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부터 냉기류 확실…산은 내부에서도 우려 높아져
무산시 "조원태 경영권 방어만 도운 꼴" 비판 가능성
대한항공 "해결책 있다"지만…한진칼 자금 마련 움직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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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기업결합(합병)이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산업은행은 거래 무산시 대두될 '책임론' 대응 마련에 한창이다. 해외 경쟁당국의 심사 승인을 위해 모든 요구를 들어주자니 당초 '아시아나 정상화'라는 공적 명분에 맞지 않고, 거래가 무산되면 산은이 한진그룹 오너가의 경영권 방어만 지원한 셈이 되니 난처하다. 한진그룹은 외부적으로는 승인 여부에 자신감을 내비치고 있지만, 그룹 내 자금 마련 등 거래 무산시 '원상복구' 부담을 미리 대비하는 분위기다.
8일 업계에 따르면 미국 법무부(DOJ)와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이하 EC) 등 해외 경쟁당국은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합병에 대해 여전히 강경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해외 기업결합 심사가 장기화하면서 산업은행 및 아시아나항공은 '아시아나 안정화 방안' 관련 외부 컨설팅도 진행 중이다. 아시아나의 미래 사업 계획과 자금수지를 점검하고, 향후 대한항공의 아시아나항공 인수 무산 가능성에도 대비하기 위함이다.
거래 기안자인 산은 측에서 점검에 나설 명분이 있지만 사실상 합병 무산시 '면피용' 논리를 준비하려는 목적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이미 올초부터 시장에서는 아시아나의 공중분해 가능성과 산은의 '플랜B' 마련 움직임에 관심을 둔 바 있다. 이에 대해 산은은 지난 6월 강석훈 산업은행 회장이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기업결합이 무산되는 경우에 대한 플랜B는 현재 전혀 고려하고 있지 않다"고 공식 언급하는 거래 무산 가능성에 대해서 일축해왔다. 그러나 최근 들어 산은 경영진 내에서도 우려가 높아졌고 '대책 마련' 공감대가 형성된 분위기다.
게다가 산은이 주도하고 있는 기업 구조조정 대부분이 성공적이진 않은 상황이라 대한항공과 아시아나의 합병마저 무산되면 '산은 책임론' 비판 여론이 커질 수 있다. 현재 M&A 시장의 가장 '빅딜'인 HMM 매각도 중형 기업들만 출사표를 던지는 등 거래 전망이 불투명한 상황이다.
거래 무산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지만 구체적으로 제 3자 매각을 검토하고 있진 않은 것으로 파악된다. 컨설팅 등 재무 점검도 합병이 무산되고 제 3자 매각에 나설 경우 잠재 인수자들이 봤을 때 '걸림돌'이 될 수 있는 부분을 미리 확인하고 정리하기 위한 차원이다. 향후에 아시아나가 외부적인 요인을 제외하면 '크게 나빠지지 않았음'을 보여주기 위해 비용절감 방안을 찾겠다는 복안이다. 한편 현재 아시아나 인수에 관심을 갖고 있는 잠재 인수자는 일부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산은이 지금까지 한진 측의 '긍정적 전망'을 믿다가 최근 경영진도 합병 무산 가능성을 감지한 분위기인데, 무산됐을 때를 전제로 추가적인 자금 지원 필요성이나 아시아나의 재무 상황 점검을 하고 있다"며 "거래 무산 시에도 산은 책임론이 부각되지 않도록 재무적인 방어 논리를 마련하려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산은이 대한항공의 아시아나 인수를 도운 명분은 '아시아나항공 정상화'라는 공적 명분이었는데, 합병이 안되면 결과적으로는 가능성이 없는 계획을 내걸고 자금을 지원해 조원태 한진 회장의 경영권 방어를 도와주기만 한 셈이 되기 때문에 산은 내부에선 최대한 '면피' 방안을 준비하려는 분위기"라고 덧붙였다.
