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은 실태조사 공개 않고…운용업계는 언론과 접촉 줄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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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황 파악이 깜깜이인 해외 부동산 펀드가 시한폭탄으로 지목되는 가운데 관련업계에선 말을 아끼는 분위기다. 금융당국은 실태 조사 결과를 공개하지 않고 있고, 운용업계도 대외 언급을 줄이며 숨죽이기에 들어갔다.
19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공모와 사모를 합한 해외 부동산펀드 설정액은 73조321억원으로 집계됐다. 지난 2015년 연말 설정 잔액이 11조원에 불과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7년 사이 7배 가까이 늘어난 것이다. 전 세계적 저금리 기조에 부동산 시장이 초호황기를 맞자, 국내 기관투자자들이 너도나도 해외 부동산 투자를 늘린 영향으로 해석된다.
문제는 고금리 환경에 해외 부동산펀드가 부실의 뇌관으로 부상하고 있다는 점이다. 각국 중앙은행이 유동성 옥죄기에 나서면서 금융사들의 자금 회수 필요성은 높아졌다. 그런데 국내 금융사의 해외 투자가 집중된 미국 등지에선 공실률이 치솟으면서 자산가치가 떨어지고 있는 것이다. 해외 부동산 투자 대부분이 변제순위가 낮은 중·후순위 대출로 알려져 자산 부실화 시 타격이 더욱 클 것으로 예상된다.
해외 부동산펀드 현황에 대한 관련업계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지만, 금융당국은 실태 조사 자료를 공개하진 않고 있다. 금융감독원은 해외 부동산펀드와 관련해 면밀히 상황을 주시하고 있다고 알려진다.
각 운용사에 매월 업무보고서를 제출받는 것을 물론 자료를 수시로 요청해 해외 부동산펀드의 손실을 사전에 인지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손실을 방지할 수는 없지만 회사 측에 지속적인 관리를 독려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해외 부동산펀드 현황 및 실태 조사를 하고 있는 셈이다.
다만 시장 불안을 가중시키지 않기 위해 실태조사를 공개할 필요는 없다고 보고 있다. 국내에서 설정된 해외 부동산펀드는 대체로 폐쇄형 사모펀드로 환매가 쉽지 않아 대규모 환매 사태가 일어날 우려가 적고 자산매각전에는 손실이 확정되지 않기 때문이다. 정보 공개로 시장의 불안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등 자료 공개로 인한 나비효과가 우려된다는 반응이 나온다.
부동산운용업계도 언론사와 접촉을 줄이며 숨죽이기에 들어갔다. 국내 최상급 부동산 운용사 중 한 곳은 보도자료를 대폭 줄였다. 또 다른 곳은 미디어와의 접촉을 줄이라는 내부 지시가 내려졌다고 알려진다. 회사에 불리한 내용이 확산하는 것을 막겠다는 포석이다.
그러나 해외 부동산 펀드 현황이 깜깜이라는 사실이 더욱 업계의 불안을 키우고 있단 지적도 나온다. 상업용 부동산 위기로 글로벌 금융 불안이 빠르게 확산했다는 점을 반추해 보면 국내서도 일찍이 현황을 공개하고 대응에 나설 필요가 있다는 설명이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해외 상업용 부동산 가격이 하락하면 국내 금융사도 위기에 빠질 수 있다. 코로나 팬데믹 전에 해외 대체투자가 급격히 늘면서 전 세계 상업용 부동산 부실 위험이 남의 일이 아니게 됐다"라며"국내 금융사는 해외 부동산에 투자할 때 메자닌 등 중순위 대출로 투자한 사례가 많다. 해외 부동산 위기를 진단 및 대응하기 위해서 현황 자료가 공개될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금감원은 지난 2019~2020년까지만 하더라도 해외 부동산펀드 관련 자료를 공개했다. 지난 2019년엔 지상욱 바른미래당 의원실이 금감원에서 자료를 받아 해외 부동산펀드 투자 현황을 자세히 발표했는데 국내에 설정된 해외 부동산펀드 각각의 수익률까지 적혀있을 정도다. 2020년엔 금감원 자산운용감독국이 해외 부동산펀드 현황 및 대응 방안 자료를 공개했다.
현재 다수의 국회의원실에서도 금융당국에 해외 부동산펀드와 관련한 정보를 요청하는 분위기다.
또 다른 금융권 관계자는 "금감원이 작년부터 국내 부동산 PF(프로젝트 파이낸싱) 전수 조사 자료도 공개를 안 하고 있다. 현재 다수의 국회의원실에서 금감원에 해외 대체투자 자료를 요청한 상황이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