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카드 실적ㆍ경쟁력은 점점 떨어지는데 급여 여전히 높아
현대해상 등 오너 경영인 금융사 보수 산정 기준 도마 위에
선진국선 '세이 온 페이' 규제 도입...주총서 감시할 수 있게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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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회사가 낸 이익의 규모와 성장 여부는 중요하지 않았다. 국내 금융회사 주요 경영인들의 올해 상반기 급여 수준은 회사의 업계 내 지위와 오히려 반비례하는 모양새였다. 결국 이사회 내 보수위원회를 좌우할 수 있는 '오너 경영인'인지 여부가 여전히 중요한 변수로 작용하고 있었다.
이사에 대한 보수, 특히 오너 경영인에 대한 보수 규제 논의는 2010년대 초반부터 이어져 왔지만, 아직 걸음마 단계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이사의 보수에 대한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도록 해, 주주총회 및 시장의 감시를 받도록 한 선진국의 관련 제도를 참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받고 있다.
현직 연봉킹 정태영 부회장, 현대카드는 7개사 중 5위
17일 금융권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국내 금융회사 현직 경영인 중 가장 많은 연봉을 받은 이는 정태영 현대카드 부회장이었다. 정 부회장은 올 상반기 현대카드에서 12억3100만원, 현대커머셜에서 12억원의 급여를 받아 총 24억여원을 수령했다.
퇴직 임원을 포함하면 48억원의 특별공로금을 받은 김정남 DB손해보험 부회장이 55억5600만원으로 가장 많았다. 역시 퇴직급여로 17억원을 받은 강성수 전 한화손해보험 대표(현 한화저축은행 대표)가 20억6900만원으로 뒤를 이었다.
이들은 회사 순이익 규모가 경쟁사보다 떨어졌음에도 여전히 최고 수준 연봉을 받아갔다. 주요 임원 급여 순위와 회사가 낸 순이익 규모 순위가 역의 상관관계가 있었던 셈.
정 부회장이 경영하는 현대카드의 올 상반기 당기순이익은 1572억원으로, 7대 주요 신용카드사 중 거의 꼴찌 수준인 5위에 그쳤다. 자회사 분리 매각으로 일회성 이익을 낸 롯데카드를 제외하더라도, 신한카드ㆍ삼성카드 등 상위권 카드사의 절반 수준에 그치는 실적이다.
보통 상반기 급여에는 지난해 성과에 대한 성과급이 포함된다. 현대카드는 지난해 2539억원의 순이익을 내며 2021년 대비 19% 역성장했다. 올 상반기 순이익 규모는 지난해 상반기와 엇비슷했다. 정 부회장은 성과급을 지난해 6억3500만원에서 올해 5억원으로 낮춰 받긴 했지만, 복리후생 규정에 따른 기타 근로소득 수령액이 1500만원에서 8600만원으로 크게 늘어나며 결과적으로 전체 급여는 크게 줄어들지 않았다.
지난해 연간 성과는 물론, 올해 상반기 실적으로도 현대카드를 앞선 KB카드의 이창권 대표는 상반기 총 급여가 5억원에 미치지 못해 아예 액수가 공시되지 않았다. 업계 1위 신한카드의 문동권 대표와 2위 삼성카드의 김대환 대표도 5억원대 급여를 수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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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사 대비 3분의 1 성장한 현대해상, 회장 급여는 매년 1억 인상
정태영 부회장을 제외하면 올 상반기 금융권 고액 연봉 경영인은 대부분 손해보험사에서 나왔다. 회계기준 변경으로 올해 대규모 순이익 상승세를 기록하고 있는데다, 주요 회사에 현직 오너 경영인이 포진하고 있는 점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정몽윤 현대해상 회장은 올 상반기 16억4400만원의 급여를 수령했다. 지난해 상반기 대비 6.3% 늘어난 규모다. 현대해상은 올 상반기 4825억원의 순이익을 내며 전년동기 대비 31% 성장했다. 지난해에도 2021년 대비 33% 순이익 규모가 늘었다.
