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전 KB금융은 6850억원에 업계 4위 손보사 인수
중대형 손보 매물 전무...롯데손보도 비싸게 사면 안돼
자본투여도 비효율적..."신한금융 두 차례 실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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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한금융그룹이 '1위 금융그룹'을 되찾기 위한 마지막 퍼즐 조각으로 '손해보험사'가 꼽힌다. 2년 전 증권사가 그랬듯이, 지금은 손해보험사가 호황기를 맞이하며 비은행 부문 실적을 끌어올리고 있는 까닭이다. 신한금융도 일단 손보사 '구색'은 갖춰놓긴 했지만, 존재감이 거의 없다시피한 상황이다.
문제는 손보업이 생보업보다 대형사 편중이 심한데다, 앞으로 마땅한 중대형사 매물도 전무하다는 점이다. 그룹 내 마땅한 손보업 전문가도 없는 상황에서 내부 성장(Organic growth)을 노리고 자본을 쏟아붓는 건 비효율적이란 지적이다. 게다가 주가가 약세인 상황에서 주주들의 원성을 살 가능성도 크다는 평가다. '잃어버린 12년' 동안 LIG손해보험(현 KB손해보험)과 롯데손해보험을 놓친 게 결국 치명타가 됐다는 분석이다.
신한금융은 지난 1분기 총 순이익 1조3880억원을 거뒀다. 경쟁자인 KB금융 대비 1100억여원 적은 수준이다. 충당금을 덜 쌓은 덕에 은행 실적에서 우위를 보였고 카드사의 경쟁력도 여전히 좋았지만, 문제는 보험업이었다.
LIG손해보험(현 KB손해보험)에 이어 푸르덴셜생명보험(현 KB라이프)까지 인수하며 보험업 포트폴리오를 완성한 KB금융과는 달리, 신한금융은 사실상 생명보험(신한라이프)만 유의미한 기여를 하고 있는 상황이다. KB금융은 지난 1분기 보험업에서 3500억원 가까운 순익을 챙기며 1300억여원에 그친 신한금융을 멀찍이 따돌렸다.
핵심은 손보였다. 새 회계기준(IFRS17) 도입 이후 수치의 신뢰도에 대해 문제가 제기되고 있긴 하지만, 현 시점에서 KB금융ㆍ신한금융 통틀어 1분기에만 2500억원이 넘는 순익을 올린 비은행 계열사는 KB손해보험 단 한 곳뿐이었다.
반면 신한금융 손보사인 신한EZ손해보험은 10억원의 적자를 냈다. 신한금융은 지난해 410억원을 들여 BNP파리바카디프손해보험을 100% 자회사로 편입한 뒤 신한EZ손해보험으로 사명을 바꿨다.
최소한의 비은행 포트폴리오를 갖추기 위한 고육지책일뿐, 그룹에 유의미한 기여를 하기 힘든 규모라는 평가가 많다. 국내 손보업계에서 신한EZ손보가 차지하는 비중은 보험수익 기준 0.02%, 자산 기준 0.07%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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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한EZ손보에 자본을 쏟아붓는다면 성장이 가능할까. 보험업계의 전망은 부정적이다.
당장 비슷한 처지인 하나손해보험만 봐도 그렇다. 하나금융그룹은 더케이손해보험을 770억원에 인수한 뒤, 1500억원씩 두 차례에 걸쳐 총 3770억원의 자금을 투입했다. 자본여력이 생기고 수익이 성장세이긴 하나, 현 시점에서 하나손보의 시장점유율은 0.5%(1분기 보험수익 기준)에 그친다.
KB금융이 2015년 LIG손보의 경영권 지분을 확보하기 위해 지불한 자금은 6850억원이었다. 이후 들어간 1조2000억원은 완전자회사로 편입하기 위한 자금이었다. 당시에도 LIG손해보험은 '탑3' 바로 아래 4위권의 대형사였고, 현재도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지금과는 돈의 가치가 다르긴 하지만, 당시 KB는 7000억원도 안되는 자금으로 유일한 대형 손보사 매물을 거둬갔다"며 "지금 신한금융이나 하나금융이 손보계열사에 2조원을 쏟아붓는다고 해서 해당 계열사가 업계 5위권으로 급성장할 순 없다"고 말했다.
