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공주 飛上에도 3년 누적된 부채에 재무 부담은 그대로
대한항공-아시아나 합병 따른 유럽 노선 수혜 노리지만
업계 일각 "빛 좋은 개살구…수익성 낮아 매력 떨어져"
사모펀드, 밸류 높이고 SI 찾아 투자금 회수 가능할까
-
역사적인 엔저(엔화 약세) 현상에 일본 노선을 중심으로 여객 수요가 확대되며 국내 저비용항공사(LCC)들의 실적과 주가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다만 대주주인 사모펀드(PEF) 운용사들의 표정이 밝지만은 않다. 코로나19 사태에서 LCC 구원투수로 등판한 PEF들은 마땅한 투자금 회수 방안이 없어 골머리를 앓고 있다.
항공기 추가 도입 등 지속적으로 자금을 투입할 일은 많지만, 당장 기업가치 상승에 따른 캐피탈 게인(Capital gain;자본이익)은 아직 먼 일이기 때문이다. HDC현대산업개발(아시아나항공)과 애경(이스타항공) 등의 사례처럼, 항공사를 인수해 줄 기업을 찾기도 쉽지 않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합병에 따른 장거리 노선 배분이 변수로 꼽히지만, 수익성 제고 측면에선 별다른 실익이 없을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30일 투자업계에 따르면 에어프레미아와 티웨이항공, 이스타항공 등 국내 LCC들은 기단(機團;fleet) 확대를 위해 자금을 지속 투입하고 있다.
현재 항공기(보잉 787-9) 5대를 보유하고 있는 에어프레미아는 내년까지 동일 기종 4대를 추가 도입할 계획이다. 이를 위한 리스 계약도 최근 완료했다. 기종을 통일하면 정비부터 운용까지 효율성이 높아진다. 오는 2025~2027년 사이 6대를 추가 도입해, 총 15대의 기단을 구축하는 것이 목표다.
티웨이항공은 올해 하반기 대형기 5대, 내년 초 중소형기(B737-8) 3대 등 총 8대의 항공기를 들여올 예정이다. 기업회생 절차를 마치고 올해 3월부터 영업을 재개한 이스타항공 역시 오는 7월 4호기 운영을 개시하고, 8월부턴 3~4대의 항공기를 추가 도입한다. 최근 리스사와 올해 말까지 총 10~11대의 항공기를 도입한다는 내용의 계약도 마쳤다.
기단 확보 자금은 LCC들의 대주주인 PEF로부터 마련했다. PEF 입장에선 항공권 판매로 얻는 이득보다 당장 투입되는 비용이 크다. 향후 투자금 회수 시점을 언제로 잡아야 할지 고민이 커질 수밖에 없다.
에어프레미아의 최대주주인 JC파트너스는 이달 30일 보유 지분(51.53%) 중 약 36%가량을 문보국 마일스톤벤처스 대표와 김정규 타이어뱅크 회장 컨소시엄에 매각하기로 했다. 표면적으론 800억원가량의 투자 원금을 회수한다는 이유를 내세웠지만, 사실상 추가 투자금 유치 목적이 큰 것으로 알려졌다. 지속되는 자금 지원을 혼자 감내하기엔 부담스러웠던 셈이다.
투자업계 관계자는 "기업가치를 올리기 위해 자금을 계속 투입해야 하는 에어프레미아는 좀 더 자금력 있는 SI(전략적투자자)들이 필요했다"며 "JC파트너스 입장에선 주도권을 나눠주되, 업사이드를 남겨놓아 아쉬움을 달래겠다는 취지로 진행한 딜"이라고 설명했다.
-
유가 하락과 해외 여행 수요 폭발로 항공사의 실적 개선 기대감이 높아지면서 항공주 역시 강세를 나타내고 있다. 다만 아직은 재무 부담을 상쇄할 수준은 아니라는 평가가 주를 이룬다. 항공권 판매 선수금이 들어와도, 지난 3년간 누적된 부채를 줄이는 데 급급한 환경이다.
올해 1분기 기준 LCC들의 부채비율은 ▲티웨이항공(1057%) ▲에어부산(763%) ▲제주항공(405%) 등으로 높은 수준이다. 에어서울은 완전 자본잠식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에어프레미아도 올해까지 적자를 유지할 것으로 전망된다.
