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F 뇌관 건들면 다 터져"…사라예보 총성 직전 빼닮은 한국 금융시장
입력 2023.01.20 07:00
    취재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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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1914년 6월28일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의 황태자 부부가 보스니아 사라예보를 시찰하던 중, 한 세르비아인 청년에게 암살당했다. 사라예보 사건은 1차 세계대전의 직접적인 원인으로 꼽힌다. 그런데 이 사건이 아니었어도 전쟁은 언젠가 터질 거였다. 삼국동맹, 삼국협상 등 당시 유럽 내 군사동맹은 시한폭탄이 달린 수많은 거미줄이 얽히고설킨 상태였다.

      사라예보에서 총성이 울리자 도미노처럼 선전포고가 이어졌다. 오스트리아가 세르비아에 선전포고를 하자 세르비아의 동맹인 러시아가 오스트리아에 선전포고를 선언했다. 그러자 오스트리아 동맹인 독일이 러시아의 동맹인 프랑스에 선전포고를 했고 프랑스의 동맹인 영국, 영국의 동맹인 일본이 독일에 선전포고를 했다. 수많은 부비트랩이 터지는데 누구도 멈출 수도, 멈출 생각도 하지 않았다.

      최근 시장 관계자들은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리스크에서 시작된 현 금융시장의 위기를 사라예보 사건이 발생하기 전의 모습과 유사하다고 얘기한다.

      십여년전 있었던 PF 위기 땐 실제로 누군가가 희생됐다. 몇몇 건설사들과 저축은행들이 자취를 감췄다. 그렇게 절연시킴으로써 시스템 전반으로 위기가 확산되는 걸 막았다. 지금은 그렇지 않다. PF 주체는 금융사들이고 이들의 관계는 서로 얽히고설켜 있어 어디서부터 매듭을 풀어야 할지 확실치가 않다.

      금융당국 일각에서는 가장 문제가 큰 곳들을 정리해야 한다는 의견들이 있었다고 한다. 사전 차단으로 경제 전체에 PF발 위기가 전이되는 것을 막자는 취지였다. 하지만 청와대를 위시한 정부가 부동산 시장의 연착륙을 강조하며 ‘누구도 죽을 수 없는’ 상황이 됐다. 한국 자본시장이 선진화한 만큼 연관성이 높아져 절연 자체가 어렵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그만 두고 싶어도 마음대로 그만 둘 수 없는 시대다.

      크레딧업계 관계자는 "이미 국내 대형증권사들의 국제 신용등급에는 한국 정부의 지원 가능성이 반영 돼 몇 노치 높게 책정돼 있는 상태"라며 "그만큼 증권사들이 한국 금융시장 내 존재감이 커졌다는 것을 방증하고, 대형 증권사를 중심으로 각 금융기관이 연결돼 있어 PF발 위기 상태에서 정부가 쉽사리 절연에 나서기 어렵다"고 전했다.

      수많은 위기를 겪으면서 금융시장도 그에 대응하며 끊임없이 개선되고 있다. 하지만 금융시장마저 '초연결 사회'가 되면서 작은 오류에도 크게 뒤흔들리는 불안정성은 더 높아졌다. 시중은행, 대형증권사의 대마불사(大馬不死)가 아니라 말 자체를 죽일 수 없는, 비효율성이 높아졌다는 걸 지금의 PF 리스크 사태에서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