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아닌 주관사 갑질 논란도…"터질 것이 터졌다"
"잔여주식 배정 관련 모호한 규정부터 손봐야" 평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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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모든 증권사가 그런 건 아니지만, 수요예측이 끝나고도 딜 클로징 하기 전에 기관들로 하여금 추가 청약 의사나 공모가 가격 수정 의사를 묻는 전화가 많이 온다. 그런데 이게 유독 빈번하던 증권사가 몇몇 있다. 큰 딜을 쥐고 있는 증권사면 이에 응하지 않기가 어렵다" (한 운용업계 관계자)
기업공개(IPO) 딜을 주관하는 증권사와 공모에 참여하는 기관투자자(이하 기관) 사이에 잡음이 일기 시작했다. 한창 IPO 시장이 활황을 띄던 시기, 기관들은 공모 물량을 조금이라도 더 배정받고자 주관사와의 관계에 공을 들여왔고 그 덕에 수익을 크게 올려왔다.
그러나 증시 부진에 공모주 투자 수익률이 저조해지며 상황이 달라지고 있다. 일부 기관들은 일부 대형 증권사들이 수요예측 이후 추가청약을 요구하는 분위기에 압박을 느꼈다고 입을 모은다. 빅딜(Big Deal) 공모 물량을 많이 배정받기 위해선 울며 겨자먹기로 참여할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한다. 증권사들은 난색을 표하는 분위기다.
27일 기준, 지난해 증시에 입성한 기업의 61% 정도가 마이너스(-)인 공모가 대비 주가 등락률을 기록했다. LG에너지솔루션 이후 6개월 만에 유가증권시장에 입성한 수산인더스트리(-30%)를 비롯, 2차전지 관련주로 관심을 한몸에 받았던 WCP(-23.7%)도 이에 포함된다. 유니콘기업(기업가치 1조원 이상)으로 주목받던 쏘카(-32.4%)도 증시 부진 여파를 견뎌내는 중이다.
이같은 분위기에 딜을 주관하는 증권사와 공모주 투자기관들 사이에선 볼멘소리가 오고간다. 각측의 입장을 정리해봤다.
금융위원회(이하 금융위)는, '증권 인수업무 등에 관한 규정'에 따라 배정 후 잔여주식이 나오면 기타 청약자에게 배정하도록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있다. 다만 해당 규정이 다소 모호한 까닭에, 미청약된 배정물량에 대해선 수요예측에 참여한 기관에 한해 공모가액을 기준으로 대표주관사에 추가청약을 할 수 있는 것으로 해석돼오고 있다. 증권업계 관계자들은 "이같은 추가청약은 통상적으로 이뤄져 왔다"고 설명한다.
문제는 빅딜을 자주 주관하는 증권사에게 추가청약 요청 연락이 오면 거절하기 쉽지 않다는 것이다.
일례로 한 대형 증권사가 기관들로 하여금, 흥행이 다소 어렵다고 평가되던 IPO 딜 수요예측에 대한 참여를 독려하며 향후 있을 딜에 대한 물량 추가 배정을 약속했다는 이야기가 회자된다. 업계 관례상 용인될 수 있는 수준의 영업이나, 배정물량에 예민한 기관 입장에선 다소 '갑질'로 느껴질 수 있는 부분이란 평가다.
특히 지난해 다수의 딜을 수임하며 ECM 리그테이블 주관 1위를 점한 KB증권이 자주 설화에 휩싸이고 있다. 최근 KB증권이 WCP 수요예측 이후 기관들을 대상으로 희망공모가 상향조정을 요청하며 향후 있을 딜에 추가 배정물량을 약속하는 듯한 언급을 했다는 언급이 기관들 사이에서 나왔다. 공모가를 높게 책정해 수수료를 더 많이 받으려는 의도가 아니냐는 지적이 있다.
다만 KB증권은 이런 지적이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KB증권 측은 공모가가 6만원으로 결정됐으니 추가 청약을 원하는 기관들로 하여금 그 가격을 기준으로 참여의사를 물은 것이라고 해명했다.
공모주 투자 수익률이 저조해지자 기관들의 태도가 변했다는 평이 짙다. 일각에선 자본시장을 움직이는 동력이 자기이익인 까닭에 기관들이 상황에 따라 태도를 바꾸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다수의 사모펀드들이 공모 물량을 대거 배정받은 뒤 처분하는 방식으로 고수익률을 내는 경우가 많았다. LG에너지솔루션 수요예측을 앞두곤 기관들이 주관사를 대상으로 물량을 추가로 배정받기 위해 영업을 나서기도 했다.
한풀 꺾어버린 시장 분위기에 증권사들도 움직임을 줄이는 모양새다. 공모가 수준을 낮추고자 고군분투하기도 한다. 발행사 설득이 어려울 경우, 운용사 펀드매니저들과의 미팅을 통해 객관적인 평가를 받을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하는 등의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한창 IPO 딜 수임을 위해 공격적으로 나서온 한 대형증권사는 몸집을 줄여나가며 재정비에 나선 상태다.
한 투자업계 관계자는 "IPO 시장이 꺾이면서 자연스레 나타나는 상황으로 보여진다"라며 "다만 이 모든 건 다소 모호한 금융위원회의 가이드라인 때문인 것으로 판단되며 이를 확실히 해두는 것이 필요해보인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