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부터 美국채 금리 치솟자…하반기 채권 실적 기대감 '뚝'
하반기 거래대금이 실적 가른다…WM 연계 수익 추구 늘어
퇴직연금ㆍOCIO 등 '규모의 경제' 시장 진출 욕구 더 커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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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주요 증권사들이 채권운용 실적에 힘입어 올해 상반기 양호한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지난해 기록했던 채권평가손실이 대폭 줄어들면서, 세일즈 앤 트레이딩(Slaes & Trading) 부문 실적이 눈에 띄게 개선된 영향이다. 상반기 공시된 '연봉 상위자' 명단에도 S&T 부문 임직원들의 약진이 돋보였다.
다만 지난 6월 시작된 시중금리 재상승 여파로 하반기엔 S&T에서 상반기만큼의 수확을 기대하긴 어려워졌다는 평가다. 테마주 열풍 등으로 국내 증시 거래대금이 늘어난 데 따른 브로커리지(위탁매매) 수익 외엔 기댈 곳이 마땅찮다는 분석이 많다. 증권사들은 기업금융(IB) 및 자산관리(WM) 부문에서 수수료 수익을 늘리는 데 집중하는 한편, 퇴직연금이나 외부위탁운용관리(OCIO) 등지에서의 시장 개척에 기대하고 있다.
올해 상반기 미래에셋증권을 제외한 국내 초대형IB 4곳은 지난해 대비 당기순이익이 20% 이상 증가했다. 금리 하락으로 채권평가손실이 흑자전환하면서, 주식ㆍ채권 운용과 파생상품 투자를 담당하는 트레이딩(S&T) 부서가 평균 750억원 수준의 순이익을 기록한 영향이다.
실적이 가장 큰 폭으로 개선된 증권사는 NH투자증권으로, 연결 기준으로 지난해 대비 65.3% 증가한 3667억원의 순이익을 기록했다. 지난해 말 보유했던 채권이 약 5981억원의 손실을 기록했던 것과 달리, 올해 상반기엔 약 1451억원의 차익을 보인 덕분이다. 같은 기간 트레이딩 부문도 2004억원의 순이익을 기록, 작년 말 영업손실 2895억원에서 급증했다.
초대형IB 중 가장 높은 순이익 4311억원을 기록한 한국투자증권도 채권평가액이 작년 마이너스(-) 2857억원에서 올해 859억원으로, 트레이딩 부문 순이익이 마이너스 282억원에서 874억원으로 늘었다.
이밖에도 KB증권(129억원)과 삼성증권(247억원)이 채권 운용에서 흑자전환하며 순이익이 각각 35.6%, 40.1% 증가했다. 다만 지난해 금리 급등 과정에서 손실을 줄이기 위해 크레딧채권을 축소하고 보유 채권을 대거 매도하면서 경쟁사 대비 적은 채권평가익을 기록했다.
반면 미래에셋증권은 초대형IB 중 유일하게 이익이 전년대비 20%가량 줄었다. 마찬가지로 채권과 S&T 부문 실적이 급증했지만, 올해 상반기 ▲해외부동산 ▲CFD 관련 미수채권 ▲CJ CGV 전환사채 등이슈로 충당금을 1000억원 가량 쌓은 영향이 컸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초대형IB들의 호실적은 올해 2분기까지 시중금리가 지속적으로 떨어지면서 채권 매매평가익이나 IB 관련 수수료 수익이 증가한 효과가 재무재표상 나타난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올해 6월부터 시중금리가 다시 상승하면서, 하반기 채권평가이익 및 운용부문 실적이 부진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대형 증권사들의 호실적도 대체로 1분기의 시중금리 안정세에 근거한 상황이라, 6월 이후의 금리 변동은 올해 하반기 실적에 고스란히 반영되는 까닭이다.
실제로 미국 10년물 국채금리는 이달 17일 4.3%까지 치솟아, 지난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지난달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이 사실상 마지막일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었으나, 최근 추가 금리 인상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채권 시장이 경색된 것이다. 이에 증권가에서는 10년물 금리가 올해 4.15~4.65%선에서 움직일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그 영향으로 지난 1분기 3.3% 수준이었던 국고채 3년물 금리는 같은날 3.8%를 기록, 3개월 만에 50bp(bp=0.01%)가량 상승했다.
