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호한 재무 지표에도 시장은 불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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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레디트스위스(CS) 위기 후폭풍으로 독일 최대 투자은행인 도이치방크를 비롯해 글로벌 은행 위기설이 좀처럼 가라앉지 않고 있다. 은행업 투자심리가 위축되자 관련업계에선 국내 영향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분위기다.
CS의 AT1(코코본드·신종자본증권) 전액 상각 처리로 국내 은행권이 발행한 신종자본증권 잔액에 이목이 쏠리는 가운데 위기가 전염될 가능성은 적다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극단적으로 국내 은행권의 신종자본증권 차환발행이 어려워진다고 가정할 경우 자본비율이 소폭 하락하고 M&A(인수·합병)에 제약이 생길 것이란 관측이다.
지난 24일(현지시각) 독일 증시에서 도이체방크 주가는 장중 14% 이상 급락하며 곤두박질쳤다. 실리콘밸리은행(SVB), CS에 이어 도이체방크가 다음 타깃이 될 것이란 불안감이 증폭되면서다. 도이체방크가 발행한 신종자본증권의 가격은 급락했고 부도가능성을 뜻하는 신용디폴트스와프(CDS)는 치솟았다.
다만 은행 건전성을 위협할만한 큰 부실은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는 게 대체적인 전문가의 시각이다. 도이체방크의 총자산은 1870조4000억원으로 CS의 2.5 배에 이르고 금융안정위원회(FSB) 기준 등급도 더 높다. CS의 AT1이 휴지 조각이 되면서 비이성적인 공포가 시장을 휩쓸고 있다는 설명이다.
업계에선 현재 유럽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 작년 한국에서 벌어진 레고랜드·흥국생명 콜옵션 사태와 유사하다고 보고 있다. 공포가 전염병처럼 빠르게 퍼진다는 의미의 ‘뱅크데믹(Bankdemic·은행과 팬데믹의 합성어)’이란 신조어도 생겨났다
스위스 규제당국은 'CS가 발행한 AT1 상품은 정부 지원을 받게 될 경우 전액 상각되도록 계약에 명시돼 있다"면서 이번 조치가 정당했음을 주장하고 있지만, 유럽 전체 은행권 리스크로 번질 조짐이 보이자 AT1보다 보통주를 먼저 상각처리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국내 은행권이 발행한 신종자본증권으로 불똥이 튈 지 관련업계에서도 이목이 쏠리고 있다. 은행권 전체 자본에서 신종자본증권이 차지하는 비중이 5% 정도로 크지 않음에도 시장의 불안은 가시지 않는 모습이다. 금융당국에 따르면 지난 20일 기준 국내 은행의 코코본드 발행 잔액은 31조5000억원 수준이다.
한편 국내에서 발행되는 신종자본증권은 전액 상각처리된 CS의 AT1과 발행조건이 다르다. 금융당국으로부터 '부실금융기관'으로 지정되고 나서야 전액 영구적으로 상각된다. 국내 주요 금융기관은 자본비율이 10% 중후반대로 안정적으로 관리되고 있는 상태다.
만약 국내 은행권의 신종자본증권이 차환되지 않는 최악의 상황을 가정한다고 해도 자본여력이 충분하다는 게 증권가의 분석이다.
최정욱 하나증권 연구원은 "향후 신종자본증권 차환발행이 어려워진다고 극단적으로 가정할 경우 금융지주사들의 기본자본비율(Tier1)이 다소 하락할 수 있지만 신종자본증권이 배제된 보통주자본비율로도 아직 양호한 수준이기 때문에 자본비율 영향은 크지 않을 전망"이라고 분석했다. 국내 4대 금융지주(KB·신한·하나·우리금융)의 2022년 기준 보통주자본비율은 각각 13.3% 12.7%, 13.2%, 11.5%다.
다만, 금융지주사의 자회사 출자여력을 의미하는 이중레버리지비율은 규제수준(130%)으로 급상승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2022년 말 기준 금융지주사들의 평균 이중레버리지비율은 약 112.2%인데 신종자본증권을 모두 제외 시 129.2%로 상승할 것으로 예상된다.
KB금융과 우리금융을 제외한 대부분의 금융지주사가 130%를 상회할 것으로 추정되면서 인수·합병(M&A)에 걸림돌로 작용할 것이란 관측이다. 금융지주사의 이중레버리지비율이 130%를 초과할 경우 감독당국의 경영실태평가 등급에 영향을 미치고 향후 M&A에 제약이 생긴다.
한 금융당국 관계자는 "금융당국에서 은행의 신종자본증권을 모니터링 하고 있고, 아직까지 특별한 문제가 발생할 소지는 없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