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 셸(Shell) 아닌, '작전세력 기지' 된 SPAC...증권사 책임론 부상
입력 2023.05.23 07:00
    취재노트
    '삼성전자가 M&A 한다' 루머에 삼성스팩 동시 급등
    인수합병이 아니라 '주가 조작 근거지' 비판 커져
    국내 소형ㆍ다수 스팩 시장, 구조상 주가 조작에 취약
    스폰서당 스팩 수 줄이고 덩치 키워야...규제 개편 필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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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지난 2월, '삼성'이라는 브랜드가 붙은 SPAC(기업인수목적회사;이하 스팩) 3곳의 주가가 동시에 급등했다. 특히 상장 직후 공모가(2000원)의 6배인 1만2000원까지 급등했던 '전적'이 있는 삼성6호스팩은 '삼성전자의 인수합병(M&A)에 역할을 할 것'이라는 루머에 다시 4000원을 돌파하기도 했다. 결과적으론 아무 것도 없었다. 현재 삼성6호스팩 주가는 2월 고점 대비 40% 하락한 상태다.

      #2. 지난해 9월엔 하나금융20호스팩의 주가가 뜬금없이 급등했다. 단 3거래일만에 이전 주가 대비 70% 폭등해 장중 한 때 3600원선에 다가서기도 했다. 전도유망한 이차전지 기업과 합병한다는 소문이 퍼지면서였다. 해당 기업의 모기업 임원이 스팩에 발기인으로 재직 중이라는 그럴싸한 설명과 함께였다. 그러나 규정상 발기인의 관계사 및 계열사는 스팩과 합병할 수 없다. 주가는 곧 급락했고, 5개월 후 하나금융20호스팩은 이차전지와는 아무 관련이 없는 스마트팜 업체와 합병을 발표했다.

      인수합병(M&A)의 요람이 아니라 작전세력의 투기판이 된지 오래다. 국내 도입 14년째인 스팩 이야기다. 빠르고 편리한 상장을 위한 우회상장 통로(Shell;껍데기, 셸)를 만들어 발행시장을 활성화하겠다는 당초 취지가 무색해지고 있다는 비판이 많다.

      국내에서 사실상 유일한 스폰서(sponsor) 역할을 맡고 있는 증권사들은 수익을 위해 기계적으로 스팩을 뽑아내고 있다. 개성도 전략도 없다는 지적이 많다. 한 해에 합병에 성공하는 스팩은 평균적으로 20여곳 남짓인데, 최근 3년 사이엔 매년 40곳 이상의 신규 스팩이 상장했다. 현재 상장돼 거래가 가능한 스팩만 70여곳이고, 올해에도 30여곳 이상의 신규 상장이 예상된다.

      스팩은 구조상 주가조작에 취약하다는 평가가 제도 도입 당시부터 나왔다. M&A를 목표로 하는 3년 만기 서류상 회사(페이퍼컴퍼니)라는 특성상 '정보 불균형'은 기본적으로 타고난 특성이다. '어디 유망한 기업과 상장한다더라'는 소문 한 마디로도 언제든지 급등할 수 있다.

      게다가 국내 증시에서 스팩은 시가총액이 보통 100억~200억원 수준으로 작고, 하루 거래량은 고작 몇천만원 수준이고, 현 규제 하에서 공매도도 되지 않는다. 스팩의 본고장인 미국과 가장 크게 다른 지점이다.

      증시 관계자들은 스팩 도입 초기의 주가 이상급등과 최근 스팩의 주가 이상급등과는 명백한 차이가 있다고 지적한다. 스팩 도입 초기 미래에셋1호나 대우그린코리아스팩 등은 새로운 제도에 대한 개인투자자들의 과열된 기대감이 주가 급등의 주범이었다. 지금은 M&A에 대한 루머가 주가 급등의 핵심 원인이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주가가 이상급등한 스팩을 살펴보면 소수계좌거래 집중종목 경고가 뜨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며 "특정 세력이 명백한 의도를 가지고 루머를 유포하고 수익을 회수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런 변화가 일어난 배경으로 2014년 '1사 1스팩 규제 폐지'가 꼽힌다. 

      이전까지 금융당국은 관리 필요성을 강조하며 1개 증권사 당 1개의 상장 스팩만을 암묵적으로 허용해왔다. 2014년 이런 원칙이 폐기되며 한 증권사가 동시에 여러 스팩을 상장ㆍ운용할 수 있게 됐다. 

      자율성을 높여준다는 취지였으나, 현실에서는 증권사 기업공개(IPO) 부서의 '운영비 조달'을 위한 루틴 상품화가 됐다는 지적이 나왔다. 100억원 규모의 스팩을 1년에 5~6개정도 상장하면 수수료 수익으로 10억원 안팎이 나온다. 합병이 성사되지 않더라도 투자자들에게 원금이 상환되고, 증권사도 크게 손해볼 일이 없다.

      문제는 이런 양산형 스팩이 많아지며 증권사의 관리 책임도 함께 희석됐다는 점이다. 주가조작이 쉬운 태생적 특성에, 국내 증시에서 유일하게 스폰서를 맡고 있는 증권사의 관리 책임도 희석되며 '작전세력을 위한 셸'이라는 오명이 생기고 있는 것이다.

      개성도 원칙도 없다보니 뜬소문에 더 휘둘리기 쉬운 구조가 됐다는 지적도 있다. 증권사도 나름대로 발기인 풀(pool)을 다양화하고 있다는 입장이지만, 막상 투자자 입장에서는 체감이 쉽지 않다. 증권사별로 적게는 2~3곳에서 많게는 5곳이 넘는 스팩을 상장시켜두고 있는데, 합병 대상을 찾는 노력도 분산될 수밖에 없다는 평가다.

      이렇다보니 일각에서는 스폰서 증권사별로 스팩 상장 수를 일정부분 제한하는 규제를 다시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자율성을 존중하되, 관리 책임을 감당할 수 있는 범위내에서 스팩을 활용할 수 있게 하자는 것이다. 

      장기적으로는 미국처럼 벤처캐피탈(VC)이나 운용사 등 투자를 담당하는 금융회사들에게도 스폰서 자격을 주자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스폰서 독점 구도를 깨 경쟁을 활성화시키자는 것이다. 미국은 투자운용회사가 스폰서 전문 자회사를 설립해 스팩 결성에 나서는 경우가 많다. 동시에 상장해두는 스팩 수도 2~3곳 정도로 조절해 상장 그 자체보다는 합병 성사에 무게를 두는 구조다.

      한 운용업계 관계자는 "결국은 국내 증시에서도 스팩의 대형화가 이뤄져야 할 것"이라며 "스폰서가 역량을 집중한 대형 스팩이 중견기업과 합병에 성공하는 사례가 나와야 소규모ㆍ다수 스팩 시장 구조에서 나오는 부작용을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