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격 조건은 충족...금융당국선 '선진적 선례' 압박
농협ㆍ우리금융 '관치 논란'에 참여 고민일거란 분석
낙하산 외부 인사 현실화시 막을 수 있는 건 윤 회장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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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보다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KB금융지주 차기 회장 후보군(숏리스트)에 현직인 윤종규 회장이 포함될지 여부에 금융권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윤 회장은 아직 대외적으로 불참이나 고사 의사를 밝히지 않은 상황이다.
앞서 농협금융지주, 우리금융지주 회장 선정 절차에서 관치(官治) 논란이 크게 불거졌던만큼, 윤 회장 역시 이를 염두에 두고 고심 중일거라는 분석이 나온다. 만약 '낙하산 외부 인사'가 회장 후보군에 포함되더라도, 주주들의 지지를 받고 있는 윤 회장이 후보로 나선다면 관치 논란을 최소화할 수 있는 까닭이다.
KB금융지주 회장후보추천위원회(회추위)는 지난 7월20일 '회장 후보 추천절차 세부 준칙'을 의결하며 차기 회장 선정 절차에 착수했다. 지난 2020년 회장 선정 절차보다 한 달 가량 빠른 일정이다. 사외이사 7명 전원으로 구성된 회추위는 ▲8일 1차 숏리스트 6명을 발표하고 ▲29일 2차 숏리스트 3명을 추린 뒤 ▲9월 8일 최종 후보 1명을 선정해 주주총회에 추천할 계획이다.
금융권의 관심은 8일 발표될 1차 숏리스트에 윤 회장이 포함될지 여부다. 일단 자격 조건 상으로는 문제가 없다. KB금융 내부규정상 회장은 취임 당시 만 70세를 넘지 않아야 한다. 1955년생인 윤 회장은 올해 만 68세로 규정에 저촉되지 않는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윤 회장은 4연임에 도전하지 않을 거란 시각이 우세했다. KB금융은 최고경영자(CEO) 승계를 위한 육성 시스템을 가장 먼저 도입한 금융지주다. 계열사 대표를 거쳐 그룹 업무를 총괄하고 있는 양종희ㆍ허인ㆍ이동철 부회장이 3파전을 벌이는 가운데, 박정림 KB증권 대표 등 주요 계열사 대표들이 후보군을 이룰 것으로 전망됐다.
분위기가 바뀌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말부터다. 기획재정부 공무원 출신이자 현 정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고문을 맡았던 이석준 전 청와대 국무조정실장이 농협금융지주 회장으로 선임되며 '관치 논란'에 불이 붙었다.
금융당국은 금융지주들의 승계 절차를 문제삼으며 손태승 전 우리금융지주 회장의 연임도 막아섰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공개석상에서 손 회장의 연임 포기를 종용하는 듯한 발언을 내놓기도 했다. 차기 회장으로 역시 기재부 공무원 출신인 임종룡 전 농협금융회장이 취임하며 '관치 논란'의 정점을 찍었다.
KB금융도 예외는 아니다. 금융당국은 벌써부터 KB금융의 회장 선임 절차를 견제하고 나선 분위기다.
이복현 금감원장은 지난 17일 공개석상에서 "지난해 말과 올해 초 있었던 지배구조 이슈 후 KB가 첫 이벤트(회장 선정)를 맞는 만큼 선진적인, 선도적인 선례를 만들어주셨으면 한다"고 발언했다. 이 원장은 앞서 지난달 29일에도 "KB금융 회장 인선 절차가 업계 모범을 쌓는 절차가 됐으면 좋겠다"고 언급했다.
금융당국은 경영승계와 관련한 새로운 가이드라인도 만들고 있다. 금감원은 지난 14일 지배구조 모범관행 마련을 위한 태스크포스(TF) 첫 회의를 열었다. 이 TF는 올해 하반기 말을 목표로 CEO 선임과 경영승계, 사외이사 평가 체계 등에 대한 모범규준을 마련할 계획이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이 원장의 '선진적인 선례'라는 발언은 윤 회장의 4연임을 견제하려는 목적으로 해석된다"며 "앞서 농협금융ㆍ우리금융 회장 선임 때에도 비슷한 발언으로 현직을 견제하곤, 결국 정권에 연이 있는 기재부 출신 외부 인사를 회장에 앉혔기 때문에 KB금융 내부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올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윤종규 회장이 선뜻 '이번 회장 선임 절차에 불참하겠다'는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는 것도 이런 맥락으로 해석된다. KB금융에서도 관치 논란이 현실화한다면 이를 막을 수 있는 건 윤 회장 본인 뿐인 까닭이다.
윤 회장이 재임한 9년간 KB금융은 신한금융을 제치고 업계 1위로 올라섰다. 카드ㆍ증권에 이어 손해보험, 생명보험까지 비은행 포트폴리오를 완전하게 구축했다. 신용 충격에 대비하라는 금융당국 지침에 따라 올 상반기 4대 금융지주 중 가장 많은 1조3000억여원의 충당금을 쌓으면서도, 역시 4대 지주 중 가장 많은 3조원의 순이익을 올렸다.
그 와중에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 역시 그룹 16.95%, 은행 18.40%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탄탄한 자본을 바탕으로 주주환원도 늘려가고 있다. 올해 예상 총 주주환원율은 33%로 역시 4대 지주 중 1위다.
이런 윤 회장이 숏리스트에 포함된다면, 현 부회장단은 물론 외부에서 어떤 인사가 후보로 오든 주주들과 이사회의 지지를 받을 수밖에 없을 거란 게 중론이다.
KB금융지주는 초대 황영기 전 회장을 비롯, 어윤대 전 회장, 임영록 전 회장까지 외부 출신 '관치 인사'가 이어진 역사를 갖고 있다. 이들은 사외이사ㆍ은행장과 마찰을 빚으며 KB금융의 경쟁력을 깎아먹었다는 평가가 다수다.
임종룡 회장이 취임한 우리금융의 현 상황도 이슈다. 우리금융 내부에서는 현 정부의 금융정책에 보조를 맞추는 경영전략을 부담스러워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2분기 그룹 및 은행 순이자마진(NIM)은 경쟁사가 모두 상승하는 가운데 우리금융만 역성장했다. 하나금융과의 주가순자산비율(PBR) 밸류 격차는 지난해 말 대비 벌어지고 있다.
최근 우리금융은 우리경영연구소장으로 역시 기재부 공무원 출신인 박정훈 전 금융정보분석원장을 임명하기도 했다. 우리경영연구소장은 최근 10년간 기재부 출신 '낙하산 외부 인사'가 대표를 맡아왔지만, 2021년 완전 민영화 이후 내부 출신 기용에 대한 기대감이 있었다. 타 금융지주들은 모두 내부 인사에 연구소장을 맡기고 있다.
다른 금융권 관계자는 "윤 회장 입장에선 본인이 4연임을 할 시 이미 부회장 재임 3년차인 양종희 부회장을 비롯, 본인이 육성한 차기 CEO 후보군이 '인사 적체'에 빠질 수 있다는 점이 고민일 것"이라며 "그럼에도 낙하산 외부 인사가 정부의 지지를 등에 업고 회장 자리를 차지하는 게 KB금융 입장에선 최악의 시나리오인만큼, 이것만은 막아야 하는 상황"이라고 평가했다.
KB금융지주는 "윤 회장이 현 시점에서 거취를 표명한 것은 없으며, 숏리스트에 현직 회장이 포함될지 여부도 확인해줄 수 없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