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국 토큰 증권성 심사 개입 가능성…가상자산 업계 긴장
참여자 법률자문 수요 증가…로펌 조직·인력 꾸리기 분주
-
- 이미지 크게보기
- (그래픽=윤수민 기자)
대형 로펌들이 STO(토큰 증권 발행) 제도화를 앞두고 분주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STO 사업을 본격 추진하려는 증권사, 코인의 증권성 여부를 보다 엄격하게 심사하게 된 가상자산 거래소·발행사 등 시장 참여자로부터 법률 자문을 수임할 가능성이 커지면서다. 김앤장·태평양 등 대형 로펌들은 디지털자산 전담 조직을 꾸리는 등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5일 블록체인 기술 등을 접목한 디지털 증권 발행을 허용한다는 '토큰 증권(ST) 발행·유통 규율체계 정비 방안'을 발표했다. 실물 자산을 증권화해 소액으로 쪼갠 토큰 증권을 발행하고 유통하는 것을 본격적으로 허용한다는 내용이 핵심이다. 이는 실물 증권과 전자 증권에 이은 새로운 발행 형태다. 금융당국은 작년 말엔 조각투자 등 상품이 투자계약증권에 해당한다고 발표한 바 있다.
증권사들이 STO 제도화에 가장 먼저 호응하는 분위기다. 현재 키움증권(한국정보인증·페어스퀘어랩), KB증권(SK C&C), 신한투자증권(람다256), 미래에셋증권(한국토지신탁), 대신증권(카사) 등이 블록체인 기술사와 함께 자체 플랫폼을 개발하거나, 조각투자 플랫폼을 인수하는 방식으로 사업 진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특정 ST는 한 곳의 증권사에서만 발행할 수 있다. 인기 토큰을 자사 플랫폼에 입점(발행)시키면 발행·매매수수료와 운용 수익에 더해 리테일 고객도 추가로 끌어올 수 있다. 금융당국은 한국거래소 내 ‘디지털자산 거래소’에서만 ST를 유통하도록 하되, 소수 물량은 ‘장외거래중개업’ 인가를 받은 증권사를 통해 유통할 수 있게 허가할 예정이다. 일찍이 STO가 제도화된 일본에선 SBI와 미즈호그룹 등 금융사들이 자금 조달과 자산 유동화에 ST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김세희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리포트를 통해 “일부 증권사들이 컨소시엄 형태로 장외거래중개업에 진출할 것으로 보인다”며 “만일 1개 업체가 유통시장을 선점할 경우 해당 플랫폼으로 모일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증권사 입장에선 시장 내 주요 플랫폼으로서 주도적 지위를 선점하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코인 발행사·거래소 등 기존 가상자산 업계엔 긴장감이 감돈다. 지금까지 코인(토큰)들은 가상자산 거래소(업비트 등)와 발행사(리플랩스 등)의 ‘자체 해석’으로만 증권성 여부가 가려졌다. 그런데 금융위가 STO 제도화를 기점으로 ‘토큰의 증권성 판단원칙’을 제시하겠다고 선언했다. 업계에선 일부 코인이 상장 폐지되고, 이를 유통한 거래소가 처벌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가 불거졌다.
한 가상자산업계 관계자는 “지금까진 발행인과 거래소가 자체적으로 증권성 판단을 해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지만 STO를 계기로 금융당국에서 구체적 지침이 내려올 것”이라며 “코인이 증권성이 있다고 명확하게 판정되면 기존 거래소에서는 더 이상 거래를 하지 못하고, 이미 거래 지원(상장)된 코인일 경우 페널티가 있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 “기존 코인들이 증권성을 재심사 받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며 “증권성이라는 것이 모호한 측면이 많기 때문에 앞으로 다양한 일이 생길 수 있다“고 덧붙였다.
가상자산 업계는 STO 사업에서 소외된 점도 불만이다. 기존 거래소가 STO 사업에 진출하려면 ▲증권사를 인수해 증권업 라이선스를 보유하거나 ▲블록체인 기술 자회사(람다256)로 기술 제공을 하거나 ▲장외거래중개업 인가를 얻어야 한다. 최근 두나무의 SK증권 인수설이 불거진 것도 이 때문이다.
