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관투자가 상당수 반대 나선듯
현대백화점 알짜자산 한무쇼핑 떼내는 부담
뒤늦은 환원책도 주주 마음 돌리기엔 역부족
인적분할 추진 기업에 상당한 영향 미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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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두 개의 지주회사체제로 전환해 지배구조개편을 꾀하던 현대백화점그룹의 청사진이 꼬였다. 임시주주총회에서 특별결의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며 지배구조개편의 첫 스텝인 인적분할이 무산했고, 현대백화점은 결국 지주사 전환 계획을 전면 철회했다.
알짜 자산으로 분류되는 한무쇼핑을 사업회사에서 떼내면서 지배구조개편에 대한 주주들의 실익이 줄어들 것이란 우려, 인적분할이 결국엔 오너의 지배력 강화 목적으로 비쳐졌다는 점이 패인으로 꼽힌다. 회사 측은 강하게 부인했으나 투자자들에겐 궁극적으로 사실상 계열분리를 염두에 둔 사전 작업으로 받아들여지면서 지배구조개편의 동력을 잃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뒤늦게 발표한 주주환원책도 주주들의 표심을 돌리기엔 역부족이었다.
10일 열린 현대백화점의 임시 주주총회 결과 인적분할 안건에 찬성한 주주는 66.4%로 특별결의 요건인 동의율 66.7%에 1.7%포인트 미달하면서 결국 안건은 부결됐다. 현대백화점의 최대주주(정지선 회장)을 비롯한 특수관계인의 지분율은 약 36%이고, 국민연금이 8%를 보유한 주요주주이다. 국민연금은 지난달 말 현대백화점 주식보유 목적을 단순투자에서 일반투자로 변경하면서 적극적인 주주권 행사를 예고한 바 있다.
현대백화점은 이에 대해 "시장의 우려를 고려해 신중하게 추진했던 분할 계획과 주주환원정책이 주주분들께 충분히 공감받지 못한 점에 대해 심심한 사과의 말씀을 올린다"며 "향후 인적분할을 통한 지주사 체제 전환 계획은 없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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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현대백화점 인적분할 과정에서 최대 쟁점은 연간 2000억원 규모의 현금을 창출하는 알짜 회사 한무쇼핑을 사업회사가 아닌 지주회사 아래 위치시킨다는 점이었다. 사실 인적분할 이후 오너일가가 사업회사(현대백화점)의 주식 전량을 현물출자해 지주회사(현대백화점홀딩스)의 지분을 취득한다면 지배력 강화의 효과를 기대할 수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캐시카우인 한무쇼핑을 기존 현대백화점 자회사에서 떼어내 지주회사 아래에 위치시킨다는 것은 결국 대주주에게 가장 유리한 구조라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사실 현대백화점이 한무쇼핑을 떼어내는 것은 공정거래법상 지주회사 행위제한 요건을 고려했다는 설명이다. 한무쇼핑이 현대백화점 자회사, 즉 현대백화점홀딩스의 손자회사로 위치하게 되면 투자 활동에 제약이 생기게 된다. 현대백화점은 이 같은 배경을 고려했지만 결과적으로 주주들을 설득하진 못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국내 한 기관투자가는 "캐시카우인 한무쇼핑을 지주회사에 두면 현대백화점의 배당 이익이 줄어들 것이란 우려가 나오면서 주주들의 이익을 침해하는 인적분할란 평가가 나왔다"고 했다.
지난달 말 글로벌의결권 자문사 ISS도 기관투자가들에게 반대의사를 표시할 것을 권고하기도 했다. 현대백화점의 주식을 보유한 기관투자가는 105곳 정도, 25%가량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이 같은 논란 속에 현대백화점은 이달 초 인적분할후 현대백화점홀딩스가 갖게 될 자사주를 소각하고, 향후 배당금 총액(240억원)을 보장하겠단 환원책을 발표했다. 자사주 소각은 주가 부양을 위한 가장 효과적인 방안으로 평가받는다. 그러나 현대백화점의 주가는 10년 간 최저점에 근접한 시점, 일단 분할에 성공한 이후 자사주 소각이란 효과를 장담할 수 없는 미봉책이 주주들에게 와닿지 않았을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투자은행(IB) 업계 한 관계자는 "그동안 주주환원에 인색하다는 평가를 받아온 회사가 분할을 위한 주주총회를 앞두고 발표한 환원책에 진정성이 있다고 보긴 어려웠다"며 "주주환원책을 장기적으로 꾸준히 강화하겠단 의지라기보단 분할에 대한 우려를 잠재우기 위한 임시방편으로 비쳐졌다"고 말했다.
이번 지배구조개편이 사실상 오너일가의 지배력 강화, 이를 통한 추후 계열분리를 위한 작업으로 비쳐졌다는 점도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인적분할 계획 발표 당시부터 회사는 계열분리 가능성은 선을 그었지만, 사실 현재의 지배구조상 언젠가는 계열분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끊임없이 제기돼 온 것이 사실이다.
이번 인적분할 안건의 부결로 인해 현대백화점의 불확실성이 다소 해결되면서 긍정적인 효과도 있단 평가도 나온다. 회사가 주주들의 반발에 부딪히며 실패를 맛본만큼 향후 보다 주주친화적인 정책이 등장할 수 있다는 기대감도 있다.
국내 신용평가사 한 관계자는 "한무쇼핑을 비롯해 자회사로서 이익창출력이 뛰어난 점포들이 있는데 분할 이후 사업기반이 줄어드는 부담이 있다는 우려를 불식할 수 있게 됐다"고 평가했다.
정부의 물적분할과 재상장을 통한 지배구조개편 제재를 전후로 현대백화점을 비롯한 다수의 기업들이 인적분할을 통한 방식으로 지주사 체제 전환을 추진해 왔다. 물적분할에 비해 주주권이 상대적으로 보장될 것이란 평가도 있지만, 인적분할 또한 자사주의 마법을 비롯해 대주주에 유리한 장치들이 마련될 수 있다는 점이 부각하기 시작하면서 이번 현대백화점 지주사 전환 무산이 지배구조개편 추진 기업들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지켜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국내 증권사 IB부문 관계자는 "기업의 인적분할에 대한 연기금이나 외국인투자자들의 반대 의견이 두드러지면서 현대백화점을 이어 인적분할을 계획하고 있던 기업들의 긴장감도 고조하기 시작한 분위기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