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모펀드 ETF화' 정책에 증권가 반발...'현실성 없는 탁상행정'
입력 2023.07.14 07:00
    금투협, 공모펀드 거래소 상장 논의…당국도 공문 보내 검토
    운용업계선 회의론 드리워…"LP로 나설 증권사 어딨나" 토로
    "비슷한 ETF 상품 널렸다…장기 투자형 상품 의의 살려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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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금융투자협회를 중심으로 한 국내 자산운용사들이 공모펀드 상품을 거래소에 상장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최근 투자자들의 외면을 받고있는 공모펀드 시장을 살리기 위해, 상품 구조 자체를 ETF(상장지수펀드)처럼 바꿔 유통 물량을 늘려보겠다는 구상이다. 

      다만 운용사 실무진들과 증권가에서는 이를 두고 '전형적인 탁상행정'이라며 회의론이 짙은 분위기다. 공모펀드를 상장시키려면 증권사들이 LP(유동성 공급자)로 나서줘야 하는데, 증권사들이 위축돼 구하기 쉽지 않은 까닭이다. 이미 ETF가 700개 넘게 상장된 상황에서 신규 상품이 얼마나 주목받을지 현실적인 문제도 제기된다. 

      13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국내 자산운용사 20여곳은 최근 사장단 회의를 통해 공모펀드 상품을 거래소에 직상장하는 방식을 논의하고 있다. 올해 취임한 서유석 금융투자협회장이 이를 적극 건의하고 있으며, 금융당국 역시 운용사들에 수차례 공문을 보내는 등 해당 방안을 주력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자산운용사들이 공모펀드를 상장시키려는 이유는 공모펀드 시장은 사양길에 접어든 반면, ETF 시장은 약 100조원 규모로 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 17개 은행에서 판매되고 있는 국내 공모펀드 잔고는 올해 1분기 말 기준 39조6463억원으로, 전년 대비 25% 가량 감소했다. 2021년 말 60조원대를 기록한 이후 꾸준히 두 자릿수 이상의 감소세를 보이고 있는 셈이다. 

      반면 국내 ETF 순자산 총액은 올해 6월 말 기준 100조원을 넘겼다. 지난해 말 ETF 순자산 규모가 78조5116억원라는 점을 고려하면, 약 6개월 만에 30%가 불어난 것이다. ETF 시장은 상품이 처음 출시된 2002년(3444억원)과 비교하면 290배나 커졌다. 

      ETF의 인기가 매도와 매수가 자유로운 거래 편의성과 낮은 수수료에 있다고 보고, 이 같은 성공 방정식을 공모펀드에도 적용해보겠다는 구상이다.

      다만 몇몇 운용업계 실무진들을 비롯해 일부 증권사 관계자들 이런 움직임에 대해 회의적 목소리가 나온다. 애초에 증권사들이 중소형 운용사들의 LP로 나서고 싶어하지 않는 데다, 공모펀드를 상장시킨다고 해서 인기를 끌 수 있다는 보장도 없는 까닭이다. 

      통상 ETF는 상품의 매수ㆍ매도 호가를 통해 거래를 체결하게 하고 가격 발견을 돕는 유동성 공급자, 즉 LP가 없으면 운영되지 않는다. 국내 금융 시장에서는 이 역할을 증권사가 담당하고 있다. 

      증권사들은 헷지(손실 보전)를 위해 해당 상품의 종목을 일정 비율 이상 보유하고 있어야 하는데, 시장에서 구하지 못하면 통상 계약을 맺은 운용사에서 빌려야 한다. 인기를 끌지 못한다면 증권사가 손해를 보는 구조다. 

      한 중소 운용사 소속 공모펀드 운용역은 "ETF처럼 시장에서 자유롭게 거래되려면 물량을 받아줄 증권사와 LP 계약을 체결해야 하는데, 그 LP는 보통 손실을 보는 구조"라며 "이걸 감내할 만한 증권사가 어디 있겠나. 그룹사 없는 중소형사는 그만한 신뢰 관계를 구축하기도 어렵다"고 토로했다.

      한 증권사 관계자도 "현재 상장된 ETF도 거래량이 없어 사실상 시장에서 판매 중단된 상품이 대다수인데, 껍데기(vehicle)만 다르게 판매한다고 해서 누가 사고 싶어하겠느냐"며 "시중의 공모펀드와 비슷한 경쟁 상품들은 이미 ETF로 다 상장됐다. 펀드에 ‘클래스’ 하나 붙인다고 특별한 경쟁력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일부 증권사들이 LP를 꺼리는 풍조도 관측된다. 지난 2020년 금융당국은 코로나19로 인한 증시불안을 달래기 위해 한시적 공매도 금지 정책을 도입했다. 당시 LP 증권사들의 유동성 공급은 금지하지 않았는데, 이듬해 일부 개인투자자들이 이를 '불법 공매도'로 낙인찍고 이슈화했다. 

      금융당국이 이런 논리를 일부 받아들이며 증권사들에 제재를 가했고, 이후 증권사들의 LP 업무가 위축되며 일부 거래량이 적은 ETF의 괴리율이 크게 오르는 결과를 낳기도 했다.

      액티브(Active) ETF 등이 도입되며 이미 공모펀드와 ETF의 경계선이 흐릿해졌다는 지적도 있다. 아직까진 액티브 ETF가 ▲기초지수와 상관관계 0.7 이상 유지 ▲일일 자산구성내역 공시 등의 규제로 액티브펀드라기보단 패시브펀드에 가깝게 운영되고 있다. 다만 액티브 ETF 역시 규제 완화가 추진되고 있다. 규제가 완화하면 '공모펀드 ETF'와 '액티브 ETF'는 큰 차이가 없어진다.

      금융업계 일각에서는 금융 당국이 공모펀드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공모펀드 자체가 장기 투자의 성과를 얻기 위해 구상된 금융 상품인데, 매수와 매도가 자유롭게 설정해 놓으면 당초 계획해놓은 수익률을 달성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한 펀드 매니저는 "현재 공모펀드 시장에서 그나마 잘 팔리는 게 퇴직연금 시장을 겨냥한 가치투자형 펀드인데, 이 매매 타이밍을 개인 투자자에게 맡긴다면 오히려 수익률이 떨어져 그나마 있는 인기마저 떨어질 것"이라며 "펀드라는 것은 1%의 수수료로 주식 전문가를 고용한다는 데 의의가 있다. 실무를 모르는 전형적인 탁상행정"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