아직 STO를 둘러싼 법률관계가 명확히 정해지지 않은 터라, 앞으로 시장 참여자들이 다툴만한 영역은 많다. 이러한 분위기를 감지한 로펌들은 일감 확보를 위해 적극적인 영업을 펼치고 있다. 진격하는 증권사와 고민하는 거래소·발행소 사이에서 법률자문 건을 수임하기 위해서다. 디지털자산 전담팀 규모를 키우고 관련 세미나를 개최하는 등 분주한 모습이다.
대형 로펌의 한 관계자는 “향후 STO 사업 수익성이 있다고 보기 때문에 디지털 자산 전담팀을 구성하고 세미나를 진행하는 등 관심을 쏟고 있다”며 “일단은 증권사가 자본시장법적 절차를 준수해 STO 사업을 진행할 수 있도록 법규를 해석하고 컨설팅하는 역할을 맡게될 것”이라고 밝혔다.
김앤장은 이달 ‘디지털자산 시장의 건전한 발전과 투자자 보호를 위한 정책 토론회’를 개최했다. 김앤장에서 가상자산 사업자 신고 수리 업무의 자문을 맡고 있는 정영기 변호사는 “(ST처럼) 디지털자산과 실물자산을 연결할 경우 디파이(탈중앙화금융)와 씨파이(중앙금융)가 연결되는데, 이로 인해 가상자산 거래소 파산이 뱅크런(은행의 대규모 예금인출사태)으로 이어질 위험도 높아진다”며 “가상자산 투자자들의 파산절차 보호에 대한 법제화 논의가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김앤장은 현재 STO 업무를 전담할 메타버스·블록체인·디지털자산TF를 구축하고, ▲변호사 30명 ▲변리사 1명 ▲회계사 2명 ▲전문인력 2명 등 총 35명을 배치한 상태다.
태평양은 디지털 혁신그룹(150명) 내 디지털 금융TF(50명)를 신설해 대응하고 있다. ‘블록체인 전문가’인 박종백 변호사를 내세워 ▲가상자산 사업자의 특금법 신고 및 컴플라이언스 대응 ▲토큰·코인의 발행과 ICO ▲블록체인 기술의 산업에의 활용 등 법률 자문 업무를 확대하겠다는 방침이다.
바른도 내달 초 ‘토큰 증권 가이드라인 및 뉴비즈니스 법적 쟁점’ 웨비나를 개최할 계획이다. ST라는 새로운 시장에서는 기존의 조각투자 사업자들이 사업 형태와 구조를 변경해야 하는데, 이에 대한 법률 자문 분야를 공략하겠다는 전략이다.
이밖에도 ▲광장(디지털금융팀) ▲율촌(가상자산·블록체인팀) ▲세종(가상자산팀) ▲바른(디지털자산 및 혁신산업팀) ▲화우(디지털금융팀) 등이 대응 시스템을 갖추고 마케팅에 나서고 있다.
디지털자산 전담팀에 소속된 한 변호사는 “증권사가 토큰증권의 장외유통플랫폼 운영에 관한 샌드박스를 신청하는 것, 블록체인 회사들이 STO 사업을 준비하는 것에 대해서도 자문을 제공한다”며 “가상자산 거래소에 대해선 이미 상장된 토큰, 특히 해외에서 발행된 토큰이 증권의 성격을 가지는 것인지 여부에 대한 법적 평가를 하거나 거래소의 STO 사업 진출 관련 자문도 제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올해 미국에선 증권거래위원회(SEC)가 다수의 토큰을 ST로 지정하면서 가상자산 업체가 금융당국과 법적 다툼을 벌이는 일이 늘어나고 있다. 현재 리플랩스(XRP토큰)·제네시스(스테이킹 서비스)·팍소스(BUSD) 등이 미등록증권 판매 혐의로 로펌을 수임해 소송 절차를 밟고 있다.
앞서 변호사는 “금융위가 ST의 발행과 유통을 허용함으로써, 기존 가상자산 거래소에서는 증권성 논란이 있는 토큰을 상장시켜선 안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며 “토큰 상장 전에 법률자문을 받아 자본시장법 등 위반에 따른 제재를 받지 않도록 하는 움직임이 확대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