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F 독점권 달라" 운용사 요청에…거래소는 '난감'
입력 2023.08.14 07:00
    2차전지ㆍ바이오 테마 ETF 열풍에…후발주자는 '베끼기'
    운용사들 2018년 제도 근거로 배타적 사용권 요구하지만
    이미 美서 출시된 데다 시장 파이 키워야 하는 거래소 '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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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국내 상장지수펀드(ETF) 시장이 올해 순자산총액 100조원을 돌파한 이래로 순항을 이어나가면서, ETF 상품을 개발하는 자산운용사 간 아귀다툼도 치열해지고 있다. 경쟁사의 ETF를 그대로 베껴 출시하는 것은 물론, ETF를 출시하자마자 '배타적 사용권'을 주장하며 일정 기간 동안 상품을 독점할 수 있는 권리를 요청하는 것도 비일비재한 상황이다.

      이를 두고 ETF 상장을 주관하는 한국거래소의 고민은 깊어지고 있다. 업계 선두주자인 삼성자산운용 및 미래에셋자산운용을 중심으로 지적재산권 보호를 요청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지만, 양사가 출시한 상품들이 현재 미국 시장에서 판매되고 있는 ETF와 큰 차별점이 없는 까닭이다. 

      개인 투자자 편익 제고 측면에서 다양한 운용사들의 참여가 필요하다는 것도 거래소의 고민이 깊어지는 지점이다. 

      최근 지수 사업자인 자산운용사들은 유사한 종목과 섹터를 추종하는 ETF를 연달아 출시하면서 시장 점유율을 둘러싸고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ETF 잔고가 100조원을 넘기면서 2차전지ㆍAIㆍ반도체 등 테마 ETF 열풍이 불었던 올해 상반기부턴, 운용사가 거래소 및 금융 당국에 직접 항의하는 상황도 벌어졌다.  

      지난해 4월 삼성자산운용이 한국무위험지표금리(KOFR)를 기초 지수로 한 ETF를 출시하자, 그해 11월 미래에셋자산운용이 KOFR금리액티브를 상장했다. 올해 초에도 NH아문디자산운용과 한화자산운용이 KOFR금리 ETF를 연이어 출시하면서 운용사간 수수료 인하 경쟁도 치열해졌다. 

      올해 상반기 증시 호황을 이끈 2차전지 테마의 경우, 신한자산운용이 가장 먼저 에코프로ㆍ포스코그룹주 위주의 ETF를 출시하자마자 삼성 및 미래에셋이 연이어 관련 ETF를 발표했다. 최근 2차전지 열풍이 잦아들고 바이오 수요가 증가하면서, 삼성ㆍ타임폴리오ㆍ신한 등을 중심으로 바이오 ETF 선점 경쟁도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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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후발주자가 유사 상품을 베끼는 사례가 빈번해지자, 운용사들 사이에선 지난 2018년 금융 당국이 약속했던 '배타적 사용권'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당시 금융위원회는 파생상품시장 발전 방안을 내놓으면서 신규 지수 등에 대한 아이디어 제공자에게 배타적 사용권 및 재산권을 부여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실제로 지난해 '월 배당' 테마의 미국배당다우존스ETF를 출시한 신한자산운용은 미래에셋이 기초 자산이 비슷한 'TIGER미국배당다우존스'를 내놓자마자 금융투자협회에 항의하기도 했다. 

      최근 한 금융지주 산하의 자산운용사도 소재ㆍ부품ㆍ장비(소부장) 테마 ETF에 대해 3개월 이상의 배타적 사용권을 요청했으나 거절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운용사 상품개발부문 관계자는 "미래의 TIGER, 삼성의 KODEX처럼 브랜드가 확실하고 시장 인지도가 높은 운용사들은 후발주자의 상품을 그대로 베껴 출시해도 상장일 거래량이 10~20배 이상 뛴다"며 "공정한 경쟁을 위해 ETF 상품의 지적재산권이 확실히 인정돼야 양극화를 막고 중소형 운용사들을 보호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다만 지수의 우선적 사용권 제도를 관할하고 있는 거래소는 난처한 상황이다. 시중에서 판매되고 있는 ETF의 차별성을 객관적으로 입증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거래소 고위 관계자는 "이미 글로벌 시장에는 여러 유형의 섹터 ETF가 존재하고 있다. 심지어 기업가치분석 ETF까지 널린 상황"이라며 "해외에 있는 상품을 벤치마킹해 국내에 먼저 출시했다고 해서 배타적 사용권을 부여하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다른 거래소 임원도 "국내 운용사들이 출시하는 ETF는 대부분 시장 지수를 그대로 복사한 인덱스형 ETF인데, 여기에 무슨 차별점이 있는 지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중소형 운용사가 독자적인 ETF 상품을 개발하면, 홀로 시장이 원하는 만큼의 유통량을 감당할 수 없다는 점도 골칫거리다. 거래소 입장에선 투자자 편익을 고려해야 한다는 당국의 원칙을 따를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

      앞선 거래소 관계자는 "국내 ETF 시장 규모는 한 운용사가 전체 공급량을 다 커버하지 못하는 수준"이라며 "상품의 아이디어가 좋으면 다른 운용사에도 공유해서 전체 투자자들의 편익을 제고하자는 쪽이 당국의 입장"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