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종희ㆍ허인 양강 구도...61년생 회장ㆍ66년생 행장 모양새
외부 인사 큰 의미 없을 듯...일각선 '그 나물에 그 밥' 비판도
차기 선출 후 부회장직 관심...겸임 등 과도기 구조 점치기도
-
이변도, 혁신도 없었다. KB금융지주 차기 회장 1차 숏리스트(적격후보자)는 지난해 말부터 언급되던 인물들로 채워졌다. 2명 포함된 외부 후보도 큰 변수는 되지 않을 것이란 게 중론이다. KB금융이 안정적인 최고경영자(CEO) 승계에 무게추를 두고 있음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6명의 후보 중에서도 크게 양강 구도로 판이 짜이는 가운데, 신임 회장 선임 이후 KB금융의 지배구조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KB국민은행을 비롯, 주력 계열사 CEO들이 2년차 임기를 소화하는 가운데 차기 부회장단이 어떻게 꾸려질지도 변수다.
KB금융지주 회장후보추천위원회(회추위)는 8일 예정대로 차기 회장 후보군 6명의 명단을 공개했다. 내부 후보군으로는 양종희 KB금융 부회장, 허인 부회장, 이동철 부회장 및 박정림 KB증권 대표(지주 자본시장ㆍCIB 총괄부문장) 등 4명이 선정됐다.
외부 후보군으로는 2명이 포함됐는데, 본인들의 의사에 따라 1차 숏리스트에서는 일단 이름을 비공개하기로 했다. 29일 발표될 2차 숏리스트에 외부인사가 포함된다면 이름이 공개된다. 이들은 관치(官治) 논란 및 금융권의 과도한 관심 등을 의식해 비공개를 선택한 것으로 추정된다. 앞서 지난해 12월 신한금융이 숏리스트에 포함한 외부인사가 명단이 공개되자마자 면접을 고사한 일도 있었다.
내부 후보군 4명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차기 회장 후보군으로 물망에 오르던 인물들이다. KB금융은 이들 4명을 비롯, 이재근 국민은행장ㆍ김기환 KB손해보험 대표ㆍ이창권 KB카드 대표ㆍ이환주 KB생명보험 대표 등 주요 계열사 경영진 10명을 내부 후보군으로 관리해왔다. 회추위는 지난해에도 이들을 대상으로 네 차례의 경영 현안 발표회와 토론회를 진행했다.
이재근 행장은 1차 숏리스트 선정 과정에서 은행 경영에 집중하겠다며 후보군 포함을 고사한 것으로 파악됐다. 임기 2년차를 맞이한 이창권 대표와 이환주 대표 등 일부 계열사 CEO들도 현재 주어진 업무에 집중하겠다는 의사를 회추위에 전달한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2021년 이후 투입된 1964년~1966년생 CEO들이 회장 후보 레이스에서 한 발 물러서며, 내부 후보군 중 승계 순위 최상위인 1961년생 부회장 3명과 1963년생이자 지주 총괄부문장인 박정림 대표가 1차 숏리스트에 오른 것이다. 나이 및 그룹 내 직위상 자연스러운 수순이었지만, 혁신이나 세대교체면에서는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가다.
올해 초 취임한 진옥동 신한금융 회장이 1961년생이고, 신한을 비롯해 하나금융 등 타 금융그룹도 대부분 1965년생 전후로 차기 CEO군을 관리하고 있음을 고려하면 오히려 KB금융이 인사 혁신 면에선 한 발 뒤쳐진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내부 후보군으로 1차 숏리스트에 포함된 4명 중 가장 주목받는 인물들은 양종희 부회장과 허인 부회장이다. 양 부회장은 윤종규 회장의 복심(腹心)으로 불리며 가장 먼저 부회장직에 올랐다. 허인 부회장 역시 3인의 부회장 중 유일한 은행장 출신으로 영업력과 조직관리 능력을 인정받은 인물이다.
회추위가 이번 회장 선임 과정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핵심 기준은 ▲안정적인 조직 장악 및 융합 능력 ▲리스크 관리 등 업무 전문성 등으로 파악된다. 재무통으로 오랜 기간 숫자를 만져온 양종희 부회장이나, 행장 재임 기간 유일하게 금융상품 사고에서 빗겨나 있던 허인 부회장이 주목받는 배경이다.
