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PO 통한 회수 길 막히며 지분 매각으로 속속 전환
정부 주도 K-바이오 5000억 펀드도 자금 조달 난항
'양치기 산업' 오명 당분간 지속..."기관 신뢰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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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고금리 시대에 성장주에 대한 기대감이 크게 낮아지며 바이오 회사는 물론, 바이오에 투자한 벤처캐피탈(VC) 등 금융회사들도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기업공개(IPO)를 통한 자금회수(exit;엑시트)길이 막히며 지분 매각을 검토하는 기관이 많아졌지만, 이조차 여의치 않은 상황이다.
'마지막 자금줄'로 기대를 모았던 5000억원 규모 K-바이오ㆍ백신펀드마저 결성에 난항을 겪고 있다. 2018년 전후 바이오 붐(boom)때 상장했던 회사들이 뚜렷한 실적개선을 보여주지 못하며 대다수 기관들이 냉랭한 반응을 보이는 까닭이다. 정부가 주도하는 K-바이오 펀드마저 무산된다면 앞으로 상당기간 한파가 지속될 거란 전망이다.
19일 금융권에 따르면 최근 상당수 VC들은 바이오 기업들의 밸류가 저평가를 벗어나지 못하자, 상장을 통한 투자금 회수가 불가능하다는 판단 하에 지분 매각으로 노선을 전환했다.
지난 2018년 '바이오 붐' 당시 투자했던 펀드들의 만기가 2년여밖에 남지 않은 까닭이다. 일부 심사역은 직접 창업주를 찾아가 매각을 설득하거나, 경영권을 인수해줄 사모펀드(PEF)를 직접 접촉하고 있다는 전언이다. 아예 최초 투자 당시부터 상장보다는 M&A를 통한 회수를 염두에 두고 투자 대상을 고르는 일도 크게 늘었다.
투자업계 관계자는 "여태까지 국내에서 바이아웃을 위해 바이오 기업을 인수하는 VC들은 없었다"며 "요즘엔 바이오 분야에서 VC나 PE들의 '빅딜'이 많이 추진되고 있다. 미국에선 일반적이지만 국내에선 전례가 없는 일"이라고 평가했다.
다른 VC 심사역도 "최근 VC들이 물밑에서 바이아웃 시도를 많이 하며, 우리 역시 최근 PE를 접촉해 투자회사 매각 관련 사전 논의를 진행했다"며 "다만 PE와의 밸류 인식 차이가 커서 성사되는 경우가 매우 적다"고 설명했다.
그간 투자회수 통로 역할을 톡톡히 해줬던 IPO 시장은 문이 닫혔다. 2~3년 전까지만 해도 한 해 20곳 이상의 바이오 기업이 상장을 완료했지만, 올해엔 지금까지 2곳에 그친다.
기업가치를 바라보는 시장의 평가도 박해졌다. 올해 바이오업계 유망주 중 하나였던 지아이이노베이션은 프리IPO(상장 전 투자유치) 당시 투자 단가의 3분의1 수준으로 기업가치가 책정됐다. 지난 2021년 VC와 자산운용사들이 투자할 당시에는 기업가치가 7500억원에 달했는데, 올해 공모가 기준 시가총액은 3000억원도 넘지 못했던 것이다.
투자회수 길이 막히자, 자금조달 시장 역시 얼어붙고 있다. 바이오 기업 신규 투자가 크게 줄어든 가운데, 올 상반기 유일한 희망줄로 꼽히던 정부의 K-바이오 펀드마저 공회전하고 있다.
앞서 보건복지부와 국책은행 3곳(산업은행ㆍ한국수출입은행ㆍ중소기업은행)은 올해 상반기까지 5000억원 규모의 바이오 전용 투자 펀드를 조성하고, 미래에셋벤처투자ㆍ미래에셋캐피탈과 유안타인베스트먼트에 운용을 맡기기로 했다.
최근 미래에셋과 유안타 모두 약속된 펀드 자금을 모으지 못하면서 결성시한을 1달 가량 연장했지만, 업계에서는 결국 무산될 것이라는 인식이 주를 이룬다. 정부가 나서서 공제회들을 압박해 출자를 종용하지 않는다면, 참여하려는 LP가 없어 백신펀드가 결국 중단될 가능성이 크다는 우려가 많다.
비상장기업 투자를 검토하는 LP들은 현재 바이오에서 2차전지로 눈을 돌린 상황이다. 그외 금융기관들은 안전한 국내 부동산 자산 위주로 투자하려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한 투자업계 관계자는 "정부 사업이기 때문에 운용을 맡은 미래에셋과 유안타도 고심이 많을 것"며 "대통령이 바이오 산업에 관심이 많아 복지부에서도 노력하고 있지만, 돈을 대야 할 기관들이 심드렁해서 당황스런 분위기"라고 전했다.
앞선 VC 바이오 심사역은 "올해부터 내년까지 쭉 엑시트에 집중해야 하는데 저평가가 해소될 기미가 보이질 않는다"며 "신라젠 같은 특례상장 기업들의 이슈가 많았던데다, LP들 사이에선 '바이오는 양치기 산업'이라는 인식이 강하기 때문에 당분간 전망이 밝진 않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