표면적으로만 보면 오너 경영인의 연봉을 1억원 인상할만한 성과라고 판단할 수도 있다. 그러나 현대해상의 성과는 대부분 회계기준 변경에 따른 것이라는 지적이 더 많다. 그나마도 경쟁사에 비해 실적 호전의 폭이 크게 낮다. 7대 손해보험사 중 현대해상을 제외한 6개사의 올 상반기 순이익 성장폭은 평균 69%였다. 현대해상의 2배가 넘는다. 2022년 순이익 규모도 전년대비 평균 111% 성장했다. 현대해상의 3배 수준이다.
현대해상은 삼성화재ㆍDB손해보험과는 순이익 규모에서 두 배 이상 격차로 벌어졌고, 메리츠화재도 지난해부터 현대해상을 넘어섰다. 올 상반기에는 KB손해보험에 추월을 허용했다. 그럼에도 2020년 이후 정 회장의 상반기 총 급여는 매년 평균 1억원씩 올랐다.
국내 1위 금융그룹인 KB금융의 윤종규 회장은 취임 6년차인 2019년에 와서야 상반기 총 급여가 5억원을 넘어섰다. KB금융그룹의 반기 순이익은 2019년 1조8370억여원에서 4년 후인 올 상반기 3조원으로 63% 성장했지만, 윤 회장의 상반기 총 급여는 같은 기간 5억7800만원에서 6억4500만원으로 6700만원(11%) 오르는 데 그쳤다.
선진국선 이미 10년전 '세이 온 페이' 룰 도입...투명 공개ㆍ감시가 핵심
우리나라 경영자 보수 수준은 '대리인 비용' 차원에서 다소 과하다고 해석할 여지가 있다는 것이 등기임원 보수 공개가 명문화된 직후인 2014년의 연구 결과였다. 특히 오너 경영인의 경우 직원 평균 임금 대비 경영자 임금 비율, 감사 대비 이사 임금 비율 등 여러 척도에서 다소 과한 보수를 받고 있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앞서 2010년을 전후해 미국ㆍ영국ㆍ호주 등 선진국에서는 '세이 온 페이'(Say on pay) 룰(rule)을 도입하기 시작했다. 세이 온 페이 룰이란 이사 마다 지급된 보수를 주주총회에 개별 안건으로, 의무적으로 상정해 주주총회의 결의를 거치도록 하는 규제다. 다만 주총 결의에는 구속력을 부여하지 않고, 이사회가 이런 주주들의 의사를 추후 어떻게 보수 산정에 반영했는지 공시토록 했다.
국내에서도 최은영 전 한진해운 회장이 2013~2014년 사이 한진해운이 1조8000억원에 달하는 적자를 내는 와중에도 보수와 퇴직금으로 97억원가량을 챙겼다는 사실이 2015년 알려지며 과다보수 제한에 대한 논의가 이뤄지기 시작했다.
현재 국내 규제로는 5억원 이상 보수를 받는 임직원 상위 5명의 이름 및 보수산정 기준을 공시하도록 돼있다. 그러나 구체적 보수 산정 기준은 공시되지 않고 있고, 이를 공개토록 하는 법적 기반 역시 마련돼있지 않다. 이렇다보니 실적과 무관하게 보수가 지급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영국의 경우 기업 모범규약인 헴펠 리포트(Hampel report)에서 ▲이사의 보수산정 기준은 기업의 연차보고서에 공개될 수 있어야 한다 ▲지급된 개별 이사의 보수를 항목별로 분리해 보수산정기준이 어떻게 적용됐는지 명시해야 한다 ▲이사보수 산정의 기준을 주주총회에서 적어도 매 3년마다 1번은 결정해야 한다 등을 규정하고 있다.
단순히 이사 및 집행임원의 보수를 제약하는 게 아니라, 산정 기준을 외부에 공개하고 주주 및 시장으로 하여금 검증하도록 틀을 짜놓은 셈이다. 이런 규제가 국내에도 도입된다면, 회사가 역성장하는 상황에서 오너 경영인은 고액 보수에 배당까지 받아가는 상황을 일정 부분 견제할 수 있을 거란 분석이다.
한 증권사 리스크관리 담당 임원은 "아직 국내 규제 논의 수준은 '세이 온 페이'까지 가지도 못했고, 지난번 국회에서 임원 보수를 산술적으로 제한하는 규제안이 일부 논의돼다 곧 폐기됐다"며 "적어도 기업의 실적과 이사 및 집행임원의 보수가 어느정도의 상관관계를 갖게끔 하는 가이드라인은 필요하다고 판단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