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PF 선순위 의미 퇴색"…시공사 VS 조합 갈등에 회수 애매해진 대주단
입력 2023.05.15 07:00
    공사비 증액 두고 유치권 행사로 건설사
    선순위 대주단, 완공된 이상 대항하기 쉽지 않아
    유치권 해소는 시행사 몫…"감당 가능한 곳 없어"
    대주단이 '울며 겨자먹기'로 추가 공사비 부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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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전국 재건축 건설 사업장 곳곳에서 공사비 증액을 두고 시공사와 조합의 갈등이 발생하고 있다. 원자재값과 인건비가 오른 데다 지속적인 금리 인상의 영향으로 금융비용마저 늘어나자 시공사의 수익성이 줄어든 영향이다.

      시공사가 공사비 증액을 요구하면 조합원이 분담금을 추가로 부담하거나, 시행사가 향후 벌어들일 이익의 일부를 포기하는 방식으로 공사비 보전이 가능하다. 그러나 시행사가 추가 공사비 부담을 떠안을 여력이 부족한 경우가 대부분이고, 조합은 증액을 극구 반대하는 경우가 많다. 이에 시공사가 유치권 행사를 예고하는 사례가 많아졌는데 대주단은 선순위 채권자임에도 불구하고 회수를 고민해야 할 시기가 찾아왔다.

      최근엔 공사비 증액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시공사가 유치권 행사를 예고하는 경우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삼성물산(2022년 시공능력평가 1위)과 반포래미안원베일리 조합 사이의 갈등이다. 삼성물산은 지난해 4월 1560억원 증액을 요구했지만, 조합이 받아들이지 않자 유치권 행사를 예고했다. 현재 공사비 증액에 대한 한국부동산원의 감정이 진행되고 있다. 

      대우건설(6위)과 대치푸르지오써밋(대치1지구재건축정비사업) 조합원 사이의 갈등이 현재진행형이다. 올해 초 대우건설은 조합원에 설계변경·물가 상승을 반영해 671억 공사비 증액을 요구했다. 이후 협상을 통해 증액분을 228억원을 정했는데 합의안에 반대하는 일부 조합원은 며칠째 대우건설 사옥 앞에서 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GS건설(5위)·현대건설(2위)과 마포자이힐스테이트 조합원 등도 공사비 증액을 둘러싸고 갈등을 겪은 바 있다.

      시행사와 대주단이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을 약정할 때 시공을 맡은 건설사의 책임준공의무를 포함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시공사의 책임준공 의무는 시공사가 예정된 공사기간 내에 건축물을 준공해야 하는 의무를 뜻한다.

      사실 책임준공의무를 다한 시공사가 시행사 또는 조합과 공사비 증액 합의에 이르지 못해 유치권을 행사하게 되면 선순위 채권자인 대주단이 피해를 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평가다. 유치권 행사 기한이 길어져 수분양자들의 입주와 잔금 납입이 늦어지면 그만큼 상환 기한도 늘어나기 때문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도 선순위 채권자인 대주단도 대항하기가 쉽지만은 않다. 사업장을 팔 수 있는 권리는 대주단이 갖고 있지만 대주단이 사업장을 처분하기 전에 시공사가 유치권을 행사했기 때문이다. 사업장 처분을 시작해 원금 회수를 추진하더라도 유치권이 걸린 매물은 제 값을 받기 어렵다.

      공사비 증액은 ▲시행사가 시행이익을 나누거나 ▲조합이 분담금을 더 내 시공사의 요구를 들어줄 수는 있다. 그러나 국내에 자금 여력이 충분한 시행사는 손에 꼽는다. 

      한국기업평가는 "국내 시행사의 신용도를 감안하면 유치권(제한물권)을 해소할 수 있는 시행사는 사실상 없고, 시공사가 유치권을 해소할 요인도 거의 없다. 조합의 동의를 이끌어내기도 쉽지 않으며, 다툼이 장기화할 가능성도 크다"고 평가했다.

      결국 PF 대주단은 원금을 회수하기 위한 수단으로 시공사가 증액을 요구한 공사비를 직접 부담해 시공사의 유치권을 풀어내는 경우도 나타난다. 대주단이 시행사에 시공사가 증액을 요구한 공사비를 추가로 대출하고, 시행사는 이 금액을 시공사에 전달하는 식이다. 시행사와 조합이 서로 해결할 수 없는 상황에서 돈을 빌려준 대주단이 대신 나서는 모양새다.

      사실 이런 방식으로 추가로 대출한 자금에 대해선 대주단이 선순위 채권자로서 권한을 주장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투자은행(IB) 업계 한 관계자는 "최초 공사비 계약에 대해선 시공사가 대주단보다 후순위일 가능성이 크지만 증액한 공사비에 대해선 시공사 및 대주단이 채무자(시행사)에 대해 동순위 권한을 행사할 수 있다"며 "이미 책임준공의무를 다한 시공사가 유치권을 행사하고 있으면 시공사가 (대주단 보다) 유리한 상황이 된다"고 말했다.

      이렇다 보니 부동산PF 시장에 '선순위'의 개념 자체가 퇴색했다는 자조적인 반응이 나오기도 한다.

      황보창 한국기업평가 연구원은 "본 PF에서 선순위 대출 혹은 담보(처분)권이란 '사업 및 대출약정서' 상의 권리일 뿐, 공사비의 대부분을 선지급하는 수분양자에게 대항할 수 있는 권리가 아니며 수분양자를 보호하는 각종 법률에 의해 사실상 후순위 지위를 가진다"고 밝혔다.

      당분간은 시공사와 조합 사이의 갈등이 지속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투자금융업계 PF 담당자는 "최근 완공을 앞둔 사업장은 시행사·시공사가 2020~2021년 고점에서 토지를 산 경우가 많다"며 "이후 공사비는 늘어났으며 주택가격은 하락 국면을 맞아 '낮아진 수익을 보전해라'는 시공사와 '계약대로 해라'는 조합의 갈등은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