그룹 내 국민은행 출신 계파를 대표하는 이동철 부회장은 KB생명 부사장ㆍ지주 최고전략책임자(CSO)ㆍKB카드 사장 업력으로 쌓은 뛰어난 비은행 확장성과 전략 업무 경험이 최고 장점이다. 다만 다른 두 부회장에 비해 담당해 온 업무 등에서 무게감이 떨어진다는 평가가 없지 않다. 박정림 KB증권 대표는 여성 리더이자 넓은 네트워크가 강점으로 꼽히지만, 2020년 금융감독원으로부터 통보받은 중징계의 확정 절차가 금융위원회에서 진행 중이라는 점이 발목을 잡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신상을 공개하지 않은 외부 인사 2명은 큰 변수가 되지 않을 것이란 평판이 현재 주류다. 관치(官治) 논란을 우려하던 윤종규 회장이 용퇴를 선언한 것은, 농협금융지주ㆍ우리금융지주 회장 선정때와는 다르게 외압이 크지 않을 거란 판단에서 비롯된 것으로 분석된다.
회추위가 '외부 인사에 불이익이 없게 하겠다'면서도 '그룹의 비전과 가치관을 공유할 수 있는 인사'라는 평가 원칙을 재천명한 것 역시 내부 인사에 무게를 두는 포석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외압이 없다면, 3년 가까이 그룹 내부 현안을 지속 점검하고 이에 대한 대안을 고민해 이사회에 보고해 온 내부 후보군과 외부 후보군이 동일선상에서 경쟁할 순 없다"며 "외부 1차 숏리스트 2명 모두 익명을 원한 건 실제 회장이 될 가능성이 낮다고 판단하기 때문일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1차 숏리스트 내부 후보자 중 차기 회장이 나온다면 이후 진행될 거버넌스 변경도 금융권의 관심사다. 1961년생 회장ㆍ1966년생 은행장ㆍ1965년 전후 출생 계열사 사장단이 구성되는 가운데, 현재 3인의 부회장 체제에도 변화가 불가피한 까닭이다.
현재 부회장들은 개인고객ㆍWM(양종희), 글로벌ㆍ보험(허인), 디지털ㆍIT(이동철) 등 그룹의 주요 핵심 영업부문을 나누어 관할하고 있다. 각 영역에서 그룹 차원의 의사결정 콘트롤타워 역할을 담당한다. 새 회장이 취임한 후에도 부회장직은 승계 후보군으로써 차기 CEO를 양성하는 기능을 맡을 전망이다.
김기환 KB손보 대표, 김성현 KB증권 대표 등 1963년생 계열사 CEO들의 역할이 관심이다. 이들은 선임 CEO군으로서 새 회장 취임 후 조직 안정화에 일정부분 기여를 할 수 있을 전망이다. 다만 신임 회장의 임기가 3년이고, 안정적 연임 등을 감안하면 후계자로서의 역할은 제한적이란 지적이다. KB금융은 2년 전 1960년생 전후 계열사 CEO군을 한 차례 물갈이하기도 했다.
1965년생 전후 계열사 CEO군에서 부회장 승진 인사가 나온다면, 그 빈 자리는 1966~1970년생 지주 부사장ㆍ은행 부행장 및 전무들의 몫이 된다. 전략통과 재무통이 인정받는 내부 분위기를 고려하면 서영호 지주 재무총괄(CFO, 1966년생), 김세민 지주 전략총괄(CSO, 1971년생), 김재관 은행 경영기획그룹장(CFO, 1968년생) 등이 언급된다.
일각에서는 현 계열사 CEO군의 경영 경험이 아직 길지 않음을 감안해, 지주 내 부문장을 겸임하다 일정 기간 연차가 쌓이면 부회장으로 올라가는 과도기적 구조를 점치기도 한다.
KB금융은 지난 2021년 대규모 인사 때에도 연공서열과 출신에 따른 탕평 인사를 중시하며 다소 보수적인 인사 전략을 내비친 바 있다. 이번 신임 회장 선임에서도 안정적 승계에 집중하며 일각에선 '그 나물에 그 밥'이라는 비판이 나오기도 한다.
윤종규 회장은 지난 6일 용퇴 의사를 밝히며 "아시아 대표 금융그룹으로 이끌 수 있는 분이 후임으로 선임되길 바란다"고 언급했는데, 실제 선정된 후보군 중엔 글로벌 경영 경험이 있는 인재가 없다는 지적도 있다. 오히려 현재 윤 회장 주도로 그룹 중기 경영전략도 수립하고 있는만큼, 새 회장 체제가 시작되더라도 큰 변화는 없을 거란 전망이 많다.
KB금융 회추위는 오는 29일 6명의 후보자를 대상으로 1차 면접(인터뷰)를 진행할 예정이다. 이날 3명의 2차 숏리스트를 추린 뒤, 내달 8일 2차 면접을 거쳐 최종 후보자 1명을 주주총회에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