티웨이항공 2대주주 JKL파트너스는 2021년 약 800억원을 투자했고, 지난해 유상증자(217억원)까지 총 1000억원 이상의 투자를 집행했다. 올해 1500여억원에 이스타항공을 인수한 VIG파트너스는 4호 블라인드 펀드 자금을 대부분 소진하고, 5호 펀드 작업을 진행 중이다.
투자업계 관계자는 "코로나 때 투자한 PEF 입장에선 당장 자금을 회수하고 싶을 것"이라며 "다만 항공업계의 팬데믹 극복 속도가 더뎠고,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합병 수혜도 입지 못한 상황이라 회수를 미루자는 결론이 나왔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에어프레미아ㆍ티웨이항공에 투자한 PEF들은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합병 성사에 촉각을 세우고 있다. 유럽 경쟁당국의 심사를 받는 대한항공이 경쟁 제한 우려를 해소하기 위해 프랑스(파리)ㆍ독일(프랑크푸르트)ㆍ이탈리아(로마)ㆍ스페인(바르셀로나) 등 유럽 노선을 국내 LCC에 배분할 가능성이 있어서다.
실제로 대한항공은 티웨이항공과 에어프레미아를 대상으로 유럽 노선에 취항할 경우, 중대형기 9대를 저가로 임대하고 해당 항공기의 유지 보수 및 정비(MRO)를 지원하겠다고 제안했다. A330 등 대한항공이 보유하고 있는 장거리 운항이 가능한 기체들을 LCC 양사에 리스 또는 판매하고, 정비와 보수 비용도 전액 지원하겠다는 입장이다. (참고기사 : 대한항공, 국내 LCC에 유럽 노선 취항 제안..."항공기 및 정비 지원")
-
다만 항공업계에선 유럽 노선을 '빛 좋은 개살구'라 지적하기도 한다. 해당 노선의 수익성이 운영 비용 대비 낮다는 것이다.
한 PEF 관계자는 "장거리 노선은 1년 중 여름과 겨울 성수기를 제외하면 수요가 많지 않고, 매크로(거시경제) 사정에 탑승률이 크게 좌우되기 때문에 매력적인 선택지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다른 투자업계 관계자도 "유럽 내 알짜 노선은 이스탄불 등 일부에 불과하다"며 "장거리용 비행기를 도입할 경우 기단 비효율성도 커진다"고 전했다.
항공사 투자 역시 핵심은 결국 '재매각' 여부다. 하지만 LCC들의 수익성이 지금보다 개선된다고 해도 이들을 인수할 의지와 자금력을 갖춘 기업이 얼마나 나타날지는 미지수다.
항공업은 건설업ㆍ금융업 등과 함께 '오너의 의지' 혹은 '취향'이 가장 많이 반영되는 업종으로 꼽힌다. 재무부담이 막대한 데다, 기존 업종과 시너지 효과가 뚜렷하지 않을 경우 주주와 시장 전반의 반발이 불가피하다. 한때 SK그룹 같은 몇몇 대기업의 항공업 진출이 거론되기도 했지만 "인수 혹은 투자의사가 전혀 없다"며 모두 손사래를 쳐왔다.
2020년 HDC현대산업개발과 애경그룹이 각각 아시아나와 이스타항공 인수전에서 고배를 마신 만큼 쉽지 않다는 분위기가 주를 이룬다. 제주항공 모회사 애경그룹은 채형석 총괄부회장을 비롯한 오너 일가의 전폭적인 지지에도 항공사 M&A에 실패했다. 대기업이 아니더라도, 최소한 중견그룹 이상의 회사가 나서야 하는데 기업의 덩치가 작아질 수록 인수부담은 커질 수밖에 없다.
국내 항공사를 해외자본에 매각하기도 만만치 않다. 국가 경제 및 국민 편익과 직결된 국가 기간산업으로 취급 받고 있어 매각과정에서 각종 제한이 생길 수밖에 없다.
PEF들은 팬데믹 국면에 고전하던 LCC를 낮은 기업가치로 인수했다. 향후 투자 시장의 이목을 끌 만한 자산으로 성장시킬 전략이 있느냐가 중요할 것으로 보인다.
항공사 관계자는 "항공업은 현금흐름이 좋다는 장점이 있지만 고정비 지출이 너무 크다"며 "경영 효율화를 추구해봤자 마진(영업이익률)이 8~10% 수준인 사업이라, 사모펀드 입장에선 일반 바이아웃(경영권 매각)처럼 접근하긴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