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집 줄게 가격 방어해 다오"…LH에 미분양 떠넘기고픈 건설업계
입력 2023.03.08 07:00
    3명 중 1명은 미입주…PF 대주 상환 어려워져
    입주 연체 이자는 시행사가 부담…"대부분 감당 안될 것"
    건설업계 "할인 분양 부담…LH가 미분양 주택 매입해달라"
    높은 부채비율에 채무위험기관 지정된 LH…'내 코가 석자'
    국토부 "국민혈세로 건설사 이익 보장 할 수 없어"
    • (그래픽=윤수민 기자) 이미지 크게보기
      (그래픽=윤수민 기자)

      최근 입주율이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시장 건전성의 '바로미터'로 자리잡고 있다. 집값 하락에 예민해진 입주예정자(수분양자)들이 하자를 이유로 소송을 걸며 입주를 미루는 상황도 발생했다. 저조한 입주율에 부동산 PF의 대주가 차입금을 상환하기 어려워지는 실정이다. 건설업계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미분양 주택을 매입해주기를 '오매불망' 기다리고 있다.

      주택산업연구원에 따르면 1월 전국 아파트 입주율은 66.6%로 12월(71.7%) 대비 5.1%포인트 하락했다. 이는 본조사 이후 역대 최저치인 66.2%(2022년 11월)와 비슷한 수치다. 지역별로는 수도권이 75.2%로 지난달(77.8%) 대비 2.6%포인트, 지방은 64.7%로 지난달(64.7%) 대비 5.7%포인트 낮아졌다. 실제로 최근 김포의 한 사업장의 경우 분양률은 80%를 넘었으나, 입주율이 5%에 불과했다. 

      수분양자가 하자담보책임 관련 소송을 끊임없이 걸며 입주를 지연하는 경우도 발생하고 있다. 가령 아파트 조경수에 들어간 비용이 계획보다 적을 경우에도 하자보수를 청구하며 입주를 지연시킨다. 집값 하락기에 자산 가치를 조금이라도 보호하기 위해 모든 법적 수단을 동원한다는 설명이다. 하자가 있더라도 자산 가치가 올라가니 '좋은 게 좋은 거'라며 넘어가던 집값 상승기와는 분위기가 달라졌다. 

      입주 지연이 늘어나면서 부동산 PF의 대주는 차입금 상환이 어려워질 거란 우려가 제기된다. 담보권을 행사할 수 없어 부실 리스크가 현실화할 수 있는 셈이다.

      대주는 수분양자가 입주하며 잔금을 내야 상환받을 수 있다. 그러나 입주 지연으로 제때 상환이 이뤄지지 않으면 대주는 디폴트 선언을 통해 담보를 처분해야 한다. 

      문제는 선순위 대주가 담보권을 행사하기 위해 수분양자의 권리부터 없애야 한다는 것이다. 건물을 올리며 수분양자의 분양대금 대부분이 공사비에 사용됐기 때문에, 수분양자는 선순위 대주와 우선순위가 비슷하다. 

      이 과정에서 대주는 수분양자에게 돌려줄 중도금과 더불어 현실적으로는 계약금까지 돌려줘야 담보권을 확보할 수 있을 거란 분석이다. 가령 총분양대금이 100억원인 상황에서 대주의 대출금이 30억원, 수분양자가 납부한 분양대금이 60억원이라면, 대주는 최대 60억원을 더 투입해야 담보권을 확보할 수 있다. 사업 리스크를 심사할 때는 담보인정비율(LTV)이 30%에 불과했으나, 담보를 처분할 시점에는 LTV 90%의 사업장으로 바뀐 셈이다. 

      입주가 지연되면 연체 이자는 시행사가 내야하는데, 이를 감당할 수 있는 곳은 손에 꼽히는 수준이다. 한 신용평가사 관계자는 "아파트 시행사업의 경우 일반적으로 자기자본(에쿼티) 비율은 보통 10% 이상이지만, 일부 시행사의 경우 에쿼티 비중이 1% 정도로 레버리지가 어마어마한 곳도 존재한다"고 밝혔다. 

      전지훈 한국신용평가 연구원은 "신규주택의 가격적 이점이 약화되고 있어 당분간 어려운 분양여건이 전개될 것으로 보이며, 현재와 같은 매매 및 전세 가격 하락 추세가 장기간 지속될 경우 입주 리스크가 불거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며 "분양실적 저하에 따른 PF차입금 최종 상환부담의 전이 위험이 점차 부각될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 "새집 줄게 가격 방어해 다오"…LH에 미분양 떠넘기고픈 건설업계 이미지 크게보기

      15년 만에 PF 시장이 요동치는 상황에서 건설업계는 LH가 건네는 '도움의 손길'을 바라고 있다. 실제로 한국주택건설협회는 지난달 말 기자간담회에서 공공이 미분양 주택을 매입해달라고 요청한 바 있다. 미분양·미입주 증가로 주택업체의 자금경색이 심화한다는 이유에서다. 이미 LH는 매입임대 제도를 활용해 무주택·청년·신혼부부 등에 시세보다 저렴하게 공급하고 있다.

