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어난 회사채 수요에 DCM 강화하려는 증권사들
기존 강자들에 유리한 시장…"고객사 확보 노력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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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온기가 도는 회사채 시장 분위기에 힘입어 일부 증권사들이 DCM(채권자본시장) 부문 강화에 나서고 있다. 특히 그간의 부동산 투자 확대로 익스포저(위험노출액) 규모가 늘어났던 증권사들이 주도하고 있다.
증권업계에 따르면 하나증권, 한화투자증권 등 증권사들이 DCM 등 기업금융 부문의 인원을 늘리려고 한다. IBK투자증권은 오랫동안 공석이던 커버리지본부 본부장 자리에 김병철 전 유안타증권 기업금융본부장을 선임한다. 김 본부장은 삼성증권에서 커버리지, ECM 등 IB 전반 업무를 거친 인사다.
그간 DCM 부문에서 두각을 크게 드러내진 않았던 미래에셋증권도 올해 DCM 리그테이블에서 3~4위권에 드는 것을 목표로 내세웠다. 올해 1분기 DCM 주관 순위 상위권은 KB증권, NH투자증권, 한국투자증권, SK증권, 신한투자증권 등이 이름을 올린 상태다. 미래에셋증권은 SK㈜ 회사채 모집 단독 주관을 따내며 6위를 기록 중이다.
증권사들이 최근 DCM으로 눈을 돌리는 이유로는 '실적 부진'이 꼽힌다. 하나증권과 한화투자증권은 그간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중심으로 몸집을 키워온 곳들이다. 급격한 부동산 경기 침체로 수익성 감소가 불가피했다. 증시 침체로 ECM 부문 일감도 줄었다. 지난 1분기 하나증권과 한화투자증권의 IB부문 순영업이익(순익)은 1년 만에 각각 83.2%, 77.2%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부동산 비중이 큰 증권사들은 그간 힘이 약했던 기업금융 부문을 강화해 리스크 헤지에 나서려는 분위기다"라며 "ECM이나 부동산 관련 부서 대비 DCM 부서의 일감은 상당히 많아보여 부러움을 사고 있다"라고 말했다.
DCM 부문에서 주관 실적을 올리고 있는 증권사들은 양호한 실적을 시현했다. NH투자증권은 올해 1분기 당기순이익이 전년 동기 대비 79.9% 증가했는데, IB부문에서 DCM 주관 실적이 개선된 영향이 적지 않았다는 평가다. DCM 부문에서 NH투자증권과 경쟁관계인 KB증권 또한 IB부문 영업수익이 지난해 1분기 1년 만에 15% 가까이 증가했다.
회사채 발행 규모가 크게 늘어난 덕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 4월 회사채 발행 규모는 총 20조1548억원으로, 전월 대비 7.8% 증가했다. 특히 일반 회사채 발행은 한 달 만에 34.7% 증가했고 자산유동화증권(ABS) 발행규모도 같은 기간 34% 증가했다.
최근 주요 기업들의 회사채 발행 수요예측에 목표액보다 훨씬 많은 자금이 몰리는 등 회사채 시장에 온기가 돌고 있다. 유동성에 대한 우려가 짙은 그룹 계열사가 흥행에 성공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SK그룹의 지주사 SK㈜가 그 예다. 지난달 회사채 수요예측에서 모집금액의 4배 이상의 뭉칫돈이 몰렸다. 롯데건설의 유동성 경색에 적극 대응했던 호텔롯데 또한 차입금 상환 자금 마련을 위해 회사채 시장의 문을 곧 두드린다.
한 증권업계 관계자는 "작년에 비해 금융비용이 오르긴 했지만, 자금 조달을 위해 회사채 시장을 찾는 기업들이 늘고 있다"라며 "항공사들은 한껏 오른 금리에 부담을 느껴 미래 매출을 기반으로 한 ABS 발행을 검토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채권 부문으로 인력 이동도 이어지고 있다. 한 투자업계 관계자는 "부동산 PF도 영업능력이 수반돼야 하는 분야다. 부동산 투자쪽에서 두각을 나타냈던 주니어들이 증권사 채권시장으로 옮겨 역량을 드러내는 사례도 나타나고 있다"라며 "채권 시장에서의 영업은 증권사에서 소위 말하는 '정통 영업'에 가깝기 때문에 이들에게 진입장벽이 높은 편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NH투자증권과 KB증권이 투톱이 공고한 회사채 주선 시장에서 그간 두각을 드러내지 않았던 중소형 증권사들의 가세가 어떤 영향을 미칠지 관심이다. 다만 대기업 고객사 확보가 녹록진 않을 것이란 평가다. DCM 주관 순위 상위권을 지켜온 증권사들은 그간 주요 그룹 계열사들의 회사채 발행을 도운 업력이 길다. 뒤늦게 뛰어들 증권사 입장에선 수수료를 큰 폭으로 할인하지 않고서야 이를 빼앗아 오긴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한 투자업계 관계자는 "유동성 경색 우려가 짙던 롯데건설과 조(兆) 단위 투자 협약을 맺은 메리츠증권처럼, 리스크를 일부 나눠지면서 시장 점유율을 늘려가는 방식이 가능하겠다"라면서도 "하지만 DCM 시장 내 기득권이 공고한 탓에 많은 노력이 수반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