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세컨더리 육성 의지에 VC 업계도 반색
차익 노린다지만 이커머스는 우선순위 밀려
'중개업' 가치 하락, 향후 회수도 난항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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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벤처캐피탈(VC) 시장에 비상장 이커머스 기업들의 구주가 매물로 나오는 경우가 많지만 인수자를 찾기는 쉽지 않다. 중간회수 수요가 늘어날 것이란 전망에 세컨더리투자조합(세컨더리펀드) 조성이 늘어나고 있지만, 이들도 '밑빠진 독'이란 인식이 강한 이커머스를 우선 투자처로 꼽을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지적이다.
최근 중소벤처기업부(이하 중기부)는 2023년 2차 모태펀드 정시 출자 공고를 냈다. 일반세컨더리펀드에 3000억원, 기존 벤처펀드의 출자자(LP) 지분을 인수하는 LP지분유동화펀드에 400억원의 예산을 집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2015년 2조5800억원대이던 벤처투자조합 결성 규모는 3년 뒤 4조8000억원대로 커졌다. 통상 펀드 만기가 8년인 점을 감안하면 올해부터 회수 시도가 크게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 정부 주도 세컨더리펀드가 만들어지면 VC펀드들이 만기에 쫓기지 않고 중간 회수를 검토할 길이 생긴다.
IMM인베스트먼트, LB인베스트먼트, 신한벤처투자, KB인베스트먼트 등 유수의 VC 운용사는 이미 세컨더리펀드를 조성한 상태다. 자금 모집을 위해 출자자(LP)와 접촉을 늘리려 분주한 타 VC들의 모습도 포착된다. 증권사 역시 VC펀드 포트폴리오 기업의 지분을 노리고 있다. 몸값이 낮아진 기업을 잘 찾으면 쏠쏠한 차익을 거둘 수 있다는 것이다. 기업공개(IPO) 전망이 밝다고 평가되는 무신사의 구주 일부는 미래에셋증권 등이 인수한 것으로 파악된다.
한 VC업계 관계자는 "넥스틴, 아이지에이웍스 등 조합 만기 때문에 매물로 나온 구주를 인수한 투자자들이 높은 수익률을 전례가 있다"며 "정부도 집중하는 사업이다 보니 올해부터 세컨더리펀드 조성에 무게를 두려는 VC 운용사가 많아졌다"고 말했다.
다만 이커머스 기업에까지 세컨더리펀드의 시선이 미칠지는 미지수다.
VC업계에 따르면 연초 상장 계획을 철회했던 컬리, 오아시스 등을 비롯해 무신사, 오늘의집, 브랜디, 아이디어스 등 이커머스 기업들의 구주가 매물로 나왔거나 나올 가능성이 있다. 대체로 초기 투자자들이 지분을 내놓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기대치를 낮춰서라도 투자 기업 지분을 넘기겠다는 의도로 풀이되는데, 이런 고민은 세컨더리펀드도 마찬가지일 수밖에 없다. 유동성이 줄어든 후 이커머스와 같은 '중개' 성격의 사업은 기업가치가 크게 떨어졌다. 후속 자금 모집에 애를 먹으며 사업 동력이 약화한 곳들이 많다.
여성 패션 쇼핑앱 브랜디는 물류센터 투자를 위해 대규모 계약금을 지불했지만 부동산 경기 하락, 후속 자금 모집 불발 등으로 잔금을 납입하지 못했다. 계약금을 돌려받지 못하게 되면서 자금난이 가속화했다. 컬리는 대출, 신규 투자, 대기업에 매각 등 다양한 방안이 거론됐지만 일단은 기존 투자자가 나서 급한 불을 껐다.
앞으로도 이커머스가 넘어야 할 증시 문턱은 높을 것이기 때문에, 세컨더리펀드 등 투자자 입장에선 웬만큼 싼 가격이 아니면 선뜻 손이 가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세컨더리 거래를 해본 곳들은 만기가 가까워지거나 청산을 앞둔 펀드에 '질 좋은' 자산이 남아 있는 경우가 드물다는 점도 경험상 알고 있다. 시장에서 '보릿고개'를 지나는 기업을 어떻게 살려야 하느냐 하는 고민이 많지만, 이커머스는 상대적으로 시야 바깥에 있는 분위기다.
세컨더리펀드 결정 완료를 앞둔 한 대형 VC 소속의 심사역은 "시장에 나와 있는 이커머스 기업 중에선 흑자전환을 앞두고 있다고 설명하는 곳도 간혹 있긴 하다"면서도 "원하는 기업가치가 크게 낮아진 것도 아니고, 경영상황이 나빠져서 나온 곳이 대부분인 터라 구주거래 과정 자체가 쉽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다른 VC 운용역은 "세컨더리펀드를 결성하긴 했지만 이커머스는 신주 투자는 물론 구주 인수도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