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만, 창업주 '1세대' 중 첫 퇴진…상징적 사건
플랫폼의 '엔터 주도권' 기로…카카오 대응 나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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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브가 SM엔터테인먼트(이하 SM) 인수에 나서면서 국내 엔터업계에 지각변동이 예고됐다. ‘SM경영진-카카오’와 ‘이수만-하이브’가 각각 연합 전선을 꾸린 가운데 카카오가 추가 대응에 나설지 주목된다. 이번 경영권 분쟁은 국내 엔터-플랫폼 업계 전반의 변화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하이브는 지난 10일 SM의 최대주주인 이수만 전 총괄 프로듀서의 지분 14.8%를 인수한다고 밝혔다. 다음달 1일까지 공개매수를 통해 25%의 지분을 추가로 확보하면 하이브는 SM 지분 약 40%를 보유하게 된다. SM 주가는 공개매수 가격(12만원)을 넘나드는 등 변동성이 커졌다.
카카오는 앞서 SM 지분 9.05%를 확보해 2대 주주에 오르기로 했다. 하이브보다 더 높은 가격을 제시해 공개매수에 나서려면 부담이 작지 않다.이 총괄은 SM 상대로 신주 및 전환사채 발행금지 가처분을 신청했는데, 법원이 이를 인용하면 하이브가 SM을 인수하는 것으로 경영권 분쟁이 일단락될 가능성이 크다.
이번 거래는 표면적으로는 SM 한 회사의 경영권 분쟁이지만, 국내 엔터업계 전반의 전환점을 시사한다는 평이다.
이수만의 퇴진은 국내 주요 엔터사의 ‘1세대’ 창업자가 손을 뗀 첫 사례다. 하이브의 등장 이전 ‘3대 엔터사’의 자리를 지켜온 SM, JYP, YG 모두 회사명이 창업주의 이니셜일 정도로 창업주의 영향력은 절대적이다. 산업 특성상 개인의 판단과 감이 중요하게 작용하다보니 ‘회사=창업주’ 공식이 유효했다.
이수만은 1952년생으로 3대 기획사 창업주 중 가장 연장자다. 몇 해 전부터 ‘넥스트’에 대한 질문이 나왔는데 업계 특성상 승계가 쉽지 않았다. 아들 이현규씨가 소녀시대와 엑소의 노래를 작곡하기도 했지만 본격 경영에 관심을 두진 않았고, 이수만도 자녀에게 회사를 물려줄 생각은 크지 않다고 알려졌다. 현 경영진 이전, 보아의 일본 매니저 출신인 '개국공신' 김영민 총괄 대표가 이수만의 오른팔로 회사를 이끌었지만 이수만을 '대체할' 인물이 보이지 않았던 것은 사실이다.
이수만의 지분 매각설을 꾸준히 이어졌다. 과거 KB자산운용이 라이크기획 이슈를 공론화하고, 강도 높은 국세청 세무조사가 이어지는 등 부담이 컸기 때문이다. 다만 CJ, 카카오 등과 매각 협상은 지지부진했고, 하이브에는 팔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해 왔다. 하이브는 작년부터 대형 증권사의 도움으로 공개매수를 통한 SM 인수를 검토했으나 가격과 이사회 장악 가능성 등을 두고 고심하다가 무산됐다고 전해진다.
이번에는 이수만이 먼저 손을 내밀면서 ‘이수만-방시혁’의 의기투합이 전격 이뤄졌다. 행동주의 펀드의 공격도 촉매제가 됐지만 이수만의 처조카인 이성수 공동대표와 매니저부터 시작한 ‘SM맨’ 탁영준 공동대표가 필두인 SM 경영진이 이수만에게서 등을 돌린 것이 결정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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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경영권 분쟁은 엔터테인먼트 IP(지식재산권) 비즈니스에서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한 거대 플랫폼사들의 경쟁이 본격화하는 계기가 될 전망이다.
국내 IP 엔터 플랫폼 시장은 현재 ‘네이버+하이브+YG엔터+CJ ENM’ 진영과 ‘카카오엔터테인먼트’로 나뉜 상황이다. 여기서 SM엔터가 결국 어느 쪽에 속하게 되느냐가 이번 거래의 핵심이다. 네이버는 CJ ENM의 3대 주주고, 하이브와 팬쉽 플랫폼 위버스도 공유하고 있다. SK텔레콤은 카카오엔터 모회사 카카오와 3000억 규모 지분 맞교환을 한 바 있다. 카카오엔터는 사우디 국부펀드 투자금을 실탄 삼아 글로벌 진출을 본격화하려는데, 2000억원을 투자한 SM엔터 경영권이 경쟁사로 넘어가게 될 난처한 상황이다.
글로벌 확장이 가장 큰 숙제인 거대 플랫폼사들 입장에서 엔터 IP 확보에 사활을 걸어야 한다. 나스닥 상장 등을 목표로 한다면 더욱 그렇다. 과거 카카오엔터가 SM 인수에 관심을 보였던 것도 미국 현지 시장에 갔을 때 ‘카카오’는 몰라도 ‘케이팝’은 알기 때문이다. SM이 더해지면 훨씬 설명이 수월할 것이고, 이름값과 IP를 근거로 기업가치 상승에도 여러모로 득이 된다는 계산이 따랐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카카오의 대응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도 있지만, 하이브+SM이라는 초대형 엔터사 탄생에 앞서 시장과 팬덤에서는 ‘기대반 우려반’ 시각이 나온다. 시너지 효과가 크겠지만 다양성이 퇴색되고 ‘가격 인상’ 등 독과점 시장의 폐해들이 생겨날 것이라 우려도 크다. 하이브 측은 향후 SM이 독립적인 경영방침을 이어갈 것이며, 이수만이 SM 경영권에 관여하거나 프로듀싱 작업을 할 여지는 전혀 없다고 선을 그었다.
하이브가 SM을 인수하면 하이브-네이버가 운영하는 ‘위버스’와 SM 자회사인 디어유가 운영하는 ‘버블’로 양강 구도를 이루던 K팝 팬쉽 플랫폼 시장도 위버스 위주로 재편될 가능성이 크다. 디어유가 올해 NC소프트의 ‘유니버스’를 인수하면서 스타쉽 등 카카오엔터 산하의 레이블 계약도 가져온 상태라 사실상 하이브가 엔터업계 플랫폼 지식재산권(IP)의 절대자로 부상하게 된다.
국내 엔터사의 ‘멀티 레이블’ 체제 전환에도 속도가 날 전망이다. 하이브는 이미 산하에 빅히트뮤직, 쏘스뮤직, 플레디스, 어도어, KOZ 등의 레이블을 거느리고 하이브아메리카 아래 이타카홀딩스를 두는 멀티 레이블 체제를 구축했다. 하이브아메리카는 최근 QC뮤직(QC미디어홀딩스) 인수로 힙합 레이블을 더했다. SM이 발표한 SM 3.0의 핵심도 본격 멀티 레이블 체제 시작이다. 디즈니가 마블, 픽사 등 각자 색깔을 가진 산하 스튜디오들을 거느리고 있듯 국내 엔터사들도 장기적으로 ‘그룹 지주사-레이블’ 구조를 꾸려갈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