1% 미만의 지분을 사는 데 10억원 이상의 자금을 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주주가 되면 사내 입지는 강화하겠지만 이 정도 현금을 마련하는 것은 쉽지 않다. 업력이 쌓이고 자산이 늘어날수록 운용사의 지분은 비싸진다.

      당장 지분 분산이 어렵다면 성과 배분을 늘리는 방안도 고려할 만하다. MBK파트너스는 올해 구주 및 신주 13%를 다이얼캐피탈에 12억달러를 받고 팔았는데, 이중 일부 자금은 내부 분배에 활용했을 것이란 시각이 있다. 올해 B사의 대표와 경영진은 자신들이 가져갈 보수를 줄여 아래 직원들에 줄 금액을 늘리기도 했다. 다만 성과보수만으로 모두를 잡을 수는 없다. C운용사의 부대표는 대표보다 많은 성과급을 수령하는 등 입지가 탄탄했지만, 더 많은 돈을 제시하는 곳이 나타나자 바로 자리를 옮겼다.

      스카이레이크인베스트먼트는 핵심 인력 중심의 지배구조를 일찌감치 만들었다. ‘진대제 펀드’ 이름대로 창업주가 전권을 갖는 구조였는데, 2019년 그 아래에 스카이레이크에쿼티파트너스를 만들어 중층 구조를 짰다. 신설 회사 자본금 1억원 중 절반은 스카이레이크가 대고, 나머지는 3명의 핵심 임원이 나눠 냈다. 이후 신설 회사가 투자 및 회수 활동을 도맡으며 4명의 파트너에 부가 돌아가는 구조가 됐다.

      크레딧펀드 운용사 설립도 한동안 유행처럼 이뤄졌다. 본체에는 철옹성 같은 선배들이 많지만, 크레딧펀드 쪽으로 옮겨가면 바로 한 손에 꼽히는 위치를 갖게 되기 때문이다. 당분간은 크레딧펀드 결성도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고금리 시대에 수익률을 맞추기 어렵고, 출자자(LP)들의 시선도 곱지 않기 때문이다. LP들은 한국 PEF 시장의 운용 전략이 다변화됐다기 보다는 그들끼리의 승계와 분배를 위해 크레딧펀드를 꾸린다는 인식이 강하다.

      한 국내 PEF 운용사 임원은 “PEF의 임원은 머리가 굵을수록 자기가 LP와 친하고 거래도 직접 하는데 왜 사장 돈을 벌어다주냐는 불만을 갖게 될 수 있다”며 “덩치가 커진 운용사들은 지분을 차기 세대에 나눠주기 쉽지 않아 크레딧펀드처럼 새판을 짜는 경우가 많았는데 LP들은 이를 임원들을 잡기 위한 시도라고 보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