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실적 뒤에 가리워진 현대차의 지배구조 개편 과제
-
지난해 초 증시 입성이 무산된 현대엔지니어링(현대ENG)의 상장 재추진이 좀처럼 되질 않고 있다. 현대차와 기아 등 주요 계열사가 호실적을 기록하며 지배구조 개편의 적기가 다가오고 있다는 평가가 나오지만 정의선 회장의 자금줄 역할을 할 현대ENG는 실적이 뒷걸음질치고 있는 상황이다. 불안정한 증시가 지속하면서 상대적으로 투자자들의 관심에서 멀어진 건설업종의 IPO는 당분간 추진이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지난해 현대ENG은 원자재값과 인건비 등 원가 상승으로 영업이익이 급감했다. 올해 1분기에도 영업이익은 또다시 감소, 1년 만에 순이익이 675억원에서 423억원으로 줄었다. 현대차와 기아가 지난 분기 역대 호실적을 기록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지난 1분기 현대차와 기아의 영업이익은 각각 전년 동기 대비 86.3%, 78.9% 증가했다.
현대차그룹은 지배구조 개편 과제를 안고 있다. 특히 GSO(Global Strategy Office)가 신설된 지난해부터는 해당 부서를 중심으로 정의선 회장의 지분 승계를 위한 구조개편 검토에 돌입한 상태다.
그간 여러 지배구조 개편 시나리오가 제기됐지만 결론적으로 정의선 회장은 결국 지배구조 최정점에 있는 현대모비스의 지분을 인수할 막대한 자금이 필요한 상황이다. 현대모비스 최대주주(17.4%)인 기아가 보유한 지분 가치는 16일 기준 약 3조6000억원가량이다. 정 회장이 어떻게 승계자금을 마련할 것인가는 세간의 최대 관심사가 됐다.
지난해 현대ENG의 상장도 사실상 승계자금 마련 작업이라는 평가가 우세했다. 실제로 정의선 회장은 현대ENG 지분 11.7%를 보유 중이고, 구주매출 비중을 75%로 다소 높게 잡았다. 상장 추진 당시 구주매출을 통해 4000억원가량의 자금을 확보할 수 있던 상황이었다. 기관 대상 수요예측 결과는 500대 1보다 낮은 것으로 알려졌는데, 높은 구주매출 비중에 다소 반감을 가지고 있던 기관들이 다수였던 것으로 파악된다.
10대 그룹 중 유일하게 순환출자고리를 형성하고 있는 현대차는 '현대모비스→현대차→기아→현대모비스'로 이어지는 고리를 끊어내야만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그 와중 정의선 회장도 지배력을 공고히 해야만 한다.
현대ENG 상장 계획을 완전히 백지화하긴 어려울 것이란 평가가 나오는 배경이다. 다만 지금으로선 현대ENG의 상장 재추진 움직임은 포착되지 않고 있다. 현대ENG는 상장 추진을 위해 미래에셋증권, KB증권, 골드만삭스를 상장 주관사로 선정했다. 이 중 한 증권사 관계자는 "현대ENG 측에서 상장을 다시금 시도하려는 움직임은 전혀 없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IPO 추진 자체가 녹록지 않은 상황인 것은 맞다는 평가다. '건설업황 악화'와 '여전히 부진한 IPO 시장' 등이 그 근거로 꼽히고 있다.
먼저 악화된 건설업황이 하반기에도 회복되기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지난해 미국 연준(Fed)가 기준금리를 연달아 올리면서 건설사, 증권사들이 감당할 금융비용이 상당해졌다. 이에 본 프로젝트파이낸싱(PF) 일정을 미루는 건설사들이 늘어나거나 지급보증한 우발채무에 대응하기 위해 고금리를 감당할 수밖에 없는 증권사들의 소식이 전해졌다.
동종업계 기업들의 '부실공사 논란'도 부담이다. HDC현대산업개발에 이어 GS건설까지 부실공사 논란의 주인공이 됐다. 이에 더해 현장 사고까지 종종 발생하며 중대재해처벌법 처벌이 불가피할 것이란 여론도 만만찮다. 수시로 발생하는 사건사고에 주가 또한 민감하게 반응하는 양상을 보인다. 현대ENG가 예상 기업가치를 산정하는 과정에서 피어그룹(Peer Group)을 선정하는 데 그닥 유리하지만은 않은 상황이다.
증시 환경도 예측이 어렵다. 2011년 '미국 신용등급 위기'를 이끈 미국 부채한도 협상도 6월초에 예정돼있는 등 예견 자체가 어려워진 증시환경에, IPO 시장은 좀처럼 되살아나지 못하고 있다. 컬리, 케이뱅크 등 올해 상장을 앞두고 있던 기업들은 상장 일정을 미룬 상태다. 기관들은 전보다 더 많은 지표를 기업가치 평가시 활용하는 분위기다. 상장을 앞둔 두산로보틱스와 에코프로머티리얼즈가 각각 이익 창출력, 대주주 적격성 문제로 상장 과정이 원활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경고음도 나온다.
한 증권업계 관계자는 "요즘 국내 기관투자자들을 만나보면 무거운 종목에 대한 관심은 예전에 비해 덜하다는 인상을 받는다"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또다른 투자업계 관계자는 "오너가 지분을 팔 회사의 주식은 사지 말라는 말이 있다"라며 "이미 오너의 승계자금 마련용 딜이라는 인식이 있는 현대ENG IPO가 재추진될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진 않는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