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대갈등으로 번진 산업은행의 부산 이전
입력 2023.03.03 07:00
    취재노트
    1분기 내 '산은 부산 이전 고시' 목표로 삼은 정부
    '부역자 솎아내기'서 '세대분열'로 내부갈등 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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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안정된 고용과 높은 연봉 덕에 '신의 직장'으로 불려왔던 KDB산업은행(이하 산은)이, 본점의 부산이전 추진 후 촉발된 세대갈등으로 내홍을 겪고 있다. 젊은 직원들은 강석훈 산은 회장을 비롯한 경영진들과의 소통을 일절 거부하고 있고 이들과 가장 가까이서 일하는 팀장급 이상의 임직원들은 무력감을 호소하는 상황이다. 

      산업은행 본점의 부산이전은 현재진행형이다. 해당 계획은 윤석열 정부 대선 공약 중 하나였는데 부산을 세계적인 해양도시, 무역도시로 발전시키기 위한 목적이다. 실질적 이전은 국회가 산은법을 개정한 이후에야 가능하다. 산은법 제4조 제1항에 따르면 한국산업은행 본점을 서울특별시에 둔다고 규정하고 있다.

      일단 정부는 산은의 부산 이전을 고시하고 연내 이전계획을 승인 받겠다는 내용의 로드맵을 세워놨다. 강석훈 회장도 국회 정무위원회 전체회의를 통해 올해 1분기 내 지방이전 대상기관으로 지정되는 절차를 밟을 예정이라고 직접적으로 밝혔다.

      정권이 교체된 이래 이뤄지고 있는 '부산 이전 리스크'에 산업은행 임직원들은 여전히 속을 끓이고 있다. 부산 이전 반대를 주장하는 이들은 '인프라가 갖춰진 서울 내 직장이라는 장점의 상실', '지역인재 할당제에 따른 역차별' 등을 이유로 꼽고 있다.

      일찍이 타 금융사로 이직한 임직원들을 제외하고, 나머지 구성원들 사이에서는 갈등이 깊어지는 모양새다. 지난해 말에는 직원들 사이에서 '부역자'를 솎아내는 듯한 움직임이 있었는데 최근 들어선 주니어와 시니어들 사이의 불통도 망그러진 사내문화 중 일부로 떠오르고 있다.

      대표적인 사건으로는 지난해 6월 취임한 강석훈 회장의 첫 출근길이 있다. 노동조합이 출근을 저지하면서 임시 사무실에서 업무를 봐야 했다. 통상 산은 회장들은 취임 이후 지점을 돌며 인사를 다니곤 하는데, 강 회장은 불시에 찾아가 인사를 해야만 했다. 방문 소식이 사전에 알려질 경우 젊은 직원들의 시위 관련 움직임이 우려됐기 때문이다. 산은의 젊은 직원들 사이에서는 부산 이전 반대 시위를 위한 집기 나눔이 이뤄지기도 했다는 전언이다. 

      실제로 젊은 직원들이 침묵 시위에 나서면서 행사가 무마된 적도 있다. 지난해 제주도 신입행원 보완연수 당시 강석훈 회장과 경영진이 참석해 이들과 대화를 나누는 시간이 마련됐다. 당시 직원들은 행사 종료까지 이전 반대 마스크와 조끼를 착용하고 침묵시위를 이어갔다. 부산 이전 주제가 거론될 가능성이 높고 보여주기식 행사를 통해 '젊은 직원들과 소통했다'는 대의명분을 제공하지 않기 위해서라는 설명이다. 이에 강 회장을 비롯한 경영진들은 자리를 떠야 했다. 

      산업은행 내부 사정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당시 막내나 다름 없는 젊은 직원들이 시위에 가담하는 모습이 안타까웠다"라며 "2009년 민영화 및 분사, 2014년 민영화 취소 및 통합 산은 출범, 2016년 성과연봉제 등 수많은 우여곡절을 겪은 산은이라지만, 해당 이슈들을 모두 합친 수준의 스트레스와 부담이 직원들에게 가해지는 상황"이라며 분위기를 전했다. 

      세대갈등을 촉발한 또 다른 이슈로는 최대현 KDB인베스트먼트 대표의 글귀가 거론된다. 최대현 대표는 산은 수석부행장 출신으로, 지난해 12월 KDB인베스트먼트 대표이사로 내정됐다. 산은 본점의 부산 이전과 관련해 이전 준비 단장을 맡던 그는 산은을 떠나며 "그간 고마웠다. 부디 자존감을 잃지 말고 항상 담대하길 바란다"라는 메시지를 남겼다. 

      해당 메시지를 두고 의견이 분분했다. 한때 노조위원장으로 활동했던 최대현 대표가 후배들로 하여금 지역 이전 이슈와는 관계 없이 뜻을 이루라는 덕담을 남겼다는 의견이 있지만 단순 해석하기에는 찝찝함이 남는다는 반응이 많다. 한 산은 관계자는 "많은 의미가 내포돼 있는 것 같다"라며 "다만 부산이전 준비를 전담한 분인 데다 자회사 회장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부산 이전 이슈와는 무관해진 분이 남긴 글이다보니 일부 젊은 직원들이 좌절감을 느꼈다"라고 말했다.

      시니어 직원들은 일종의 사내문화처럼 자리잡은 불통에 우려를 표하고 있다. 이들은 직급상 젊은 직원들처럼 직접 행동에 나서기 어려움에도 이들과 가장 가까이에서 업무를 보고 있다. 이들은 "늘 미안한 마음이다", "부산 이전에 적극적으로 반대 목소리를 내는 것을 보며 요즘 신입 직원들이 화에 가득 차있다고 느낀다. 그러나 해줄 수 있는 것이 없으니 답답하다"라고 입을 모은다.

      산은이라는 이름의 명성도 무색해져만 간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산은은 국내 금융 공기업 중 높은 수준의 연봉을 받아온 곳으로, 그간 '신의 직장'이라고 불렸다. 2021년 산은 정규직 직원들은 평균 1억1000만원대의 연봉이 지급됐고 이는 금융위원회 산하 7곳의 금융공기업 중 가장 높은 수준으로 평가됐다. 다만 최근까지 정부는 공공기관 혁신가이드라인을 통해 임직원 보수에 대한 엄격한 검토 입장을 밝히는 등 압박을 가하고 있다.

      다른 산은 관계자는 "물가 상승률을 감안하면 사실상 임금이 동결된 상태로, '높은 연봉'이라는 메리트가 희석돼가는 모습이다"라며 "승진 가능성, 연봉 측면에서 시니어들은 산은의 '이름값'을 누리며 다녔던 반면 최근 입사한 젊은 직원들은 이를 누리지 못할 가능성이 커보이며 이미 많은 인력이 이탈한 상태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