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플러스, 적자 커지고 점포 매각 통해 대출 갚아와
MBK-메리츠증권, 재협상 나설 가능성도 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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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플러스 인수금융 리파이낸싱을 두고 MBK파트너스(이하 MBK)와 메리츠증권 간의 협상은 일단 불발됐다. 메리츠증권이 예상보다 높은 금리를 제시했고, MBK가 난색을 표하면서다.
인수금융 일감이 사라진 와중에도 메리츠증권을 제외하면 선뜻 리파이낸싱을 받아줄 금융사가 많지 않은 게 현실이다. 홈플러스의 적자가 커지고 재무부담이 이어지면서 시장 가치가 떨어진 탓이다. 이런 상황이 부동산에 강점을 둔 국내 증권사가 글로벌 톱 사모펀드 운용사(PEF)를 대상으로 강수를 둘 수 있게 만들었다.
메리츠증권은 홈플러스의 사업장도 담보로 원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MBK의 상환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 메리츠증권은 '목 좋은' 홈플러스 부지를 개발해 부동산 사업에 나설 수도 있다. MBK는 홈플러스 인수 이후 점포 매각대금의 상당 부분을 인수금융 차입금 상환에 사용해왔다.
홈플러스 인수금융 리파이낸싱과 관련해 MBK와 메리츠증권, 양측이 요구하는 금리 수준 등 대출 조건의 견해차는 좁혀지지 않았다. 당초 메리츠증권은 홈플러스의 인수금융 차입금 잔액 약 4000억원과 유동화대출(3000억원) 및 후순위채권(3000억원) 등 총 1조원 규모의 대출을 주선할 계획이었다.
메리츠증권은 인수금융 금리를 10%대로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현재 금리 수준과 비교하면 꽤 높은 수준이다. 연초 10% 안팎까지 치솟았던 인수금융 금리는 최근 7% 전후로 떨어졌다. 올해 인수금융 주관사의 일감이 사라진 와중에 그나마 대부분 딜을 가져오는 PEF 운용사에 시장 주도권이 넘어간 영향이다. 이에 최근 PEF는 금리는 낮추면서도 재무약정(커버넌트) 조건 완화를 요구하기도 한다.
메리츠증권은 시장 트렌드와 반대로, MBK가 '납득하기 어려운' 금리를 제시한 셈이다. 자신들 말고는 마땅하게 돈을 빌려줄 수 있는 곳들이 없을 거라는 점, 즉 아쉬울 게 없으니 '시장 논리'에 따른 당연한 수순이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메리츠증권은 "규모가 큰 거래다 보니 세부 내용과 관련해 입장을 밝히기 어렵다"고 밝혔다.
시장에서는 메리츠증권이 큰 소리를 낼 수 있는 이유가 충분했다고 보고 있다. 메리츠증권 외에는 홈플러스 인수금융 리파이낸싱을 받아줄 금융사가 사실상 없기 때문이다. 최근 시중은행은 대기업 여신 한도 체크에 들어간 상태라 MBK가 고객이더라도 금융지주사 계열 증권사들의 보폭은 상대적으로 크지 못하다는 평이다. 홈플러스는 유통기업이지만 사실상 남아있는 건 부동산밖에 없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한 증권사 인수금융 담당자는 "홈플러스 지분이 담보로 잡혀있지만, 지분가치가 아닌 부동산 가치만 시장에서 인정 받고 있기 때문에 이번 리파이낸싱은 사실상 부동산 거래에 가까워 보인다"라며 "MBK가 자본시장 큰 손이지만 홈플러스라면 은행도 증권사도 선뜻 엮이길 꺼린다"고 밝혔다.
메리츠증권은 부동산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지만, 인수금융 시장에서 두드러진 플레이어는 아니다. 이에 이번 딜에 참여한 이유가 '홈플러스 부지 개발을 통한 수익'이 아니겠냐는 추측도 나온다.
한 부동산 금융업계 관계자는 "홈플러스가 시장 가치가 많이 떨어지기는 했지만, 리테일 사업장은 목 좋은 곳에 있기 때문에 복합쇼핑몰로 개발하는 등 활용 방안이 많다"며 "MBK의 채무이행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경우 메리츠증권은 계약상 담보를 잡은 사업장을 처분해 개발할 수 있다"고 전했다.
홈플러스는 영업적자가 확대되는 등 실적부진이 이어지고 있다. 2021년엔 영업손실(1335억원)로 전환했고, 지난해 3분기 누적으로는 2002억원으로 적자 폭이 더 커졌다. MBK가 홈플러스를 인수한 이후 홈플러스의 신용등급은 꾸준히 내리막길이다. 한국기업평가에 따르면 2022년 11월 말 기준 부채비율 696.8%, 차입금의존도 57.4%다.
인수금융 상환 과정에서 '과중한' 재무부담도 지속되고 있다. MBK에 인수된 이후 홈플러스는 다수 오프라인 할인점 점포의 매각 후 재임대(S&LB)·매각 작업 등 점포 유동화를 진행했다. 당초 5년 만기로 4조원대 인수금융을 일으킨 MBK는 점포 매각대금의 상당 부분을 인수금융 차입금 상환에 사용했다.
MBK의 입장은 다르다.
인수금융 만기는 내년 10월인 만큼 당장 급한 문제가 아니라는 설명이다. MBK에 따르면 인수금융 대출금액을 꾸준히 갚아오며 초기 4조3000억원에 달했던 인수금융 잔액은 최근 약 4000억원 밖에 남지 않았다. 부동산 담보도 충분하다고 전했다.
MBK는 "지난 4분기 은행에서 재무약정 조건 없이 심플하게 돈을 빌려 리파이낸싱을 할 좋은 기회도 있었다"며 "홈플러스 매출은 상승세로 전환했다. 급격히 변하는 시장 상황에 선제 대비하며 운영자금을 추가로 확보하는 차원에서 리파이낸싱을 선제적으로 알아봤던 것뿐"이라 반박했다.
인수금융 업계에서는 MBK가 메리츠증권이 다시 협상에 나설 가능성도 열어두고 있다. 만기와 별개로 여전히 MBK는 메리츠증권 이외에 마땅한 플레이어를 찾기 어려워 보이기 때문이다. 내년 시장 상황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리파이낸싱 창구를 찾으면 한숨 돌릴 수 있을 거란 분석이다. 메리츠증권도 추가적인 부동산 확장성을 생각한다면 여지가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