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사엔 대출 유도, 저축銀엔 리스크 강조…쏟아진 PF 정책에 금융사들은 '혼란'
입력 2023.05.26 07:04|수정 2023.05.26 07:06
    금감원 "저축銀 부동산PF 엄격히 관리"
    PF 지원책 쏟아내더니…여신 및 건전성 관리?
    "증권사 ABCP 장기 대출 전환 유도"
    여력되는 일부 증권사 국한할 듯
    금융당국 부동산 익스포저 기관 일원화 효과도
    "개별 증권사 리스크 관리는 어려워질 듯" 평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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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금융당국은 여전히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시장의 위험 확산에 촉각을 기울이고 있다. 최근 증권사들에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을 장기 대출로 전환할 것을 주문했고, 과거 금융위기의 단초가 된 저축은행들에는 리스크 관리를 강화할 것을 재차 강조했다.

      정부는 채권시장의 급격한 경색이 발생한 지난해 중순부터 현재까지 금융 시장 리스크 확산을 막기 위한 대책을 쏟아냈는데, 최근까지 발표된 금융 정책이 과연 일관성 있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는지, 그리고 실효성이 얼마나 있는지는 한 번 따져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근 금융감독원 저축은행검사국장(이현석)의 전달사항이 각 저축은행에 공유됐다. ▲PF대출에 대해 보수적으로 사업성을 평가하고 ▲토지담보대출에 대해서도 충당금을 적립 ▲현행 BIS비율의 지도 비율(7~8%+3%p) 이상의 자본확충 ▲선제적인 자산매각 및 상각을 통한 건전성 지표 개선 등의 내용이 포함했다.

      재무 및 여신 관리를 강조한 공문은 사실상 저축은행들의 부동산 PF 대출을 엄격히 관리하고 리스크 관리에 집중하란 뜻으로 해석된다.

      최근까지 정부는 대주단협의체를 발족, 금융권의 브릿지론에 대한 본PF 전환을 유도해 왔다. 금융지주회사 및 시중은행들은 앞다퉈 PF 시장 지원책을 내놨고, 정책금융기관은 PF 지원 펀드까지 신설하며 투자자를 모집중이다.

      채안펀드의 가동, 한국증권금융을 통한 유동성 지원, CP·ABCP·회사채 매입확대, 채권담보부증권(P-CBO) 발행 확대, 부실 PF 매입 등도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쏟아진 정부의 부동산 금융대책 중 일부다.

      사실상 전 금융업종에 걸쳐 PF 시장에 대한 전폭적인 지원이 이뤄지고 있는 상황에서 금감원이 저축은행들에 토지담보대출의 신규 취급을 자제하고 PF대출의 엄격한 심사 등을 강조하자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투자은행(IB)업계 한 관계자는 "저축은행의 재무건전성 관리를 강화하겠다고 밝힌 것은 사실상 (저축은행들의) 부동산 관련 대출을 죄겠단 의지로 해석할 수 있다"며 "리스크 관리를 하겠단 측면은 이해가 가지만 PF 만기 연장, 브릿지론의 본PF 전환 유도, 저축은행이 포함된 협의체를 통한 금융지원 등 최근의 지원책들과는 결이 너무 달라서 혼란스럽다"고 밝혔다.

      국내 저축은행들은 올해 1분기 약 600억원의 적자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된다. 실제로 리스크 관리의 필요성이 제기되는 것은 사실이기도 하다. 다만 금융당국의 개입이 오히려 저축은행들의 자율적인 여·수신 및 리스크 관리를 저해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IB업계 한 관계자는 "저축은행의 경우 2년마다 한 번씩 대주주 적격성 심사를 받아야 하기 때문에 과거와 달리 재무 건전성 관리에 상당히 신경을 쓸 수밖에 없는 구조"라며 "이번 조치는 부동산 관련 익스포저로 인한 리스크 확산을 사전에 방지하겠단 정책적 의도를 전달하려는 취지로 보인다"고 말했다.

      사실 국내 PF 시장의 자금은 ABCP(자산유동화기업어음), PF-ABS(자산유동화증권), ABSTB(자산유동화전자단기사채)를 비롯한 유동화 증권의 발행으로 지탱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10년도 부동산 PF 익스포저 가운데 유동화 증권이 차지하는 비중은 약 12.7%였는데 지난해 3분기엔 약 28%까지 증가했다. 이는 시중은행을 대신해 부동산 PF 시장에 자금줄 역할을 하는 주체들이 다양해졌음은 물론 채권시장, 단기자금 시장과 부동산 시장의 연관성이 높아졌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지난해 레고랜드 사태 이후 유동화증권의 차환이 어려워 지고, 금리가 치솟는 상황이 발생하자 정부는 관련 대책을 내놓기 시작했다. 

      최초엔 금융기관의 유동화증권 매입을 통해 차환을 지원하는데 방점이 찍혀있었다면 최근엔 ABCP 발행을 줄이고, 대신 이를 장기 대출로 전환하도록 유도하는 정책을 내놨다. 이 같은 내용이 최근 증권사들에 전달됐는데 금융당국은 약 4조9000억원의 부동산 관련 유동화증권이 대출로 전환할 것으로 전망했다.

      1~3개월마다 반복되는 PF 사업장의 조달 리스크를 크게 줄이겠단 정부의 의도는 이해할 만하다.다만 실효성에 대한 논란도 적지 않다.

      실제로 증권사들은 만기가 비교적 짧은 유동화증권 발행을 통해 부동산PF 사업장 익스포저에 대한 리스크를 일정 부분 상쇄해 왔다. 증권사들이 유동화증권의 발행 대신 부동산 사업의 만기에 맞춘 3년 대출 형식의 출자에 나서게 되면 PF사업장의 리스크에 기민한 대응이 사실상 불가능해진다. 유동성이 풍부한 일부 증권사들의 경우엔 대출 전환에 나설 수 있겠지만 이 역시 그리 많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부동산 업계 한 관계자는 "ABCP 발행을 막고 대출로 전환하겠단 것은 현재 부동산 PF 시장 자금 흐름을 크게 뒤바꾸겠단 의도로 비쳐진다"며 "금융당국이 개별 증권사의 PF익스포저를 면밀히 검토하고 있는 상황에서 수익성 여부 또는 리스크 관리와 상관 없이 정책에 따라야 하는 기관들도 많을 것"이라고 했다.

      금융당국은 금융기관의 대출 금리의 상승을 사실상 제한하고 있다. 일부 건설사, 자금난에 허덕이는 PF 사업장 등에선 사실 지난해 말과 비교해 조달 금리의 차이가 크게 느껴지지 않는다는 평가도 있다. 금융기관 자체적으로 또는 투자자들이 평가하는 리스크가 그만큼 높기 때문이다.

      위험성이 높을수록 조달금리가 자연스레 높아지는 직접금융시장을 봉쇄(?)하고, 간접금융으로 분류하는 금융기관 대출 전환을 유도할수록 금융사들의 자체 리스크 관리가 오히려 어려워질 수 있단 우려도 있다. 각 기관들이 당국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대출 금리의 상한은 직접 조달 금리보다 낮을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