산업은행 관계자는 "현재 플랜B가 없다는 입장이 바뀐 바 없고, 아시아나 관련 외부 컨설팅 의뢰는 아시아나항공이 자체적으로 진행한 것이라 산은의 '면피용'이라 보기 어렵다"며 "해당 컨설팅은 아시아나의 자금수지를 점검하면서 향후 영업계획 수립과 관련해 의뢰한 것으로 결과는 아직 나오지 않았고 결과가 나오면 채권단인 산은에도 공유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미 앞서 5월부터 대한항공-아시아나 합병에 대한 유럽과 미국 경쟁당국의 강경한 입장은 뚜렷하게 감지됐다. 당시 EC가 대한항공에 전달한 중간 심사보고서(SO)에 따르면 EC 측은 기업결합 승인 조건으로 유럽연합(EU) 주요 4개국 노선에 동시 취항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춘 한국 국적항공사에 양사가 보유한 운수권(슬롯) 일부를 양도할 것을 요구하는 등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같은달 미국 법무부(DOJ)는 대한항공에 "독점을 해소할 경쟁 항공사가 없으면 합병 승인이 어렵다"고 통보했다.
6월 말 EU 집행위는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기업결합 승인 여부 결정 시점을 또 연기했다. 시점 연기에 앞서 EC에서는 '납득하기 힘든' 조건을 내걸었는데, 화물 운송 부문 경쟁 제한을 우려해 화물 운송 부문 정리 요구가 포함됐다. 이에 대한항공이 아시아나의 화물 부문 중 미국 쪽은 에어프레미아에, 유럽 쪽은 티웨이에 나눠 대여해주겠다는 방안을 마련했으나 EC 측에서는 인수자로 '더 큰 항공사'를 요구하면서 반려했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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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EC 측에서 화물 부문뿐 아니라 장거리 노선 여객 부문까지 나누기를 요구하고 있어 '잃을 것'은 더 많아졌다. 대한항공은 자사와 아시아나항공의 일부 미국 및 유럽 노선을 국내 다른 항공사에 넘기는 방안을 고민중이다.
산은 입장에서는 '아시아나 정상화' 취지에 맞지 않는 계획을 승인하기 부담스럽다. 합병의 취지가 양사의 슬롯 점유율을 높이고 시너지를 내겠다는 것인데 화물 사업부를 매각하고 장거리 핵심 노선을 넘기는 안은 사실상 아시아나가 공중분해되는 셈이 된다. 아시아나 수익의 70% 이상이 화물에서 나오고 있어 화물부문 매각은 아시아나 입장에서도 '치명타'다. 아시아나의 화물 부문을 LCC(저비용항공사)가 감당하기 힘든 점을 고려하면 국내에서 마땅한 인수 대상을 찾기도 어렵다.
산은도 여러 해결책을 고민하고 있는 상황인 가운데 한진그룹은 여전히 기업결합 승인을 받아내겠다는 공고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 최근에도 대한항공 측은 일부 LCC에 "새로운 각도의 방안을 준비 중"이라는 입장을 전달하는 등 EC 기업결합 심사 통과를 위한 방안 마련에 한창이다.
한 M&A업계 관계자는 "유럽에서 요구하는 내용이 많지만 협의 중이고 해외 경쟁당국에서 우려하는 부분에 대해 해결하기 위해 여러 방안을 고려 중"이라며 "어려운 상황은 맞지만 합병 승인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한진그룹 입장에선 무엇을 포기하든 거래를 성사시켜야 하는 상황이다. 거래 무산시 유력한 경쟁사를 줄일 기회를 놓치게 되고, 1000억원 이상의 자문 비용도 매몰 비용이 된다.
무엇보다 원상복구에 대한 부담이 크다. 이미 받은 산업은행의 자금을 돌려줘야 하고 오너 일가의 경영권 방어 문제도 떠오르게 된다. 지난 3일 한진칼은 대한항공에 서소문사옥 건물과 토지 일부를 매각한다고 공시했다. 매각가는 2642억원이고 한진그룹은 매각 사유를 "유동성 확보"라고 밝혔다. 시장에서는 한진칼이 10년간 소유권을 가지고 있던 서소문 빌딩을 '지금' 대한항공에 매각한 것은 사실상 아시아나 인수 무산 가능성에 대비하는 이유가 크다는 시선이 많다.
다만 대한항공 입장에서 인수가 무산돼도 실제로는 크게 '손해'를 볼 것이 없다는 분석도 있다. 대한항공은 아시아나 합병이 지연된 지난 2년간 경영권 안정을 유지했고 그동안 영업실적은 크게 회복됐고 자산 매각, 자금 조달 등을 통해 재무상태도 좋아졌다. 아시아나가 지난 몇 년간 재무구조나 경쟁력이 악화한 만큼 인수가 무산돼도 '반사이익'이 있을 것이란 관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