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니스·콘텐츠에 관심보이나…투자 결정 속도는 더뎌
"이마트 투자확대의 결과가 일종의 참고서 됐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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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화점 사업을 영위하는 ㈜신세계가 코로나 팬데믹이 초래된 이래 개선된 실적 덕에 두둑해진 현금고를 바탕으로 미래 먹거리 확보에 대한 고민을 거듭하고 있다. 코로나 특수가 끝나가는 만큼 백화점사업 만으로는 영업수익성을 유지하기 어려울 것이란 판단이 깔렸다는 설명이다.
다만 같은 그룹 계열사인 이마트가 지난 3년간 투자를 늘린 데 따른 여파를 겪어내야만 하는 상황에 처하면서, 그룹 전체적으로 투자 결정에 신중하려는 분위기가 생겼다.
13일 투자업계에 따르면 ㈜신세계는 미래사업 관련 투자집행에 대한 검토를 이어가고 있다. ㈜신세계 자회사들이 지분을 보유 중인 기업형 벤처캐피탈(CVC) 시그나이트파트너스 또한 머리를 맞대어 고민 중인 주체 중 하나라고 알려진다.
주된 관심사는 웰니스(웰빙+행복)와 콘텐츠, 두 개 키워드로 정리된다. ㈜신세계는 2021년 글로벌 메디컬 에스테틱 기업 휴젤에 대한 인수합병(M&A) 의사를 최종 철회한 데 이어, 최근엔 국내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기업인 왓챠도 투자를 검토했다.
이처럼 ㈜신세계가 신사업 물색에 나서는 이유로는, 엔데믹 이후 백화점사업 수익성 유지 가능 여부가 불투명한 점이 거론된다.
주요 백화점 기업들은 고물가로 인한 소비심리 위축 우려에도 불구, 지난해 명품과 패션 부문의 매출과 영업이익 기여도가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신세계 백화점 부문은 1년 만에 각각 11.6%, 33% 늘어난 매출(1조8657억원)과 영업이익(3479억원)을 시현했다. 그러나 지난해 4분기부터는 성장세가 한풀 꺾이며, 기업금융(IB) 관계자들은 백화점 기업들의 실적 추이에 주목하고 있다.
한 증권사 IB 관계자는 "코로나 사태를 전후로 온라인·오프라인 부문간 실적이 역전되거나 해외 브랜드에 대한 소비심리가 일부 위축되는 등 유통업계에선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의 전개가 이뤄지고 있다"라며 "일찍이 지난해 하반기부터 코로나로 가려졌던 국내 백화점의 부실도 드러나기 시작할 것이란 평가도 나왔다"라고 말했다.
일단 ㈜신세계의 투자재원은 충분하다는 평가다. 코로나 팬데믹 기간 동안 현금창출력이 크게 회복되면서 양(+)의 잉여현금흐름 기조가 유지되는 중이다. ㈜신세계는 광주신세계 등 백화점 확장과 울산 복합시설 신규 출점 등 투자 부담이 예상 대비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고 평가받지만 이와 관련해 신용평가업계는 중단기 투자소요의 상당부분을 자체적으로 충당 가능하다고 평가하는 중이다.
다만 투자 시점 자체에 대해선 고민이 깊을 것이란 지적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상승하는 물가, 주요국의 긴축정책에 따른 기준금리 상향조정 등의 이슈가 산적한 지금, 투자를 늘리는 것이 바람직한지에 대한 판단이 쉽지 않아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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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신세계는 투자 행보에 신중함을 기하려는 분위기다. ㈜신세계가 지난해 10월 백화점부문 기획전략본부장 자리에 허병훈 부사장을 새로이 앉힌 후, 그간 추진해오던 서울옥션 인수 논의를 중단한 것도 그 일환일 것이란 지적이다.
신세계그룹의 또 다른 주축인 '이마트'의 잇단 투자의 경과가 일종의 참고서가 됐을 것이란 의견도 있다.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이 이끄는 이마트는 야구단 뿐만 아니라, 이베이코리아(現 G마켓글로벌), 와이너리 등을 인수했다. 이를 통해 오프라인과 온라인 부문 성장, 두 마리의 토끼를 잡을 거란 기대를 한 몸에 받았지만 2년여가 지난 지금 실적 감소를 감내하고 있다.
신세계그룹 내부사정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이마트가 G마켓 글로벌을 인수한 이래 겪는 어려움을 지켜보며 투자행위 자체에 신중을 기해야한다는 분위기가 생긴 듯 하다"라고 말했다.
㈜신세계의 신사업 투자에 일조할 거란 기대를 받던 시그나이트파트너스의 움직임도 둔해진 상태다. 시그나이트파트너스는 신세계인터내셔날, 신세계백화점, 센트럴시티 등이 공동출자한 기업으로, 정유경 신세계백화점 총괄 사장의 남편인 문성욱 대표가 이끄는 CVC다. 신세계 계열사들로부터 출자를 받는 만큼, 신세계 신사업 관련 투자를 이어갈 것이란 전망이 짙었다.
그러나 시그나이트파트너스는 최근까지 인력 유출 문제를 겪고 있다. 투자업계에 따르면 시그나이트파트너스는 제조기업처럼 매출이 꾸준히 나는 기업들에 투자하기 보단, 피투자기업이 보유한 매력도(?)를 중점적으로 고려해 투자 결정이 이뤄졌고, 이에 한계를 느낀 일부 실무진들이 이탈을 거듭하고 있다.
한 VC업계 관계자는 "시그나이트파트너스는 지난해 중순까지만 해도 일본계 VC를 인수하려 계획할 정도로 투자에 열을 올렸으나, 투자 심의의 기준인 '쁘띠(Petit)함'에 공감하지 못하는 심사역들이 이탈을 지속하며 김이 다소 빠진 상태다"라며 "첫 포트폴리오로 낙점됐던 패션쇼핑 앱 '에이블리'의 운영사 에이블리코퍼레이션도 실적이 감소하면서 골칫거리가 된 상태다"라고 말했다.
㈜신세계 측은 "여러 기업의 상장철회 등 최근 불투명한 대외환경에 많은 기업들이 전망이 안 좋은 가운데 무리해서 신사업 투자를 늘릴 필요는 없어보인다"라며 "신사업 투자는 나름 고심을 많이 하고 있고 그 외에도 다른 것들을 검토하고 있는 상황이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