      정원주 대한주택건설협회장은 "LH가 미분양 주택을 매입해 청년과 신혼부부 등의 임대주택으로 활용해달라"며 "주택도시보증공사(HUG) 등 공공기관도 건설 중인 미분양 주택을 현행 공공매입 가격 수준으로 매입하고 준공 이후 사업주체에 환매해달라"고 요청했다.

      건설업계가 LH에 미분양 주택 매입을 바라는 데는 '가격 방어'도 꼽힌다. LH와 주택을 거래할 경우 가격을 공시하지 않아도 된다. 건설업계는 LH에 싼 가격으로 미분양 주택을 넘기더라도, 시장 가격 하락은 막을 수 있다는 평가다. 

      LH가 지난해 12월 서울 강북구 '칸타빌 수유팰리스' 미분양 아파트를 고가로 매입해서 발생한 논란도 이례적이라 전해진다. 분양가에서 15%를 할인해도 미분양됐던 아파트를 LH는 이보다 높은 금액에 매입한 것이 문제의 발단이었다.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전용 24㎡와 20㎡는 각각 최초 분양가의 95.9%, 90% 가격에 매입됐다. 

      건설업계가 미분양 주택을 할인 분양하기도 쉽지 않아 보인다. 건설업계는 고금리·실물경기 침체·전세가 하락 등 주택가격 약세로 할인 분양 시 '남는 게'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기 때문이다. 몇몇 현장 외에는 건설사들의 적극적인 할인 분양이 진행되고 있지 않다.

      김승준 하나증권 연구원은 "2020년과 비교했을 때 2022년 아파트 실거래지수는 1.7% 하락한 반면, 건축자재는 35.8% 상승, 임금은 10.1% 상승, 토지가는 7.0% 상승했다"며 "떨어진 주변 시세에 분양 가격을 맞추면 돈을 벌기는커녕 잃기만 하게 돼, 저렴하게 토지를 매입하지 않고서야 분양하기 어려운 환경이다"고 전했다.

      기존 수분양자의 할인 반대도 감내해야 한다. HUG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까지만 해도 서울 아파트 초기분양율은 90%가 넘었다. 전국적으로 분양시장이 얼어붙으며 4분기에 20.8%로 떨어졌다. 결국 부동산 경기가 침체되기 전 '고가'에 분양한 경우 약 90%의 수분양자를 설득하는 작업이 지난할 거란 전망이다.

      이강욱 NICE신용평가 연구원은 "향후 부동산PF 대상 건축물의 완공이 가능하다고 가정할 경우 증권사의 투자원금 최종 회수에 있어서는 평균적으로 약 34% 정도의 할인분양 여력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며 "다만 우려스러운 점은 현재 증권사들이 보유하고 있는 부동산PF 익스포져 사업장의 공정률이 저조하다는 점이다"고 밝혔다.

      정부는 건설업계의 구제안 요구에 건설업계가 분양가 인하 등 먼저 자구책을 마련하라며 선을 그었다. 원희룡 국토교통부장관은 지난달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회의와 소셜미디어에서 "건설업자들의 준공 후 미분양 물량을 해소하는 목적으로 매입임대정책을 갖다쓸 수는 없다"며 "국민혈세로 건설사 이익을 보장해주고 도덕적 해이를 부추기는 꼴"이라 밝혔다.

      LH의 재정상황도 미분양 주택 매입에 걸림돌로 작용한다. 현재 LH의 부채비율은 221%로 위험 수준으로 정부가 채무위험기관으로 지정했다. 2026년까지 부채비율을 207%로 감축해야 해 매입 물량을 크게 늘리기 어려울 거란 분석이다. 매입임대를 포함한 임대사업 운영 손실은 2021년 기준 1조8000억원에 달한다. 매입임대사업이 대표적인 적자사업인 만큼 건설사의 요구에 쉽사리 응하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작년 말부터 정부가 PF 시장에 유동성 공급을 공식화하는 등 부동산 시장을 살리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였지만, 전국의 미분양 주택은 최근 10년 새 가장 많은 7만5000채를 넘어섰다"며 "PF발 위기가 금융시장 전반의 리스크로 번지는 것을 막겠다는 정부의 기조가 이어진다면, 시공사 파산이 본격화할 때 LH가 공사채 등을 발행해야 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