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 정부 들어 운용권 넘겨주거나 민간 경쟁 상황 이어져
정부, 경쟁으로 민간자금 확대 유도…투명성·공정성 제고
산은 부상 속 역할 축소…인사 잡음 등 정부 시선도 서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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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한국성장금융투자운용(이하 성장금융)은 성장사다리펀드 출범 이래 주도적으로 모험 자본을 공급해왔는데 점차 입지가 좁아지는 모습이다. 정부가 민간 자본 육성에 공을 들이며 앉아서 정책성 자금을 뿌리던 영업 방식이 벽에 부딪혔다는 평가가 나온다. 역할이 겹치는 산업은행에 힘이 실리면서 자금 공급자에서 요청자로 지위가 격하되는 분위기다. 낙하산 인사 등 논란이 겹치며 정부와 금융당국의 시선이 날카로워진 것도 성장금융에 부담이 될 것으로 보인다.
성장사다리펀드는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3년 정책금융공사에서 현판을 걸고 출범했다. 전 정부의 신성장동력펀드 취지를 이어받은 펀드로, 국내 중소·벤처기업의 성장을 지원이 목적이었다. 2015년 펀드를 운용하던 정책금융공사가 다시 산업은행과 합쳐진 후에도 입지는 탄탄했다. 통합 산업은행은 창조금융·기술금융 등에 힘을 실으면서도 성장사다리펀드 등 간접투자 기능은 강화하겠다고 했다.
성장사다리펀드는 산업은행, 기업은행 등이 자금을 댄 펀드오브펀드(Fund of fund)로, 여러 하위펀드(자펀드)를 거느린다. 사무국에서 모펀드 운용을 맡았는데, 직원 대부분이 출자은행 파견 직원이라 전문성이나 전략수립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이에 2016년 산업은행에서 성장금융이 별도 법인으로 떨어져 나왔고 이동춘 전정책금융공사 부사장이 초대 수장이 됐다.
성장금융은 문재인 정부에서도 중용됐다. 어떤 이름을 달든 경제 성장 둔화기에 신산업을 키워야 한다는 대명제는 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2018년부터는 상시적 구조조정을 지원하기 위해 출범한 기업구조혁신펀드 운용을 맡았고, 2020년 이후 20조원 규모 뉴딜펀드 운용도 주도했다. 작년말 운용펀드 규모(약정금액)는 7조3000억원, 출자펀드 결성 규모는 38조원에 달하는 매머드 운용사가 됐다.
작년부터 성장금융의 입지에 균열이 감지되고 있다. 작년에 결성에 나선 뉴딜펀드의 운용 업무 중 일부는 민간(한화자산운용)이 가져갔다. 출범 10해째인 올해 상황도 그리 밝지 않다. 성장금융은 작년까지 세 차례 결성된 기업구조혁신펀드의 운용을 도맡았는데, 올해 결성되는 4번째 펀드는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가 맡기로 하며 경쟁체제가 됐다.
성장금융은 올해 들어 진행 중인 혁신성장펀드 재정 모펀드 사업에선 신한자산운용, 아이비케이자산운용, 한화자산운용 등과 신청서를 제출했다. 산업은행과 함께, 혹은 산업은행의 돈을 도맡아 자금을 시장에 나눠주던 입장에서 민간 금융사와 함께 산업은행에 손을 벌려야 하는 위치로 바뀌었다.
기존 성장금융 출자자(LP)들도 이런 기류 변화를 예의주시하는 분위기다. 특히 성장금융 쪽에 출자하는 것을 부담스러워 했던 은행들의 행보에 관심이 모인다. 금융권에서 지갑을 좁히면 성장금융은 더 분주히 출자 사업을 따내러 다니거나, 뿌려둔 자산들에서 극적인 수익을 거둬 투자금을 마련해야 한다.