김성수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연준의 물가 안정 승리 선언은 쉽지 않아 보이고, 물가를 제외한 불확실성은 최근 다시 커지는 모습"이라며 "아직 반영되지 않은 8월 데이터까지 감안하면 금리의 추가 상승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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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권사들은 일단 다시 늘어난 거래대금에 기대를 거는 상황이다. 2021년 27조3000억원까지 증가했던 국내 증시 일평균 거래대금은 지난해 증시가 약세를 보이며 16조원 안팎까지 감소했다. 올 상반기엔 일평균 19조4000억원으로 다시 회복세를 보이다가, 지난 7월엔 일평균 26조7000억원까지 늘어났다. AIㆍ반도체ㆍ2차전지 등 테마주 열풍에 따른 영향으로 분석된다.
거래대금이 늘면 증권사의 이자 수익도 늘어난다. 주식담보대출이나 미수거래 등에 높은 금리를 매기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증권사 신용융자잔고는 지난 17일 20조5500억여원으로 연초 대비 4조원 이상 늘어나 올해 최고치를 기록했다.
증권사들은 이렇게 증권사로 유입된 자금을 WM부문으로 어떻게 연계할지 분부한 모습이다. 주가연계증권(ELS)이나 펀드, 랩 어카운트 등 금융상품을 판매ㆍ취급해 수수료 수익을 창출한다는 방침이다.
이 과정에서 특정금전신탁 형태로 운용하는 발행어음 조달도 늘리고 있다. 충당금 이슈 등 유동성 이슈가 발생했을 때 비교적 쉽게 현금을 확보할 수 있는데다, 조달 자금을 채권이나 우량 대체투자 자산에 투자해 마진을 남길 수 있는 까닭이다. 최근엔 특히 발행어음형 종합자산관리계좌(CMA) 판매에 열을 올리는 모양새다.
실제로 미래에셋증권ㆍNH투자증권ㆍ한국투자증권ㆍKB증권 등 4개 회사의 올해 상반기 발행어음 잔고 총계는 33조1485억원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말(30조3431억원) 대비 9.24% 증가한 것이다.
증권사 관계자는 "발행어음은 '일단 찍고 보자'는 분위기"라며 "뚜렷한 대체 투자처가 마땅치 않아 최근엔 채권 시황에 따라 국채 비중을 확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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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연금ㆍOCIO(외부위탁운용관리) 등 기존에 규모의 경제가 형성돼있는 시장에 대한 진출 의지도 더욱 뚜렷해지고 있다.
지난달 퇴직연금 디폴트옵션(사전지정운용제도) 도입 이후 수수료 면제 이벤트를 벌이는 등 고객 유치에 집중하고 있다. 미래에셋증권은 업계 최초로 개인연금 랩어카운트 상품을 내놨고, 신한투자증권 등 경쟁사들도 퇴직연금에 초점을 맞춘 자문형 랩 등을 판매하기 시작했다.
OCIO 경쟁도 치열해지고 있다. 미래에셋증권은 지난 6월 6조원 규모의 고용보험기금 운용사로 선정됐다. NH투자증권은 주택도시기금과 사회복지공동모금회 OCIO 주관을 따냈다. 지난달 말에는 운용사에서 도맡아 온 47조원 규모 '연기금 투자풀'이 증권업계에 문을 열 가능성이 대두하며 주요 증권사들이 날선 신경전을 벌이기도 했다.
부동산을 제외한 전통 IB 부문의 하반기 실적도 상반기보단 다소 나아질 전망이다. 은행 금리가 높아지며 기업들의 메자닌 발행 시도가 이어지고 있고, 기업공개(IPO) 시장 상황도 다소 호전됐다는 평가다. 현재 IPO 대기 중인 기업들 중 서울보증보험(예상 시가총액 3조원)과 두산로보틱스(1조5000억원), 에코프로머티리얼즈(2조원대) 등은 증권사에도 수십억원의 수수료 수익을 안겨줄 전망이다.
안영준 하나증권 연구원은 "증시 거래대금 및 수탁 수수료 증가세는 견조하게 이어질 것으로 판단하며, 당분간 증권사의 실적을 견인할 것"이라며 "또한 경기가 안정화되면서 2021년 이후 기업들이 미뤄왔던 자금조달을 실현할 가능성이 높고, 증시 반등으로 발행물에 대한 투심도 개선돼 하반기부터 ECM 시장이 회복세에 접어들 것"이라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