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미칼 부진으로 롯데는 무더기 등급 하향
SK온·LG엔솔 재무부담 확대한 배터리社들
공격 조달로 여력 확보…회사채 발행 시동
-
정기 신용평가에서 신용도 하향 기조가 우세한 가운데 대기업들은 공격적인 자금 조달 등으로 방어전을 펼치며 당장의 화살은 피하는 분위기다.
다만 그룹 신용도의 핵심인 롯데케미칼의 실적 부진과 투자 부담 지속으로 롯데그룹은 등급 하향을 피하지 못했다. 최근 신용도 ‘경고등’이 켜진 CJ ENM 등의 등급 향방에 관심이 쏠린다. 재무부담 이슈가 떠오른 2차전지 기업들은 시장에서 공격적으로 자금을 빨아들이면서 우려를 불식시키고 있다. 신용평가업계에서는 계속되는 거시환경 악화 속에서 하반기부터 재무적으로 버틸 수 있는 곳과 아닌 곳들의 차별화가 본격화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6월 현재 한국기업평가(한기평), 한국신용평가(한신평), NICE신용평가(나신평) 등 신평 3사는 정기 신용평가를 진행 중이다. 6월, 11월 두 차례의 정기평가 중 지난해 연간 실적이 6월 평가에 반영되기 때문에 통상 신용등급이 바뀌는 기업 수가 많다. 지난해부터 실적 악화 및 재무부담 증가가 두드러진 기업들이 많아 올해 정기평가는 신용도 하향 기조가 이어질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한 신용평가사 관계자는 "지난해 말부터 하향 조정한 기업들이 많고 현재 부정적 전망이 붙은 기업들도 많아 올해 신용도 흐름은 하향이 더 우세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며 "거시환경 악화가 전 산업군에 영향을 미치고 있지만 기업들이 자산 매각이나 증자 등 재무구조 개선 노력을 이어오면서 하향 조정이 미뤄진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조달시장 냉각으로 대기업들까지 단기 유동성 위기가 거론됐던 지난해 하반기와 달리, 지금은 자본시장 투심이 살아나고 적극적인 자산 활용도 이어지면서 전반적인 대기업들의 크레딧 우려는 다소 잦아든 분위기다. SK 등 유동성 긴축 우려가 나온 기업들은 다양한 자구안을 활용해 '신용도 사활'에 나선 분위기가 포착되기도 했다. 다만 중장기 전망과 "현재 등급에 걸맞는" 재무여력이 핵심인 신용도는 이제부터가 재무적으로 견뎌낼 수 있는 곳과 아닌 곳의 차이가 극명해질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계열사들의 신용등급에 '부정적' 전망이 많았던 롯데는 이번 정기평가에서 등급하향을 피하지 못했다. 롯데케미칼의 신용등급이 결국 AA+에서 AA로 하향 조정됐다. 그 여파로 롯데지주, 롯데렌탈, 롯데캐피탈의 신용등급과 롯데지주가 연대보증한 롯데쇼핑의 회사채 등급이 한 단계씩 떨어졌다.
롯데케미칼은 지난해 연간 7630억원의 영업적자를 기록하고 올해 일진머티리얼즈(현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를 2조7000억원에 인수 완료하며 재무부담이 커졌다. 롯데케미칼은 지난해 2분기부터 올해 1분기까지 4분기 연속으로 적자를 이어오고 있다. 대규모 투자도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결국 업황 회복이 급선무인데 올 연말은 지나야 개선될 것이란 예상이 많다.
롯데건설을 향한 우려의 시선도 여전하다. 지난해 연말 유동성 위기를 맞았던 롯데건설은 메리츠금융그룹과 1조5000억원 규모 투자 협약을 맺는 등 급전을 조달해 급한 불을 끈 바 있다. 올초 롯데건설이 자사가 보증한 프로젝트파이낸싱(PF) 유동화 채권 1조5000억원어치를 메리츠금융이 조성한 사모펀드에 팔았다. 즉 메리츠에 채권을 넘겨 1년 2개월 만기 돈을 빌린 것인데 12%의 이율로 단기 대출을 받은 셈이라 올해 연말부터 다시금 차환 이슈가 돌아오게 된다.
한 증권사 기업금융 관계자는 "롯데케미칼 실적이 안 좋고, 건설 경기가 꺾이면서 롯데건설의 IPO도 요원해진 상황인데 일진머티리얼즈 투자로 조 단위 거금을 썼다보니 시장에서 롯데를 보는 시선이 좋지는 않다”고 말했다.
다른 증권사 기업금융 관계자는 "지난해 롯데건설이 유동성 위기에 처했을 때 돈을 빌려서 막긴 했지만 약 1년 만기라 연말에 다시 차환 이슈가 있을텐데 하반기 건설경기 회복 여부 등을 지켜봐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적 부진이 장기화하고 있는 CJ ENM도 신용도 향방이 주목된다. CJ ENM은 일산 라이브시티 사업, 티빙 오리지널 컨텐츠 등 투자금이 들어갈 곳이 많지만 실적이 저조해 신용도 하방 압박이 높아졌다. 다만 회사채 등 시장 조달을 이어가고 있고 내부적으로 투자 유치 및 자산 유동화 계획도 고려하고 있어 상황을 지켜보겠단 평이 많다.
한편 회사채 시장을 두드리는 배터리 기업들에 대한 관심도 높다. 배터리 업체들은 그동안 프리IPO와 은행 차입, 외부 투자로 조달을 이어왔지만 급증하는 설비 투자금 감당을 위해 자금 창구를 확대하고 있다. '데뷔전'부터 대규모 조달을 이어가며 이미 회사채 시장의 '큰 손' 자리를 예약하고 있다는 평이다.
SK온은 지난달 초 첫 한국물 발행에서 9억달러(약 1조1900억원) 규모 조달을 성공했다. SK온의 첫 글로벌 채권시장 데뷔였던 해당 유로본드는 KDB산업은행을 제외하면 단일 트랜치로 발행한 한국물 유로본드(RegS) 중 최대 규모다.
SK온은 지난달 말 처음으로 기업어음(CP) 등급 평가를 받았는데 국내 회사채 시장에서 직접 자금조달을 하기에 앞서 자체 등급을 받은 것으로 풀이된다. 19일에는 LG에너지솔루션이 출범 이후 처음으로 5000억원 규모의 회사채를 발행한다고 밝혔다. 수요예측 흥행 여부에 따라 최대 1조원가지 증액 발행도 가능하다.
한 채권업계 관계자는 "SK온은 예상보다 실적 개선이 더딘 상황인데 투자 속도가 워낙 빠르다보니 시장에서의 직접 조달을 넓히는 분위기"라며 "적자가 이어지고 있고 정상화까지는 시간이 좀 걸리겠지만 결국은 LG에너지솔루션 절차를 밟을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2차전지 기업들이 현재는 높은 실적과 산업 고성장에 힘입어 너그러운(?) 평가를 받고 있지만 가파른 투자속도와 높은 운전자금 부담으로 재무 부담이 확대하고 있어 직접 조달을 늘려갈수록 신용도 관리가 더욱 중요해질 것이란 평이다.
나신평은 3월 발간한 보고서에서 "2차전지 기업들은 2023년부터 기존 유상증자를 통해 확보한 유동성이 대부분 소진되고 차입금 조달이 본격화될 것으로 예상된다"며 "향후 신용도 제고를 위해서는 영업창출 현금흐름 확대와 운전자금 관리 강화, CAPEX(설비투자) 효율화, 추가적인 유상증자 등 재무부담 확대를 완화시킬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해야 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