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어난 재무부담에도 투자계획 지키는 롯데…조달 루트 확보가 관건
입력 2023.01.19 07:00
    기존 사업 수익성 악화·신사업 모색 등 과제
    재무부담 확대에 신성장동력 모색도 '가시밭길'
    비주력 매각·메리츠와 협업 등 조달루트 중요해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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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롯데그룹의 올해 주요 과제는 '기존 사업 강화와 신성장 동력 발굴'이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최근 열린 상반기 사장단회의(VCM)에서 이를 강조했다. 결국 중요한 건 대규모 투자 자금을 어떻게 마련하느냐다.

      롯데건설 유동성 지원, 일진머리티얼즈 인수대금 마련 등 그룹 전반의 재무건전성 체력은 저하되는 중이다. 이는 신사업 주체가 될 계열사들의 조달 여력에도 영향을 미친다. 롯데그룹은 비주력 사업을 정리하거나 새로운 금융 파트너를 찾는 등 다양한 조달 루트를 찾는 데 매진하고 있다. 

      신동빈 회장은 상반기 사장단회의에서 기존 사업의 이익 체력을 보강함과 동시에 신성장 동력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지난해 롯데그룹이 발표한 투자계획과 궤를 같이한다.

      당시 롯데그룹은 향후 5년간 37조원을 기존 사업과 신사업에 투자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롯데케미칼의 고부가 스페셜티 사업과 범용 석유화학 사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설비 투자와 생산 증설과 수소와 전지소재 사업 강화(9조원) ▲롯데백화점의 대규모 복합몰 개발과 기존 지점 리뉴얼, 롯데마트의 특화매장 확대(8조원) ▲바이오, 모빌리티 등(10조5000억원) 등이 주요 내용이다.

      그 필요성에 대해 시장은 모두 공감하는 분위기다. 롯데그룹은 신 회장이 언급한 '상시적 위기'에 실제로 직면해있다. 주력 사업의 두 축인 화학사업과 유통사업 모두 수익성 악화에 직면했다. 지난해 주요 기업들이 신사업에 대한 갈피를 잡기 시작했지만 롯데그룹은 결단을 내리는 데 상대적으로 속도를 내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단 평가다.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롯데그룹은 투자계획을 수정하거나 철회하는 움직임은 전혀 없는 상태다. 다만 롯데가 기한 내 신사업 투자계획을 달성할 수 있을지에 대해선 의문이 제기된다. 기존에 영위하던 사업들의 재건에만 주력해도 재무부담이 상당한 까닭에서다.

      그룹은 지난해부터 계열사의 유동성 대응을 돕기 위해 전사적으로 자금 지원을 해오고 있다. 최근까지도 롯데건설의 프로젝트파이낸싱(PF) 유동화증권 매입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롯데정밀화학 등 계열사들이 6000억원 규모 후순위 대출에 참여했다. 후순위 대출은 선순위에 비해 리스크가 크다. 롯데그룹 계열사들 사이에선 "돌려받을 순 있을까"라는 우려섞인 말도 나온다.

      투자 계획 이행 과정에서 다른 계열사가 자금조달 여력이 약화되는 모습도 나타난다. 롯데케미칼이 배터리 소재 사업에 진출하기 위해 일진머티리얼즈의 지분 53.3%를 약 2조7000억원에 인수하는 계약을 체결하면서 롯데케미칼을 비롯, 롯데렌탈, 롯데캐피탈, 롯데쇼핑 등 계열사들의 등급 전망이 '부정적'으로 조정됐다. 롯데렌탈과 롯데캐피탈은 한 노치만 떨어지면 A급으로 떨어진다.

      이는 롯데렌탈을 필두로 한 모빌리티 사업 전개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평가다. 롯데그룹은 롯데렌탈이 주체가 돼, 8조원을 투입해 전기차 24만대를 도입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국기업평가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기준 롯데렌탈의 현금성자산은 4280억원 수준을 기록했다. 2021년 상장을 하면서 공모자금을 수혈, 재무 부담이 경감되긴 했지만, 연간 1조원을 상회하는 렌탈자산 투자와 쏘카 지분 매입 등으로 인해 차입금이 5년새 1.5배가량 늘어났다. 외부 자금 조달이 불가피하다.

      롯데렌탈은 2012년 이래 해마다 공모채를 발행해왔고 곧 1500억원 수준의 공모채 발행을 위한 수요예측에 나선다. 신용등급은 'AA-'로 우량 회사채 수요가 회복 국면 상태에서 발행 자체가 어렵진 않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롯데케미칼의 투자 부담이 꾸준하게 확대될 가능성이 큰데 롯데렌탈 등 계열사들의 신용등급이 롯데케미칼과 무관하지 않다는 점에서 장기적으론 리스크가 될 수 있다. 특히나 신동빈 회장의 장남인 신유열 상무가 롯데케미칼에서 신사업을 도맡아 경영보폭을 넓히고 있어 당장 롯데케미칼의 투자 계획이 수정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

    • 불어난 재무부담에도 투자계획 지키는 롯데…조달 루트 확보가 관건

      롯데그룹도 재원 마련 관련 고민을 거듭하고 있는 분위기다. 일각에선 계열사 지분 일부를 매각해 자금을 마련하는 안도 거론된다. 전례가 있다. 2019년 롯데지주가 롯데카드와 롯데캐피탈 지분 매각으로 1조9000억원을 마련했고 지난해엔 호텔롯데가 보유 중인 계열사 롯데칠성음료 지분 3%가량을 처분해, 380억원을 확보하기도 했다.

      최근엔 롯데케미칼이 보유하던 PTA(고순도테레프탈산) 생산 판매 자회사인 LCPL(LOTTE CHEMICAL Pakistan Limited) 지분 전량을 파키스탄 화학기업에 매각해 1924억원을 현금화했다. 해당 자금은 지난해 공언한 대로 고부가 스페셜티 소재 사업 강화에 쓰인다는 설명이다.

      투자업계도 롯데그룹의 자금 수요에 주목하고 있다. 메리츠금융그룹이 롯데그룹과 1조5000억원 규모 공동펀드를 조성해 롯데건설을 지원키로 한 것이 시발점이었다. 물론 메리츠금융그룹과 맺은 투자협약 규모는 롯데건설이 당장 직면할 유동화증권 만기를 차환할 때 모두 소진되는 수준이지만, 장기적으론 두 그룹이 우호적인 관계를 형성해 새로운 기회를 노릴 수 있게 됐다는 평가다.

      향후 롯데그룹에서 '먹거리'가 쏟아질 가능성도 크다. 신사업 투자재원 마련을 위해 회사채 시장에 문을 두드리거나 증시가 회복될 경우 주식시장을 활용할 복안 등이 거론된다. 롯데그룹의 지배구조 개편 중심에 서있는 호텔롯데도 IPO 시장이 회복되면 상장을 본격 추진할 계획이라는 전언이다.

      한 증권업계 관계자는 "메리츠증권은 타 대형 증권사들처럼 기업금융(IB) 관련 부서가 없어서 당장 롯데그룹의 조달 업무를 모두 담당하진 못하겠지만 장래에 확대할 수도 있는 부분"이라며 "증권사들 사이에선 현대차그룹이나 삼성그룹처럼 현금 보유량이 많은 기업보단 롯데그룹처럼 위기에 직면한 기업이 소위 '알짜'로 꼽히기 시작한 분위기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