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 '초비상'…영향 큰 과제 4개월 내 해결해내야
지난 연말 금융위 경쟁도 평가 결론은 "집중도 낮다"
조율 안 된 모양새…금산분리 완화도 후순위 밀릴 듯
-
금융산업 정책에서 정부당국의 손발이 따로 노는 모양새다. 윤석열 대통령이 은행의 '공공재'적 성격을 강조한 데 이어 "과점을 깨라"고 주문하자 은행 아닌 금융위원회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불과 몇 달 전 경쟁도 평가에서 은행업 과점이 완화하고 있음을 확인했지만 대통령 한 마디에 입장을 뒤바꿔야 하는 탓이다. 당초 상반기 중 금산분리 족쇄를 손보려던 업무 계획도 은행권 '경쟁 체제 개선'으로 뒤집힌 것으로 전해진다.
지난 22일 금융위와 금융감독원은 제1차 은행권 경영·영업관행·제도개선 태스크포스(TF) 회의를 열었다. 15일 대통령이 주재한 제13차 비상경제민생안정회의 후속 조치로, 최근 은행권에 제기된 여러 비판과 문제점을 검토하고 개선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당국이 신설한 TF다. 금융위는 제도개선 TF를 통해 6월 말까지 구체적 방안을 내놓겠다는 계획이다.
당국 관계자에 따르면 금융위 내부는 비상 상황에 돌입한 것으로 파악된다.
우선 출범 자체가 급작스러웠던 데다 주어진 시간도 촉박하다. 제도개선 TF는 대통령이 "우리 은행업의 과점 폐해가 크니 과점체제 해소와 경쟁 촉진을 위한 특단의 대책을 마련하라"라고 언급한지 일주일 만에 등장했다.
불과 4개월 남짓한 기한 안에 ▲은행권 경쟁 촉진 외 ▲금리체계 개선 ▲손실흡수능력 제고 ▲비이자이익 확대 ▲사회공헌 활동 확대 등 6개 검토과제를 마쳐야 한다. 하나같이 개별 은행은 물론 금융시장 전반에 미칠 영향이 적지 않은 사안들이다.
무엇보다도 제도개선 TF는 당초 금융위 판단과도 정면 배치된다.
TF 소속 한 관계자는 "공공재라는 표현 자체가 금융당국이 입에 담을 개념이 아닌 데다 갑자기 과점을 깨라는 지시가 떨어지면서 은행보다도 금융위가 초비상 상태"라며 "과점 폐해가 심각하다는 문제의식 자체가 지난해 경쟁도 평가위원회를 통해 금융위가 내린 결론과도 정반대다 보니 손발이 따로 노는 상황으로 보인다"라고 전했다.
금융산업 경쟁도 평가위원회는 금융위 산하 자문기구다. 금융연구원 등 연구기관에 용역을 맡기고 여기서 마련된 결과를 토대로 평가위 논의를 거쳐 제도·정책적 개선사항 등 의견을 묻는 식이다. 위원회는 정부 산하 각 기관 소속 연구원과 학계와 법조계를 포함해 총 11명으로 구성된다. 평가위 자문 내용은 향후 금융위 정책 결정의 근거로 활용된다.
금융위는 지난 12월 제2기 평가위 운영 결과를 바탕으로 올 상반기 중 제3기 평가위를 구성해 하반기부터 경쟁도 평가를 추가 실시하겠다는 계획을 내놨었다. 당시 제2기 평가위가 은행업의 시장 집중도엔 큰 변화가 없다는 보고서를 바탕으로 신규 은행은 인터넷전문은행의 성장을 지켜본 후 판단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놨기 때문이다. 보고서엔 국내 은행업 시장 집중도가 전반적으로 완화하고 있다는 분석이 담겼다.
구체적으로 국내 일반은행의 허핀달-허쉬만 지수(HHI)는 지난 2018년 3월 1668에서 2021년 12월 1660으로 떨어졌고, 일반은행 총자산 상위 3개사(CR3)의 시장집중도비율(CR)은 60.8%에서 61.4%로 올라간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 은행업이 다소 집중된 시장으로 분류되지만 시장지배적 사업자가 없다는 얘기다.
HHI는 은행별 시장점유율 제곱의 합으로 미국 법무부나 연방준비제도(Fed)가 기업결합 심사 과정에서 경쟁 제한 여부를 판단하는데 활용한다. 수치가 낮을수록 경쟁도가 낮다는 의미로, 1800을 넘겨야 '매우' 집중된 시장으로 구분된다. 우리 경쟁당국은 CR을 사용하는데, CR3가 75% 미만이라면 시장지배적 사업자가 없다고 본다.
보고서 내에 은행업 인가단위 세분화(스몰 라이선스) 방안 등이 거론되긴 했지만 평가위는 최종적으로 "신규 은행 진입 필요성은 인터넷전문은행 성장을 지켜본 뒤 검토해야 한다"라는 제언을 내놨다. 관계자에 따르면 금융위 역시 지난 연말 이를 받아들인 것으로 전해진다.
이 때문에 사전 조율이 안 된 대통령 발언으로 금융위마저 혼란을 겪고 있다는 지적이 쏟아지고 있다. 금융위가 상반기 중 추진하려던 금산분리 규제 완화 등 정책도 당분간 제도개선 TF의 후순위로 밀려날 수 있다는 관측이다.
국책연구기관 소속 한 연구원은 "대통령 한 마디로 지배적 사업자도 없고 과점도 심각하지 않은 은행업의 경쟁 촉진을 이뤄내야 하는 상황"이라며 "일각에선 대통령 대선 공약 중 하나인 충청권 지방은행 설립 때문이냐는 말도 나온다. 대통령 지시인 만큼 금융위는 상반기 중 예정했던 금산분리 규제 완화 작업 대신 제도개선 TF에 우선 집중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