추가 인수합병(M&A)을 통한 비유기적(Inorganic) 성장도 사실상 쉽지 않은 상황이라는 지적이 많다. 생보사 매물은 많지만, 손보사 매물은 씨가 마른 상태다. 오래 전부터 나와있는 매물인 MG손보의 경우 회계기준 수혜를 입은 올해 1분기조차도 적자를 냈다. 잠재매물로 꼽히는 악사손보의 경우 수천억원대 결손금이 쌓여있는 게 부담이다.
사모펀드(PEF)가 대주주로, 이르면 올해 하반기 매물로 나올 가능성이 점쳐지는 롯데손보가 그나마 대형 금융지주사가 인수해 체면치레를 할 수 있는 매물로 꼽힌다. 그럼에도 불구, 판도를 뒤엎을 '게임 체인저'는 되기 힘들다는 전망이 많다. 롯데손보는 업계 9위권(1분기 보험수익 기준) 매물로, 손보업계 상위 5개사 대비 영업 규모가 3분의 1밖에 되지 않는다.
국내 손보업계는 생보업계보다도 대형사 과점 체제가 심한 시장이다. 올 1분기 기준, 손보사 상위 5개사는 보험수익의 78%, 당기순이익의 84%를 점유했다. 같은 기간 생보사의 상위 5개사 점유율은 각각 69%, 67%다. 대형사들이 점유하는 시장이 크니, 중소형사가 가져가는 시장은 상대적으로 작아진다. 게다가 '탑3'는 물론, 메리츠화재, 한화손보, 흥국화재, 농협손보 등 중위권을 형성하고 있는 알짜 손보사가 매물로 나올 가능성은 희박한 상황이다.
비은행 부문 성장을 위해선 업계 전문가에게 경영을 맡기는 것도 중요하다는 지적이다. 다만 신한금융의 경우 비은행 경영자 풀(pool)이 다소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현재 신한라이프의 대표이사를 맡고 있는 이영종 대표의 경우 은행 출신으로 오렌지라이프 경영에 참여하다 대표이사로 승진했다.
앞서 오렌지라이프의 대표를 맡았던 보험전문가 정문국 전 대표는 2020년을 끝으로 물러났다. 통합 전 신한생명의 대표로 공무원 출신 성대규 전 대표를 선임한 것 역시 이슈였다. 당시 성 대표의 보험 관련 이력은 2년4개월의 보험개발원 원장 재직이 전부였다. 현재 성 전 대표는 신한라이프의 부회장이자 이사회 의장을 맡고 있다.
물론 KB금융도 이런 비판에서 자유로운 것만은 아니다. KB금융의 경우 KB손보 대표이사로 재무통을 중용하고 있다. 초대 양종희 사장에 이어 현 김기환 사장도 그룹 최고재무책임자(CFO) 출신이다. KB라이프의 경우 통합 이슈가 남아있는데, 은행 출신 이환주 대표 아래 보험업계에서 잔뼈가 굵은 민기식 전 푸르덴셜생명 대표를 부회장으로 잔류시켰다.
금융권에서는 신한금융이 두 차례 실기(失期)했다는 평가를 내놓는다.
2014년 LIG손해보험이 매물로 나왔을 때 당시 한동우 신한금융 회장은 1위에 안주하고 있었다. 신한금융은 인수 의지를 전혀 보이지 않았고, 매각전은 KB금융과 사모펀드 MBK파트너스의 2파전으로 흘러가다 KB금융의 싱거운 승리로 끝났다.
2019년 1월 롯데손해보험 매각 예비입찰에도 신한금융은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당시 조용병 신한금융 회장은 국내 사모펀드 IMM프라이빗에쿼티를 대상으로 7500억원 규모의 투자를 유치하고 있었다. 자금 여력이 확실함에도 불구, 인수 검토 단계에서 포기하며 비은행 포트폴리오를 완성하지 못했다.
다른 금융권 관계자는 "주주환원에 대한 주주들의 불만이 쌓여있는 상황에서 적자인 손보 계열사에 대규모 자본확충을 감행하는 건 쉽지 않을 것"이라며 "만약 롯데손보 인수에 나선다 해도, 같은 처지인 하나금융과 경쟁이 과열돼 비싸게 인수한다면 두고두고 후유증이 남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