이번 정부에서는 벤처와 신산업 육성에서 민간 자금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성장금융 한 곳이 도맡아서 펀드 출자 사업을 맡는 것이 적절치 않다고 판단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쟁을 통해 민간 자금 조달을 독려하고, 투명성과 공정성을 높이겠다는 취지다. 정부의 정책자료에서 성장금융의 이름이 빠지는 사례가 늘고 있다. 국회에서도 금융위에 '공공기관도 아닌 성장금융에 수의계약형태로 모펀드를 맡기는 것이 적절하냐'는 점을 지적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산업은행의 부상도 눈여겨 볼 만하다. 이번 정부 들어 부산 이전 압박에 놓여 있기는 하지만, 반대로 정부가 지방 균형 발전 및 금융 육성에 있어 산업은행에 거는 기대가 크다는 평가도 있다. 강석훈 산업은행 회장이 정책에 적극 화답하니 윤석열 대통령의 신망이 큰 것으로 알려졌다. 성장사다리펀드 초기 산업은행은 산업 구조조정에 집중해야 할 상황이었지만 이제는 신산업 육성에도 무게를 두는 분위기다.
한 산업은행 관계자는 "작년 하반기부터 정부 정책 자료에서 성장금융의 이름이 빠지는 사례가 늘고 있는데 산업은행 입장에선 금융위원회가 성장금융을 명시하지 않으면 같이 사업을 이끌기 어렵다"며 "앉아서 편하게 영업하던 성장금융이 홀대를 받는 것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경쟁에 따라 민간 자금을 끌어오겠다는 정부 의지에 맞춰 전략을 빠르게 바꿀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성장금융이 정부와 금융당국의 눈밖에 난 여파라는 평가도 있다. 금융당국에 있어 성장금융은 정권 교체를 거치면서도 바뀌지 않은 주요 트로피 중 하나다. 자연히 예산이나 정책 지원에 힘을 실어주려는 기조가 강했는데, 최근 잡음이 잇따르며 성장금융을 바라보는 시선이 날카로워졌다. 특히 인선 문제로 금융위의 눈밖에 났다는 평가가 많다.
성장금융은 2021년 20조원을 굴릴 뉴딜펀드의 운용 책임자로 금융 경험이 일천한 청와대 행정관 출신 인사가 내정되면서 여론의 뭇매를 맞았고, 내정자는 사퇴했다. 당시 성기홍 성장금융 사장과 '성장금융의 산파'이자 2인자인 서종군 전무의 갈등이 심했다. 성 사장이 서 전무를 견제하기 위해 부서를 신설하고 외부 인사를 끌어왔다는 시선도 있었다. 작년 초엔 정권 교체기에 맞물려 성장금융 사장 인사가 이뤄지며 '알박기' 논란이 있었고, 8월이 되어서야 사장 인선이 확정됐다.
한 사모펀드(PEF) 운용사 관계자는 "성장금융 대표와 본부장 인선을 두고 낙하산 인사라는 뒷말이 무성했다"며 "반드시 그 영향으로 성장금융이 캠코에 구조혁신펀드를 뺏겼는지는 알 수 없지만 사업의 큰 축 중 하나를 잃으면서 힘이 빠지게 된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현 정부에서도 주요 기업들의 인선에 꾸준히 훈수를 두고 있다. 당국을 통해 뜻을 넌지시 던지기도 하고, 국민연금의 입을 활용하기도 한다. 명시적으로 '누구를 앉히라'는 의사는 없지만, 인사 절차상의 문제는 거듭 지적하고 있다. 최근 수장 인사로 시끄러운 곳 대부분은 전 정부 성향의 인사들이 포진한 공통점이 있다는 평가도 있다.
한 투자업계 관계자는 "산업은행은 정부 정책에 발 빠르게 화답하면서 힘이 더 실리고 있지만, 성장금융에 대해선 정부 고위층에서 '굳이 필요하냐'는 목소리도 나온다"며 "전 정부 측 인사들이 요직에 남아 있어 이번 정부의 눈초리가 곱지 않다는 평가도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