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나마 한화리츠•미래에셋스팩 컸지만…일반 청약 흥행 실패
증권사 ECM부, 빅딜 가뭄에 사업 전략 ‘다다익선’으로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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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공모 규모 250억원짜리가 주 먹거리다.” (증권사 IPO팀장)
“대형 증권사들도 이제 전략을 바꿔야 산다. 크든 작든 일단은 딜 건수를 늘려야 한다.” (대형증권사 IB본부장)
“대형 딜에 전사 역량을 집중했던 것이 1분기 패착이었다.” (대형증권사 ECM본부장)
1분기 기업공개(IPO) 시장은 평균 250억원 규모의 ‘중소형 딜’이 지배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올해 1월부터 3월까지 총 24개의 기업이 IPO를 통해 상장한 가운데, 공모 규모가 400억원이 넘는 기업은 스팩과 리츠를 제외하면 티이엠씨ㆍ제이오 단 2곳에 불과했다.
심지어 대형 딜은 대부분 일반투자자 대상 공모 청약에서 미달을 기록하는 등 뚜렷한 불황을 보이고 있어, 증권사 ECM(주식자본시장)부서들은 IPO 전략을 일제히 ‘다다익선’으로 수정한 상황이다.
4일 IB(투자은행)업계에 따르면 증권사 ECM산하 IPO담당 부서들은 올해부터 사업 전략을 대폭 수정했다. 지난해까지는 공모 금액 500억원 이상의 대형 딜에 중점을 두고 시장 점유율을 높였지만, 이제부터 중소형 딜을 대거 주관해 부서당 최소 15개 이상의 딜을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다다익선 전략에 대응하기 위해 NH투자증권은 ECM 3개부서의 IPO담당 인력을 약 50명까지 확충했다. 인원을 늘려 중소형 딜에 분산 대응하겠다는 전략이다. KB증권과 미래에셋증권 등 ‘IPO 명가’로 손꼽히는 증권사들도 중소기업들의 상장에 보다 역량을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대형증권사 관계자는 “빅딜과 중소형 딜을 합쳐 최소 15개 정도는 끌고 가야 증권사가 살아남을 수 있는 시장”이라며 “예전처럼 (주관수수료) 50억원, 100억원짜리 딜 몇 개만 하면 시장점유율 1,2위를 넉넉히 차지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다”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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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어급의 실종은 발행사 및 FI(재무적투자자)와 증시의 눈높이가 맞지 않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공모가가 큰 규모의 기업일수록, 원하는 밸류(기업가치)를 인정받지 않는다면 아예 IPO를 철회하고 대출 등의 차선책을 통해 연명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결국 자금 조달이 시급한 중소기업들만 IPO 시장에 남아 밸류를 낮춰서라도 상장하는 형국이다.
한 증권사 본부장은 “작년부터 추진한 빅딜들이 발행사 내부 문제로 어긋난 경우가 정말 많았다. 헛힘 썼다는 생각에 허탈할 뿐”이라며 “빅딜 위주로만 추진하다 중소형 딜을 많이 못 챙겼기 때문에 지금 공백기를 겪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앞서 증권사들은 지난해 총 공모 규모 12조7500억원이라는 역대급 딜을 수임한 KB증권ㆍ신한투자증권ㆍ대신증권 등이 리그테이블 상위권을 휩쓸었다. 그러나 올해부턴 1조원이 넘는 대어가 전무해, 공모 규모 1160억원의 한화리츠가 업계 최고 빅딜로 취급됐다.
실제로 한화리츠를 공동 주관한 한국투자증권과 한화투자증권이 나란히 1분기 ECM 리그테이블 순위권에 올랐다. 미래에셋증권도 자사 미래에셋드림스팩1호와 엘비인베스트먼트(LB인베) 주관으로 상위권에 이름을 올렸다.
그러나 겨우 성사된 빅딜마저 상장 과정이 순탄치 않은 상황이다. 한화리츠는 기관 수요예측에서 7.24대 1의 경쟁률을 기록하며 선방했지만, 일반 대상 청약에서 0.53대 1로 수요가 미달됐다.
공모 규모 700억원의 미래에셋드림스팩1호도 기관 경쟁률 63.11대 1, 일반 청약 경쟁률 0.45대 1로 찜찜한 결과를 거뒀다. ‘1호 상장’ 기업인 티이엠씨(616억원)도 희망밴드 하단보다 가격을 낮췄지만 일반 공모에서 미달 사태가 발생하며 부진한 성적을 냈다.
투자업계 관계자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세계적인 긴축 등으로 투심이 얼어붙다가 좀 나아지나 했더니 SVB(실리콘밸리은행)와 CS(크레디트스위스은행) 이슈가 또 터졌다”며 “기관들이 물량을 매도하고 빠져나갈 시기가 다가오면 매물이 대거 출회되면서 중소형 딜의 온기마저 사그라들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