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작 금융회사 직원들은 퇴직연금 부서 기피 성향 확대돼
보험사 내부에선 사양산업 분위기…증권사도 애물단지 취급
"디폴트옵션 제도 도입만으로 수익률 제고는 어려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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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7월부터 퇴직연금 시장 활성화를 위해 디폴트옵션(사전지정운용제도)이 도입되지만, 막상 증권사 등 비은행 금융사의 반응은 신통치 않다. '좋을 건 없고 비용만 늘어난다'는 인식에 내부 직원들은 오히려 퇴직연금 부서 발령을 기피하는 상황이다.
디폴트옵션 도입의 최대 피해자로 꼽히는 보험사에선 퇴직연금이 이미 사양산업으로 취급되고 있다. 머니무브(자금 이동) 수혜를 누릴 것으로 전망되는 증권사마저 '수익성은 낮고 일거리만 많은 애물단지'라는 인식이 커지고 있다.
1일 금융권에 따르면 증권사들은 오는 7월 12일부터 의무화되는 디폴트옵션을 두고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디폴트옵션 운용에 필요한 시스템 개발에는 천문학적인 비용이 소요되는 반면, 실제 퇴직연금으로 거둘 수 있는 수익은 생각보다 적은 까닭이다.
디폴트옵션은 근로자가 본인의 퇴직연금 적립금을 운용할 금융 상품을 결정하지 않았을 경우, 사전에 정해둔 운용방법으로 적립금이 자동 운영되도록 인계하는 제도다. 기존 퇴직연금 시장은 안정성을 중시한 시중은행과 보험사의 전유물로 여겨져왔다. 이 때문에 평균 수익률이 2%대로 높지 않았다. 디폴트옵션은 사업자 간 운용 경쟁을 유도해 수익률을 끌어올리겠다는 배경에서 도입된 정책이다.
디폴트옵션 도입 후 금융권에선 7월부터 퇴직연금 가입자들의 머니무브가 가속화될 것으로 전망해왔다. 약 340조원 규모의 퇴직연금이 은행으로부터 증권사 등 비은행 금융사로 넘어갈 거란 예상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도입을 한달여 앞둔 현재, 증권사들은 기대를 크게 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디폴트옵션 상품 유형에 '원리금 보장상품'이 포함된 까닭이다. 손실 리스크를 떠안고 싶어하지 않는 사용자(법인)들은 최대한 보수적인 포트폴리오를 선택할 가능성이 크다. 손실시 인사 업무상 부담이 가중되는 이유에서다. 결국 대규모 자금이 은행에서 이탈할 가능성은 크게 낮아졌다는 분석이다.
한 증권사 퇴직연금 부서 임원은 "현재 퇴직연금 상품의 80% 이상이 수익률 1%에 불과한 원리금 보장형 상품인데, 이는 누구도 책임을 지기 싫어하는 이기심이 반영된 탓"이라며 "은행권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누더기 디폴트옵션은 정부의 보여주기식 정책이나 마찬가지"라고 비판했다.
증권사 구성원들 사이에선 퇴직연금 부서를 기피하는 성향이 커지고 있다. 지출만 크고 수익성은 없는 비주력 부서로 자리 잡은 탓이다. 금융당국의 감시뿐 아니라 고용노동부의 인허가도 받아야 하는 이중고 역시 부담이다.
다른 증권사 관계자는 "금융위 감시도 힘든데 노동부도 틈만 나면 행정지도 공문을 날리니 직원들의 고충이 크다"며 "미래에셋그룹처럼 오너의 사업 의지가 강한 회사가 아니라면, 수장이 바뀔 때마다 '왜 하냐'는 말이 나오니 근로의욕이 저하된다"고 말했다.
다른 금융권 고위 관계자도 "시장을 초반에 선점한 미래에셋그룹을 제외하면 퇴직연금 사업으론 수익이 나질 않으니 분위기가 좋지 않다"며 "게다가 증권사들이 퇴직연금 수익률(확정금리)을 맞추기 위해 채권 만기 미스매치 전략을 확대하다 최근 손실이 크게 난 것도 내부 사정을 악화시켰다"고 설명했다.
디폴트옵션발(發) 머니무브의 최대 피해자로 전망되는 보험업계도 관련 조직을 축소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지난해 6%가 넘는 금리를 제시하면서 퇴직연금 자금을 끌어들이려 노력했지만, 이때 제시한 금리가 '역마진'으로 돌아와 내부 유동성을 악화시켰다는 내부 비판이 커진 탓이다.
실제로 신한라이프는 생명보험사 최초로 퇴직연금 영업을 일시 중단하고, 기존 자산운용그룹 산하에 있던 퇴직연금본부를 폐지했다. 일부 보험사들도 조직을 축소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한 보험사 관계자는 "재작년만 해도 보험사들이 퇴직연금 사업에 전부 뛰어들었지만, 막상 영업 시너지가 나지 않을 것이라는 계산이 서자 이를 철회하는 분위기"라고 밝혔다.
업종을 불문하고 금융권 인력들이 퇴직연금 부서를 기피하다보니, 전반적으로 퇴직연금 운용 역량이 저하돼 수익률 개선이 이뤄지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점차 커지고 있다. 퇴직연금 제도 운용에 관한 전반적인 개혁이나 인식 제고 없이 디폴트옵션만 도입한다고 수익률이 나아지는 게 아니라는 지적이다.
당장 금융사들은 디폴트옵션 대응을 위한 시스템 투자 비용에도 난색을 표하고 있다. 마진이 더 생길 거란 보장은 많지 않은데, 적게는 수십억에서 많게는 수백억원의 시스템 투자 비용이 필요한 까닭이다. 시스템개발(SI) 업체만 배불리는 격이라는 볼멘소리도 들린다.
보험권 관계자는 "서비스를 위한 인건비와 디폴트옵션 시스템 비용은 계속 들어가는데 당장 수익성은 없어 내부선 찬밥 신세다. 타 부서에 비해 영업 제한이 엄격한 것도 문제"라며 "근로 의욕이 저하되다보니 전반적으로 은행ㆍ보험ㆍ증권 간 포트폴리오도 하향 평준화되고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