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투자일임업 전면 확대 보류…'은행 못마땅' 정부 심기가 배경
입력 2023.07.18 07:00
    Weekly Invest
    은행권 숙원사업 '투자일임업 전면 허용' 또 보류
    증권가, 밥그릇 싸움 승리에 미소 감추지 못하지만
    당국 내부에서 은행 친화적 행보 경계감 높았던 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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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국내 은행들의 숙원사업이었던 투자일임업 전면 확대가 무산됐다. 금융당국이 당분간 이를 허용하지 않는 방향으로 결정하면서다. 이 같은 결정에 은행권은 아쉬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고, 증권가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분위기다. 

      이번 결정에는 은행권 고(高)수익에 대한 정부의 불편한 심기가 크게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과점 체재를 깨기 위해 신규 시중은행 지정 등을 추진하는 상황에서, 투자일임업 허용은 결이 달랐다는 지적이다.

      최근 금융 당국 산하의 '은행권 경영ㆍ영업 관행ㆍ제도 개선 태스크포스'(이하 제도개선TF)는 지난 2월부터 논의해왔던 은행권 투자일임업 허용 안건을 보류하기로 했다. 최근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이 발표한 개선안에도 해당 내용이 포함되지 않았다.

      투자일임은 금융투자사가 투자자로부터 자금을 위임받아 대신 운용하고 대가로 수수료를 받는 사업 구조로, 일임형 랩어카운트가 대표적인 상품이다. 현재 투자일임업은 증권사ㆍ자산운용사ㆍ투자자문사에만 전면 허용됐다. 은행은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에만 한정적으로 허가를 받을 수 있는 상황이다. 

      이에 따라 증권사들은 일임형 종합자산관리계좌를 통해 원스톱 종합자산관리 서비스를 제공하는 반면, 은행은 해당 사업을 영위하지 못하고 있어 그간 불만이 제기돼 왔다. 제도개선TF가 생기자마자 은행연합회가 투자일임업을 전면 허용해줄 것을 당국에 건의한 배경이다. 

      은행연합회는 전면 허용이 어렵다면 공모 펀드와 로보 어드바이저를 통한 투자일임업에 한해서라도 추가 허용해 달라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특히 국내 은행 최초로 투자자문업 허가를 받은 KB국민은행이 당국과 연합회 측에 이를 강하게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은행권 관계자는 "투자일임업으로 비이자이익을 늘리면 현재 정부가 문제삼고 있는 이자이익에 치우친 수익구조를 개선할 수 있다"며 "은행만을 고집하는 소액 투자자와 고령 고객들을 증권사나 운용사 상품으로 인도할 수 있어, 전반적으로 투자 시장을 활성화하는 효과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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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당국은 증권사를 중심으로 한 금융투자업계의 반발을 이유로 검토를 미루고 있는 상황이다. 

      현재 증권업계는 투자사의 핵심업무를 은행권에 넘겨줄 경우, 중소 증권사의 경영상 어려움이 가중되고 증권업계의 다양성을 훼손할 우려가 있다면서 투자일임업 확대를 반대하고 있다. 증권사들의 고유 업무 영역을 은행에 넘겨주면, 증권사들의 수익이 줄어들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실제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증권사의 일임 계약고는 지난해 3월 말 146조1000억원에서 올해 3월 말 109조8000억원까지 줄었다. 1년 사이에 24.8% 급감한 것이다. 운용사들의 일임 재산도 14.9% 가량 줄어들면서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한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과한 경쟁으로 인한 불완전 판매 가능성이나 소비자 피해 우려 등 거창한 논리를 대고 있지만 결국은 밥그릇 싸움"이라며 "운용사는 일임재산 운용 규모가 600조가 넘고, 증권사는 100조가 넘는다. 이를 은행에 나눠줄 이유가 없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금융권에선 이번 결정을 연초 이후 지속돼 온 '은행 손보기'의 연장선으로 이해하고 있다. 

      TF 관계자는 "애초에 TF의 설립 목적도 은행 수익이 너무 많아 경쟁을 촉진해 줄여보자는 것"이라며 "은행에게 뭘 하나 더 건네주는 그림은 안 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고 설명했다.

      다만 최근 금융당국이 금융지주사의 비금융회사 투자 규제를 완화해 주는 '은산분리 개선안'을 마련하는등, 일부 안건에서는 은행의 숨통을 틔워주려는 움직임을 보여주고 있는 건 변수로 꼽힌다. 물론 이 역시 상호금융ㆍ저축은행 등 금융 거시 환경 불안이 지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은행을 안전망으로 쓰기 위한 방편이라는 비판이 없지 않다. 

      한 정무위 관계자는 "정부의 기조는 수요자는 건드리지 않는 대신 공급자(금융권), 그중에서도 카르텔(은행)을 규제하자는 것"이라며 "은행 규제를 위해 금융위와 공정위 등 사정기관을 전부 동원하는 상황에서 은행 친화적 정책을 추진하긴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