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당국 제도 개선 검토 시작…신고서 제출 기한 늦추기로
증권사 "JB금융 전부터 말했는데…늦은 대처 억울한 감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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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당국이 채권발행 제도 개선을 검토하고 있다. 증권신고서 제출 일정에 좀 더 여유를 두는 방안이 거론된다. 최근 있었던 HD현대오일뱅크의 회사채 발행 취소 사건의 여파다. 해당 사건은 주관사가 민간채권평가회사들에 일일이 구두(口頭)로 금리를 확인해야 하는 제도적 허점이 원인으로 분석된다.
금융당국은 서둘러 증권신고서 제출과 관련된 제도를 개선하겠다는 방침이다. 다만 지난해 7월 JB금융지주도 주관사 DB금융투자의 금리 오기재로 수요예측을 두 차례나 치러야 했던 만큼, 금융권에선 당국의 안일한 대처를 성토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25일 금융권에 따르면 현재 금융감독원은 채권 발행 과정에서 증권신고서 제출 시간을 연장하는 방법을 검토하고 있다. 증권신고서 접수 마감기한을 민평금리(민간채권평가회사 평균 금리) 발표 이후, 즉 오후 6시 30분 이후로 바꾸는 내용이 골자다.
이번 제도 개선은 이달 초 HD현대오일뱅크 회사채 발행이 취소된 사건이 계기가 됐다.
앞서 HD현대오일뱅크는 3년물 400억원, 5년물 400억원, 7년물 200억원 등 회사채 총 1000억원에 대한 수요예측을 진행했다. 발행 예정 물량의 10배 이상의 주문이 몰리며, HD현대오일뱅크는 발행 규모를 총 2000억원까지 늘리고 조달 금리도 낮췄다.
문제는 신고서 제출 과정에서 일어났다. 공시 주관을 맡은 KB증권의 직원이 발행 당일 7년물의 금리를 연 4.652%가 아닌 연 4.649%로 잘못 기재하면서, 7년물 발행이 전면 취소된 것이다. 금리가 잘못 기재될 경우 자본시장법상 신고서의 효력이 인정되지 않기 때문이다. KB증권 관계자는 "금감원에 신고서 수정을 요청했으나, 자본시장법상 정정 가능 시간이 지나 공시 수정이 어렵다는 답변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회사채 발행 취소 사태를 두고 발행사는 물론, 채권 물량 배정을 받지 못한 금융권에서도 불만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앞선 7년물 수요예측에서 기관들은 1250억원의 물량을 주문, 약 6.25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기관 투자자 입장에선 수요예측해 참여해 물량을 확보하고도 회사가 7년물을 재발행하지 않는다면 이를 배정받지 못할 가능성이 높아진 셈이다.
수요예측이 흥행하자 7년물 발행 규모를 기존 200억원에서 500억원까지 늘려 채무상환에 쓸 예정이었던 HD현대오일뱅크도 주관사에 정식으로 항의하는 등 불편한 표정이다.
이를 두고 금융투자업계에선 "터질 게 터졌다"는 분위기다. 증권업계가 그간 당국에 수차례 행정 문제를 지적해 온 만큼, 주관사의 단순 실수로 치부해선 안 된다는 입장이 주를 이룬다. 당국 역시 책임론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실제로 금융권에선 회사채 발행 업무 관행상 오류가 발생할 수 밖에 없다는 불만이 누적돼 왔다. 자본시장법에 따르면 주관사는 효력발생일(청약일) 전일 오후 6시까지 발행액과 금리 등이 기재된 증권신고서를 제출해야 한다.
문제는 회사채 금리의 기준이 되는 민평금리가 오후 6시 30분 이후에 정식 산출된다는 점이다. 현재증권사들은 신고서 제출 기한을 맞추기 위해 한국자산평가ㆍKIS채권평가ㆍ나이스피앤아이ㆍ에프엔자산평가 등 4개 채권평가사에 오후 6시 직전 전화를 걸어 직접 확인하는 과정을 거치고 있다.
이전에도 비슷한 사건이 있었다. 지난해 7월 JB금융지주는 주관사인 DB금융투자의 실수로 1000억원 가량의 회사채 발행을 취소하고, 3개월 후에 수요예측과 발행 과정을 다시 거치기도 했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민평금리는 다음날 나오기 때문에 구두로 확인할 수밖에 없는데, (채권평가사의) 담당자가 잘못 알려주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며 "증권사에게만 책임을 묻기엔 억울하다"고 주장했다.
다른 증권사 관계자도 "이런 업무는 주로 저연차의 공시 담당 직원이 도맡는데, 직원들 사이에선 촉박한 시간 탓에 업무 행정상 오류가 발생할 수 밖에 없다는 불안감이 높다"며 "언제 사건이 터져도 이상할 게 없었다. 대처가 너무 늦다"고 말했다.
금감원은 "제도 개선의 필요성을 인정하고, 개선안에 대해 들여다 보고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