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말 롯데건설 지원에 헬스케어 지원자금 규모도 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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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롯데그룹이 미래 먹거리로 점한 헬스케어 분야가 도통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롯데헬스케어가 해당 사업 추진을 위해 신규 설립된 지난해 5월 이후, 해당 법인은 주로 유망 스타트업 발굴을 통해 시장에 안착하려는 움직임을 보여왔다. 그 동력을 서서히 잃어가는 모양새다.
일명 '알고케어 사태'를 맞닥뜨리면서 벤처캐피탈(VC)업계 내 롯데그룹의 평판이 크게 하락, 투자 가능 범위가 좁아진 여파가 크다. 지난해말 롯데건설의 유동성 위기 극복에 그룹 계열사들의 현금력이 동원되면서 롯데헬스케어에 대한 자금 출자가 계획보다 다소 제한적으로 이뤄진 것으로도 알려진다.
롯데헬스케어는 야심찬 첫 발을 내딛자마자 난관에 봉착했다. 숨가쁘게 돌아가기 시작하던 이들의 투자시계 또한 느려졌다. 기업금융(IB) 업계에 따르면 롯데헬스케어 소속 투자 담당자들의 업무량이 연초 대비 크게 줄어들었다.
롯데그룹 내부사정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올초까지만 해도 내부 투자 담당자들의 업무량이 상당했는데 '알고케어 사태'가 터지면서 정시퇴근하는 분위기가 됐다"라고 말했다.
코로나 이후 소비자들의 헬스케어(건강관리) 수요가 늘고 관련 규제 완화 움직임이 일었다. 롯데그룹 또한 해당 시장에서의 사업 기회를 엿봤다. 롯데지주가 직접 700억원을 출자해 설립한 롯데헬스케어는 '국내 의료 서비스 기반 해외 진출' 등 사업모델을 선보인 데 이어 유전자 검사 및 분석 전문기업 테라젠헬스(250억원)와 멘탈케어 플랫폼 '마인드카페' 운영사 아토머스(30억원)에 투자를 단행했다.
투자업계 관계자들은 롯데헬스케어가 유망 스타트업에 투자하거나 협력 관계를 맺어 헬스케어 사업 확장의 기반을 마련하려 한다고 파악해왔다. 최근 아이디어 도용 관련 시비가 붙은 알고케어와의 악연(?)도 여기서 시작됐다. 영양제 관련 사업 확장 전 모든 가정에 놓을 디스펜서 제품을 출시하고자 했던 롯데헬스케어는 알고케어와의 협력을 도모했지만 단가에 대한 눈높이 차이로 그 계획이 불발됐다.
이는 곧 '도용 논란'으로 이어지며 큰 평판 훼손을 야기했다. 2개월가량이 지난 지금도 야당 전국위원회에 의혹 관련 점검이 필요하다는 취지의 안건이 상정되는 등 정치적으로도 번지는 모양새다. 롯데헬스케어 측은 "대기업과 스타트업 간 구도인 만큼 입장 공표를 신중히 할 수밖에 없다. 롯데헬스케어의 디스펜서는 알고케어의 것과 형태가 유사하지만 이미 해외에 비슷한 제품이 출시된 상태다"라는 입장이다.
해당 주장에도 스타트업 창업자를 비롯한 VC 하우스 심사역들 사이에선 일종의 '롯데 기피 현상'이 생긴 모양새다. 한 스타트업 C레벨 관계자는 "스타트업 사이에선 대기업 중 협력 제의가 오면 검토를 신중히 해야 하는 곳으로서 자주 입에 오르내리는 기업들이 정해져 있다"라며 "알고케어 사태 이후로 대기업 협력 제의가 오면 몸을 더 사리게 된다"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VC 하우스 심사역들도 아쉬움을 토로한다. 한 대형 VC 하우스 소속 심사역은 "너무 적나라하게 음성 파일들이 공개가 되는 바람에 대응이 쉽진 않았겠지만 롯데헬스케어가 조금 더 현명하게 대응했으면 어땠을까 싶다"라고 말했다. 일각에선 롯데헬스케어가 투자할 매물을 물색하는 게 녹록지 않은 분위기라는 지적도 나온다.
롯데헬스케어 자체에 힘을 실어줄 그룹 자체의 지원력도 제한적이라는 평가다. 업계에 따르면 롯데지주는 신사업의 한 축으로 삼은 헬스케어 사업 추진을 위한 지원금을 마련하려 했다. 롯데건설의 우발채무발(發) 유동성 위기 대응을 위해 그룹 차원의 현금력을 동원하면서 지원 규모 축소가 불가피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한 VC업계 관계자는 "롯데헬스케어라는 법인은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장남인 신유열 상무의 업적을 만들어주기 위한 곳이라는 인식이 있다. 그만큼 중요도가 높은 계열사일텐데 투자 자체의 움직임은 더뎌진 상태다"라며 "기존 사업의 두 축인 유통과 화학 부문의 실적이 줄어들고, 호텔롯데 상장 시기는 요원한 등 해결할 과제가 산적한 롯데그룹은 이같은 답보 상황이 여간 답답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롯데그룹 측은 "마땅한 투자처가 많이 없는 것은 사실이나 적극 투자를 진행하려 물색 중이다"라며 "롯데건설 유동성 위기가 헬스케어 출자나 사업 준비하는 데 영향을 주진 않았을 것 같은데 시기적으로 겹쳐서 그렇게 보였던 것 같다"는 입장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