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H지수 폭락에 4대 은행 ELT 원금손실 가능성…10월부터 ‘상환 폭탄’
입력 2023.05.02 07:00
    홍콩H지수, 2009년 금융위기 이후 최저치 달성해
    H지수 연계된 파생상품들 투자자 손실구간 진입
    ELT 판매 시중은행 '긴장'…1년 ELT 잔액만 21조
    상환 지연 ELT, 올 10월과 내년 4월 '만기 폭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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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중국 경기 침체로 홍콩H지수(홍콩항셍중국기업지수)가 3년 내내 하락세를 유지하자, 이에 연계된 파생상품인 ELS(주가연계증권)ㆍELT(주가연계신탁)의 원금손실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특히 홍콩H지수의 고점이었던 2021년경 은행에서 판매된 ELT의 경우, 올해 10월과 내년 4월에 만기가 몰려 있어 그때까지 H지수가 6600선을 유지하지 못한다면 이때 대규모 손실이 발생할 것으로 전망된다. 

      28일 금융감독원 발표에 따르면 지난 2022년 말 기준 손실 구간에 돌입한 파생결합증권 규모는 총 7조3000억원으로, 전체 상품 잔액(102조2000억원)의 7.1% 수준으로 나타났다. 이중 약 90%가 홍콩H지수에 기반한 ELS다.

      이에 증권사가 판매하는 ELS를 신탁계정에 편입해 ELT로 판매하고 있는 시중은행들도 난처해진 상황이다. 전반적인 중국 경기 침체로 인해 홍콩H지수가 회복할 기미를 보이지 않으면서, 투자자들의 피해 추산 규모가 예상보다 커지고 있는 까닭이다. 

      국민의힘 조수진 의원실에 따르면 지난 2021년 말 기준으로 KB국민ㆍ신한ㆍ하나ㆍ우리은행 등 4대 시중은행이 판매한 ELT는 29만5428건으로, 잔액만 약 21조5777억원이다. 이는 전년 잔액(21조515억원)보다 늘어난 수치다. 

      ELS 및 ELT는 만기일까지 주가지수 등 기초자산의 가격이 정해진 요건을 하회하지 않으면 원금과 이자를 지급하는 상품이다. 원금손실구간은 대부분 기준가의 50~55%에서 형성되고, 만기는 3년 이하다. 주가지수가 손실구간 밑으로 한 번이라도 내려가면 손해를 보는 ‘녹인’ 상품과, 만기 시점의 주가로만 평가하는 ‘노녹인’ 상품으로 나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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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지난 2020년 말부터 2021년 초에 출시된 홍콩H지수 녹인 상품은 사실상 손실이 확정됐다. 당시 지수는 1만1000~1만2000선을 웃돌았지만, 지난 2022년 10월경 최저 수준인 4919.03까지 떨어지면서 약 60% 감소했기 때문이다. 손실 구간을 크게 밑돈 셈이다.

      은행들이 주로 판매하고 있는 노녹인 ELT도 손실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추정된다. 홍콩H지수가 지금처럼 6600선의 주가 흐름을 유지할 경우, 출시 시점보다 지수가 45% 이상 감소해 손실구간 상태에 접어든 탓이다. 

      설상가상으로 금융 시장에선 중국 경기 침체와 미중 갈등으로 인해 홍콩H지수 회복이 어려울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한 증권사 국제 증시 연구원은 “중국 시장이 지난해 11월 ‘제로코로나’ 선언으로 확실히 회복 중이긴 하지만, 아직 민간기업 규제 이슈가 남아있는 상황”이라며 “홍콩H지수는 중국 지수 중에서도 특히 해외 자금 비중이 높아 국제 정세에 큰 영향을 받는 데다, 50개 종목에 한정돼 변동성도 크다”고 지적했다. 

      이에 은행권에선 ELT의 만기가 올해 하반기와 내년 상반기에 몰려 있는 것을 두고 우려의 목소리도 높다.  

      은행에서 판매하는 노녹인 ELT는 통상 6개월 동안 주가지수가 10% 이상 하락하지 않으면 이자와 원금을 즉각 상환받지만, 10% 이하로 떨어지면 6개월 뒤로 평가를 미루다 만기에 손익이 결정나는 구조다. 

      다만 홍콩H지수는 지난 2020년 이후부터 지속 하락세를 유지하다, 지난해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 통상 1~2년 내 상환이 완료되는 것과 달리, 2년 넘게 상환을 계속 미뤄왔기 때문에 상환 규모가 이례적으로 클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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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한 대형은행 임원은 “올해 10월부터 내년 4월까지 상환을 미뤄왔던 ELT들의 만기가 대거 몰려있다“며 “손실 가능성을 인지하고 있으며, 특히 내년 4월 만기 상품들의 상환여부를 그룹 차원에서 유심히 지켜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대부분의 은행은 ‘델타 뉴트럴’(양방향 헷징) 전략을 실시하고 있어, ELT 손실이 확정돼도 큰 손해를 보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롱 포지션과 숏 포지션을 동시에 가져가면서 투자 자산의 가격 변동 영향을 최소화하면, 만기에 가까워질수록 손해를 보지 않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한 금융지주 관계자는 “ELT는 회사 입장에선 헷징을 통해 수익을 얻을 수 있는 상품”이라며 “ELT의 기반이 되는 ELS 상품은 한 회사당 일주일에 열댓 개씩 쏟아지는 박리다매형 상품이라 운용비도 거의 들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다른 시중은행 관계자는 “금융소비자보호법이 강화되면서 개인 성향에 맞지 않는 ELT 상품은 아예 추천하지 않을 정도로 금융 당국과 함께 투자자들의 피해에 각별히 유의하고 있다”며 “다만 불완전 판매가 아닌 이상 손실은 투자자들의 책임인 데다, 정부도 비이자수익 확대를 장려하기 때문에 ELT 판매량을 줄일 계획은 없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