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H투자증권, 시총 4000억 이상 이익실현 기업 없어 곤란
IB업계 메가 스팩 합병에 테슬라 요건 달라는 주장 나와
美 호황 따라 출범했지만…기업들 차라리 직상장이 편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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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가 스팩’을 표방하며 야심차게 출발한 공모 금액 400억원 이상의 대형 기업인수목적회사(스팩ㆍSPAC)들이 줄줄이 침체를 겪고 있다. KB증권의 ‘KB24호스팩’은 이달 기관 수요예측 부진을 이유로 상장을 철회했고, NH투자증권의 ‘NH스팩19호’도 청산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미래에셋증권의 ‘미래에셋드림스팩1호’는 간신히 상장에 성공했지만 일반 청약 미달로 실권주가 발생했다.
이를 두고 IB(투자은행) 업계에서는 ‘메가 스팩 회의론’이 불거지고 있다. 스팩 합병이 상장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미국을 쫓아 대형 스팩을 장려하고 있지만, 제도적 요건이 미비한 데다 피인수 기업 입장에서도 직상장 대비 메리트가 떨어진다는 평이 나오는 까닭이다.
28일 IB업계에 따르면 NH투자증권은 NH스팩19호를 청산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은 상황이다. 지난 2021년 5월 공모 금액 960억원의 초대형 규모로 상장된 NH스팩19호는 현재 유가증권시장(코스피)에 상장된 유일한 스팩이다.
NH투자증권 내부에서는 마땅한 합병 대상이 없어 난처하다는 분위기다. 스팩은 통상 최소 4배에서 10배 이상 규모의 기업과 합병한다. 약 4000억원에서 1조원대의 피인수기업을 찾아야 하는데, 그 중에서도 한국거래소의 합병상장 심사요건을 맞출 수 있는 기업이 없다는 입장이다.
NH투자증권 고위 관계자는 “코스닥에 상장된 20호(NH스팩20호)는 합병 상대를 찾을 수 있을 것 같지만 19호는 청산할 가능성이 높다”며 “회계감사비용과 수수료 등 스팩이 쓴 비용만큼 발기인이 손해보겠지만 10월 말 기한까지 붙일 만한 기업이 없다”고 밝혔다.
스팩은 상장한 지 36개월 내 타 기업과 합병해야 한다. 합병에 실패할 경우 공모주 투자자들에 원리금을 돌려주고 청산 과정을 밟는다. 합병 절차에 약 6개월 정도의 시간이 소요되는 것을 감안하면, NH스팩19호는 올해 11월까진 합병 대상을 찾아 논의를 끝마쳐야 하지만 시간이 촉박하다는 게 업계 중론이다.
IB업계 관계자는 “NH투자증권 IB1사업부는 처음부터 2개의 기업을 합병 후보군으로 두고 19호 스팩을 만들었지만, 6개월 간의 논의 끝에 결국 둘다 불발된 것으로 안다”며 “반 년 안에 대상을 찾지 못하면 관리종목으로 지정돼 상장폐지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유가증권시장 내 조건도 스팩 합병상장 심사 조건도 NH투자증권의 발목을 잡고 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스팩과 합병해 유가증권시장에 상장하려는 기업들은 ▲최근 연도 영업이익 30억원(3년 합계 60억원) 이상 ▲최근 연도 ROE(자기자본 대비 이익 창출 정도) 5% 이상 ▲최근 3년 합계 ROE 10% 이상 ▲자기자본 1000억원에 ROE 3% 이상 및 현금흐름(+) ▲자기자본 1000억원에 영업이익 50억원 이상 및 현금흐름(+) 등 다양한 조건 중 하나를 충족해야 한다. 즉 최소한의 수익성을 보장한 기업만이 스팩과의 합병으로 코스피에 우회상장할 수 있는 셈이다.
투자업계에서는 이 수익성 요건을 없애야만 메가 스팩을 활성화시킬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일반 기업들은 일명 ‘테슬라 요건’(이익미실현 특례 상장)에 따라 적자 상태에서도 코스피에 직상장할 수 있다. 지난 2017년부터 시행된 테슬라 요건에 따르면 기업들은 시가총액이 1조원 이상이거나 5000억원 이상일 경우 수익성 증명 없이도 상장 가능하다. 단, 시총이 5000억원 이상 1조원 미만일 경우 자기자본이 1500억원 이상이어야 한다.
증권사의 한 관계자는 “스팩이라는 것이 기업들의 상장을 우회적으로 돕기 위해 만든 제도인데, 일반 상장 요건보다 까다롭다는 것은 뭔가 잘못된 것”이라며 “금융위원회의 빠른 승인으로 해당 규정을 바꿔주지 않으면 앞으로도 코스피에 있는 스팩들은 결과를 낼 수 없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코스피에 상장한 스팩 중 합병까지 성공한 사례는 전무하다. 앞서 대우증권그린코리아스팩과 동양밸류오션스팩, 우리스팩1호 등은 코스피에 상장했으나 기한 내 합병 대상을 찾지 못하고 결국 청산한 바 있다.
업계에서는 대형 스팩 자체에 대한 회의론도 나온다. 2020년 유동성 호황 시절 미국의 메가 스팩 성공 사례를 쫓아 상장을 추진했지만, 막상 현장에서는 제도와 인식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다는 지적이다.
앞서 KB증권은 공모액 400억원에 발기인 물량 100억원을 더해 창사 이래 최대 규모인 500억원대 대형 스팩(KB스팩24호)을 준비했지만, 저조한 수요예측 성적으로 이달 상장 계획을 접었다. 미래에셋드림스팩1호도 일반 청약에서 0.46대 1의 저조한 경쟁률을 기록하면서 미래에셋증권이 약 20억원의 실권주를 인수해야 했다.
한 투자업계 관계자는 “2020년 미국에서 ‘메가 스팩 붐’이 일자 정부와 기업들이 이를 쫓아가야 한다고 종용해서 1번으로 나온게 NH스팩19호”라며 “지난 2010년 스팩 제도가 도입되자마자 증권사들이 대략 20개 정도의 스팩 상장을 대거 추진했지만 결국 1개 빼고 전부 철회했던 것처럼, (400억원 이상의 메가 스팩들은) 시장에서 받아들일 준비가 안 된 상태”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