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한 재계, 현대차만 실적 고공행진
국내외 전기차 판매 급증했지만
완성차 기업들 가격 경쟁 갈수록 심화
현대차-기아, 결국 美보조금 대상 제외
배터리 사업 전략 고민…힘받는 내재화 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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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길고 길었던 코로나 팬데믹, 그리고 엔데믹의 과정을 거치며 현대자동차그룹은 본업인 완성차 판매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지난 수년 간 해외 신사업에 투자를 쏟았다면 이제는 손실폭을 줄이기 위한 정리 수순에 돌입했다.
내연기관의 종식이 예고돼 있는 상황에서 글로벌 전기차 시장에서 우위를 점하는 것은 현대차그룹에 무엇보다 중요한 과제다. 그룹 차원에서 추진 중인 소프트웨어 중심, 이른바 SDV(Software Defined Vehicle) 전환과는 별개로 하드웨어의 완벽한 변화가 필수적이다.
테슬라가 촉발한 전기차 시장에서의 가격 경쟁은 갈수록 심화하고 있다. 앞으론 완성차 업체들의 경쟁 구도 또한 전기차 가격 경쟁력을 갖춘 몇몇 업체들로 재편될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 같은 맥락에서 현대차그룹을 향한 투자자들의 가장 큰 관심사는 역시 배터리 사업의 확장, 이를 위한 수직계열화와 가격 경쟁력 확보에 맞춰져 있다.
현대차그룹은 이미 관련 조직을 갖추고 인력을 빠르게 흡수하고는 있지만 무엇보다 대규모 M&A를 통한 내재화 전략이 가장 빠른 길로 평가 받고 있다. 코로나 팬데믹,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과 같은 대외 변수로 원자재와 핵심부품의 안정적인 수급이 무엇보다 절실해진 상황에 최근 미국이 전기차 보조금 지원에서 현대차와 기아를 배제하면서 배터리 내재화에 대한 필요성이 더욱 커지고 있다는 평가다.
다행스럽게도 현대차의 실적은 가파른 회복세를 나타내고 있다. 회사는 올해 1분기 실적을 이달 말 발표할 예정인데 증권가에선 2010년 새 회계기준(IFRS) 도입 이후 최대 수준의 실적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현재와 같은 판매 호조가 지속할 경우 연간 현대차와 기아의 합산 영업이익이 20조원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재계를 대표하는 기업들의 영업이익이 급락하거나 적자 폭이 확산하는 것과는 대조를 이룬다.
현대차와 기아의 판매에서 전기차의 비중은 매년 늘고 있는 추세다. 그룹은 올해 현대차(33만대)와 기아(25만8000대)의 전기차 판매 목표를 58만8000대 수준으로 지난해 판매 대수(37만1800대)보다 20만대 이상 상향 조정했다. 실제로 올 1분기 해외 시장의 전기차 판매는 전년 대비 90% 이상 급증한 10만4500대를 기록했고 내수 시장 판매 또한 30%가량 늘어난 3만1000여대를 기록했다.
현대차그룹은 2030년 글로벌 전기차 생산량 목표를 2030년까지 364만대로 잡은 상태다. 이를 위해 제1 주력 시장인 북미 시장 공략을 위해 전기차 전용 공장을 건립하고 SK온, LG에너지솔루션 등과 배터리 합작 공장 건립도 서두르고 있다. 전기차의 대량 생산을 위해선 현지에서 배터리 수급이 필수이기도 했지만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에 대응하기 위한 측면도 강했다.
현대차가 생산중인 GV70 차종은 17일 미국의 보조금 혜택 대상에서 최종 제외됐는데, 이는 미국 내 생산중인 GV70 모델에 탑재되는 SK온의 배터리 셀이 중국에서 생산된 것이 원인으로 알려졌다.
결국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과의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고 전기차 기업으로의 완벽한 전환을 위해선 배터리 사업 전략에 대한 세밀한 접근이 필요하단 지적과 함께 더 나아가 배터리 내재화가 불가피한 상황이란 평가가 나온다. 현대차그룹이 내연기관 시대에서 수직계열화에 따른 이점을 여느 기업보다 톡톡히 누린 점을 고려하면 전기차 시대에서 밸류체인 완성 전략 또한 배제할 수 없는 방안이란 평가를 받는다.
물론 현대차그룹이 배터리 내재화를 위한 작업에 본격적으로 착수할 경우 기존 협력업체들과의 관계를 재정립해야 하는 과제가 남게 된다. 실제로 현대차그룹 한 계열사는 2차전지 관련 조직을 개편하고 인력을 확보하는 과정에서 삼성과 LG그룹 등의 반대에 부딪혀 결국 관련 조직을 대폭 축소한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현재 글로벌 전기차 시장에선 완성차 업체들의 가격 경쟁이 심화하고 있다. 조금이라도 싼 값으로 차량을 공급하는 데 필수적인 요건은 역시 배터리 가격의 인하이다. 이를 위해 테슬라, 폭스바겐, 제너럴모터스(GM) 등 글로벌 완성차 기업들은 광산 또는 채굴기업 등 원자재 조달 분야에 직접 투자할 계획을 세우기도 했다.
현대차의 경우 타 완성차 기업들과 비교해 전세계 거점 국가에 생산 기지를 보유해 대량 생산이 가능하기 때문에 내재화를 통한 안정적인 배터리 공급이 가능할 경우 다른 완성차 그룹들에 비교 우위를 점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투자은행(IB) 업계 한 관계자는 "현대차그룹에 가장 중요한 과제는 다양하게 펼쳐 놓은 신사업들을 구현하는 것이 아니라 눈 앞에 다가온 전기차 시대에 인프라를 구축하고 수익성을 극대화하는 것"이라며 "앞으로의 대규모 투자 또한 차량용 반도체, 2차 전지와 같은 핵심 부품의 기술력과 설비를 가진 기업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사실 현대차그룹 내부적으로도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현대차는 지난해 말 그룹 전반적인 모빌리티 전략을 총괄하는 조직인 글로벌전략오피스(GSO)를 신설, 현대차 신사업의 핵심으로 떠오르고 있는 김흥수 부사장에게 사령탑을 맡긴 상태다. 실제로 해당 조직 및 주요 경영진들은 배터리 분야 투자에 대해 고심을 거듭하고 실무진들은 투자 대상을 물색하고 있는 상황으로 알려졌다.
현대차그룹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현대차 실무진들이 배터리 관련 기업을 정말 열심히 물색하고 있는데 현재 정말 초기 단계의 기업들도 터무니 없는 밸류에이션을 제시하고 있는 실정이다"며 "그러나 현대차의 연간 현금흐름을 고려한다면 대규모 투자도 충분히 가능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현대차의 배터리 내재화 전략의 중심에 어느 계열사가 서게 될지도 관심의 대상이다. 그룹은 현대글로비스를 통해 폐배터리 사업을 펼치고는 있지만 완성차용 배터리 공급망 확보라는 사업적 목표와는 다소 결이 다르다는 평가를 받는다. 현재로선 지배구조의 정점에 있는 현대모비스가 유력한 사업 주체로 부각하고 있는데 해당 시나리오가 현실화할 경우 각 계열사의 기업가치 변화에 따른 지배구조 개편 밑그림도 그려 볼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