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官)은 '옳고 그름'만 치(治) 한다? '처음 보는 금융당국'
입력 2023.01.25 07:00
    취재노트
    지난해 지주 회장 인선 둘러싼 논란 '용두사미'
    금융당국, '옳고 그름'만 판단...제한적 압박
    영업 및 이익환원 대해선 전방위적 개입 단행
    "여러모로 처음 보는 유형의 금융당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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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NK금융지주 사태에서 시작해 농협금융지주로 불 붙고, 우리금융지주로 번진 금융권 '관치'(官治) 논란이 묘한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다. '실세' 금융당국이 금융회사의 지배구조에 강력하게 개입하고 있지만, 시비(是非)의 판단에 그칠 뿐 인사(人事)로 이어지는 이전의 관치와는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금융회사를 정책의 완성을 위한 수단으로 강력하게 활용하면서도, 지배구조와 관련해선 옳고 그름만 판단하는 '새로운 관치의 유형'에 국내 주요 대형 금융회사들은 아직 적응을 하지 못하고 있는 눈치다.

      BNK금융지주 이사회는 19일 빈대인 전 부산은행장을 신임 BNK금융지주 회장 후보로 추천했다. 빈 후보는 1988년 부산은행에 입행해 2021년 4년간의 부산은행장 임기를 마칠 때까지 33년간 부산은행에서만 일했다.

      BNK금융지주는 지난해 관치 논란에 가장 먼저 휘말린 조직이었다. 김지완 전 회장의 사퇴 이후 금융당국이 '회장 선임 절차에 외부 후보 문호를 넓히라'고 주문하면서다. 회장 자격에 나이 제한이 없다는 점이 부각되며, 과거 국민의힘 계열 정권과 연이 있는 올드보이나 모피아(옛 재무부 관료 출신)가 회장직을 장악하는 게 아니냐는 의혹이 퍼졌다.

      지난 12일 회장 최종후보군(숏리스트)이 발표되며 이런 관치 의혹은 불식됐다. 전ㆍ현직 부산은행장 두 명과 부산 출신으로 은행과 증권 경영을 두루 해본 외부인사 한 명이 후보로 꼽힌 까닭이다. '현 정권에 기여한 내정자가 있다'는 소문은 힘을 잃었다.

      최근 금융권 초미의 관심사인 우리금융지주 회장직 선정 절차 역시 마찬가지다. 우리금융지주 이사회는 19일 회의를 열고 내부 5명, 외부 3명 총 8명의 회장 후보군(롱리스트)를 확정했다. 경영승계 프로그램에 따라 당연직으로 포함되는 내부 후보군과 이동연 전 우리FIS사장 등 내부 후보와 다름없는 외부 인사를 제외하면, 사실상 추가된 후보는 임종룡 전 금융위원장과 김병호 전 하나금융그룹 부회장 정도다.

      임종룡 전 금융위원장은 손태승 현 회장이 금융위원회에서 라임펀드 관련 중징계가 확정된 직후부터 거론되던 인물이다. 이사회 내 과점주주 일부가 선호하는 후보이며, 현 정권과의 연결고리 등 정치적 색채는 옅다. 김병호 전 부회장은 금융지주 회장 외부 후보에 단골로 오르는 인물로, 이미 지난해 12월에도 신한금융지주 회장직 면접을 고사한 바 있다.

      물론 NH농협금융지주는 상황이 좀 다르다. 윤석열 대선캠프 영입 1호이자 대통령직 인수위원, 박근혜 정부 시절 국무조정실장을 지낸 이석준 회장이 최근 취임했다. 현직 금융지주 회장 중 가장 정치적 배경이 짙은 인물로 꼽힌다.

      다만 금융권에서는 이번 회장 선임을 '찍어서 보내기'식 낙하산과는 다르다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농협중앙회와 NH농협금융지주 측에서 먼저 이 회장의 배경을 원했다는 것이다. 농협 측이 현안 해결을 위해 '영입'했다는 게 외부의 해석이다.

      최근 농협의 현안 중 하나는 '1인자'인 중앙회장의 연임 가능 여부다. 현재 농협법은 중앙회장의 임기를 4년 단임제로 제한하고 있다. 현재 전라도 지역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을 주축으로 임기를 연임제로 바꾸는 방안이 추진되고 있는데, 주무부처인 농림축산식품부는 부패 가능성 등을 이유로 적극적으로 움직이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인사 개입의 강도는 약하지만, 판단은 강했다. 

      BNK금융지주와 우리금융지주 회장 재선임을 앞둔 지난해 말, 금융당국의 방침은 명확했다. BNK금융지주의 내부 인사 우선승계 원칙은 잘못됐고, 우리금융지주의 현재 지배구조 역시 문제가 많아 수술이 불가피하다는 것이었다. BNK금융은 외부에 문호를 개방해 더 많은 후보군 중 회장을 뽑아야 한다는 입장이었고, 우리금융지주는 손 회장이 일단 징계를 받아들이고 연임에 나서지 않아야 한다는 방침이었다. 이를 미리 감지한 금융권 일각에선 손 회장의 용퇴를 일찌감치 기정사실화하기도 했다.

      한 금융권 고위 관계자는 "현재 금감원은 '문제가 있다, 없다'의 판단을 내리고, 문제가 있다면 고쳐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며 "시비(是非)의 판단은 하되 이후의 전개는 이사회에 맡긴다는 점에서, 솔직히 검사 출신 금감원장의 업무 스타일이 느껴진다"고 말했다.

      지배구조만 따지면 그렇지만, 영업방침이나 주주환원까지 시야를 넓히면 관치라는 꼬리표를 떼어내긴 쉽지 않다는 평가다. 예금 및 대출 금리에 대한 적극적인 개입, 프로젝트파이낸싱(PF)에 이어 브릿지론까지 은행이 떠안도록 유도하고 있는 부동산 연착륙 정책, 은행의 이윤 중 국민 몫을 고민해야 한다는 발언까지 영업 및 이익환원에 관련한 '관치'는 이전을 초월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다른 금융권 관계자는 "은행 이익의 3분의 1은 구성원에게, 3분의 1은 주주에게 줬다면 나머지는 금융소비자에게 돌려줄 생각을 해야한다는 말이 공식 석상에서 나올 줄은 몰랐다"며 "여러모로 처음 보는 유형의 금융당국"이라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