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감원 '셀 리포트 써라' 압박에...백척간두 리서치 '존폐기로'
입력 2023.07.10 07:00
    취재노트
    홀세일 영업 기반 리서치, 셀 리포트 쓰기 어려워
    금융당국 2016년부터 리서치 규제 강화 나섰는데
    그간 이해하던 셀 리포트 비중 우선순위로 꺼내 들어
    인위적 셀 리포트는 실적에 마이너스...부작용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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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스타그램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경제 활동을 하는 '인플루언서'들에겐 철칙이 하나 있다. 어떤 제품이나 서비스를 비판하거나 험담하지 않는 것이다. 비판당한 업체는 해당 인플루언서에게 절대 광고나 협찬을 해주지 않는다. 매출을 올려줄지도 모르는 잠재고객을 절대 적(敵)으로 만들지 말라는 교훈이다.

      국내 증권사 리서치센터가 돌아가는 구조는 이런 인플루언서의 세계와 비슷하다. 수많은 구독자(개인투자자)들이 인플루언서(리서치)의 콘텐츠(리포트)를 본다. 막상 인플루언서에게 매출을 올려주는 존재는 기업 등 협찬사(기관투자가)다. 인플루언서가 거느린 구독자 수(리서치 열람 수ㆍ애널리스트 폴 등을 통한 선호도)는 협찬사가 인플루언서에게 얼마나 많은 비용을 쓸 지 판단하는 요소 중 하나일 뿐이다.

      어떤 A증권사의 애널리스트가 B기업에 매도 의견(셀 리포트)을 냈다고 가정하자. 예전만큼은 아니라도 여전히 주요 증권사 리서치의 리포트는 주가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 국내에 흔치 않은 셀 리포트는 그 영향이 더 크다. 그런데 만약, 해당 종목을 한 C기관이 대량으로 보유하고 있었다면 어떻게 될까. C기관은 당분간 A증권사와 거래하지 않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B기업 역시 기업금융 관련 일감을 A증권사에 줄 리가 없다.

      한 증권사 연구원은 "셀 리포트를 내면 해당 종목을 보유하고 있는 개인투자자는 물론이고, 해당 종목을 보유하고 있는 기관의 심기를 건드리게 된다"며 "리서치의 독립성을 키운다고는 해도 일단 리서치는 비용을 쓰는 부서고, 수익은 영업이 올려야 하니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금융당국이 국내 증권사의 리서치센터 운영 실태에 본격적으로 잣대를 들이대기 시작한 건 2016년의 일이다. '20대 금융개혁' 과제 중 하나로 선정된 이후 금융감독원을 중심으로 상장회사협의회ㆍ코스닥협회ㆍ금융투자협회가 참여한 '4자간 협의체'가 처음으로 만들어졌다.

      협의체에서 만들어낸 첫 자율규제안은 2017년 초 나왔다. 리서치센터 내 내부검수팀 및 심의위원회 설치, 목표주가 괴리율 공시, 애널리스트 보수산정 기준 구체화 등의 조치가 이뤄졌다. 금감원에 리서치관행 신고센터가 마련됐고, 협의체가 주도하는 갈등조정위원회가 설치됐다. 현행 리서치센터 관련 제도의 기본 바탕이 이 때 마련됐다.

      2년 후인 2019년, 금감원은 리서치 관련 규제가 실제 어떤 효과를 냈는지 추적해 분석했다. 제법 효과가 있었다. 목표주가 괴리율 공시는 국내 리서치와 외국계 리서치간 예측율 격차를 크게 줄였다. 리포트 품질ㆍ생산실적ㆍ투자의견 적정성을 애널리스트 보수 산정에 반영한 증권사의 예측력은 경쟁사 대비 더 높게 나타났다.

      이전과 달리 눈에 띄게 변화가 없는 요소가 하나 있었다. 셀 리포트 수였다. 규제 도입 전 1년간 국내사 리서치가 생산한 3만6739건의 리포트 중 셀 리포트는 46건, 비중은 0.13%였다. 규제 도입 후 1년 동안 셀 리포트 수는 43건, 비중은 0.12%로 오히려 줄었다.

      홀세일(기관영업) 및 투자금융(IB)의 지원부서라는 국내 리서치의 특성상 억지로 셀 리포트 비중을 끌어올리긴 힘든 게 현실이었다. 당시의 금감원도 이를 이해했다. 2019년 보고서의 미흡사항에 ▲ 괴리율공시 오류 ▲ 검수조직 등 형식적 운영 등은 지적했지만, 셀 리포트 비중은 따로 언급하지 않았다.

      4년이 지난 지금, 상황이 완전히 바뀌었다. 

      함용일 금감원 부원장은 지난 5일 27개 증권사 대표를 소집해 '리서치 관행 문제'를 화두로 꺼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문제로 삼은 게 '매수 일변도의 리서치 보고서'였다. 이번 차액결제거래(CFD) 사태에서도 주가가 급락한 8개 종목 중 4개만 리포트가 있었고, 그 중 3개는 매수 의견 뿐이었다는 지적과 함께였다. 

      금감원은 앞서 지난달 12일 주요 증권사 리서치센터장 10여명을 소집해 같은 내용의 우려를 전달한 바 있다. 한 달도 채 안 돼 이번엔 최고경영자들을 소집한 자리에서 공식적으로 금융당국의 의지를 피력한 것이다.

      증권사들은 이미 1~2년 전부터 리서치조직의 축소ㆍ존폐를 두고 갈등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홀세일 실적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국민연금이 내년부터 거래 증권사를 줄이기로 하며, 일부 중소형사는 리서치 조직 유지의 실익 검토에 들어갔다는 흉흉한 소문이 나돌고 있다. 인위적으로 셀 리포트를 늘린다면, 안 그래도 하락세인 홀세일 부문 실적이 더 망가질 거란 위기 의식이 적지 않다. 

      직접 압박을 받은 최고 경영자 입장에서도 대놓고 리서치를 육성하겠다고 나서기 쉽지 않은 판국이 됐다는 평가다. 셀 리포트를 늘리겠다는 건 자기 손으로 회사의 영업 환경을 망치겠다는 선언과 같아서다. 금감원이 대안으로 제시하는 '독립 리서치 활성화' 역시 기존 증권사 기반 리서치에 큰 도움이 되는 정책이 아니다.

      금감원이 표리부동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금감원이 지난 4월 이차전지업체 '에코프로'에 대해 매도 의견을 낸 애널리스트에게 소명을 요구한 건 당시 충격으로 받아들여졌다. 금감원은 개인투자자들이 대규모 민원을 제기해 어쩔 수 없었으며 소명서를 받은 뒤 민원을 기각했다는 입장이지만, 전후 관계를 떠나 앞으로 셀 리포트를 쓰기가 더욱 어려워졌다는 이야기가 중론이었다.

      다른 증권사 관계자는 "A증권사의 리포트가 내용이 매우 좋았다고 해서 그 리포트를 읽은 개인투자자가 A증권사에 계좌를 개설하고 주식을 거래하진 않는다"며 "이렇게 찍어누르는 식으로 셀 리포트를 강요하면 오히려 리포트 발행 수가 줄어들고 개인투자자의 리포트 접근이 더욱 어려워지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