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은행 내부통제 부실에도 시중은행 전환 강행, 결국 '총선용' 선물?
입력 2023.08.30 07:00
    취재노트
    직원 불법 행위에 재무 건전성 지표 악화
    시중은행化 배경엔 정치적 판단 깔렸나
    총선 앞둔 정치권 입김에 결정될 가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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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금융권에서 가장 선진화된 내부통제 시스템을 구축하겠습니다. 고객을 중심으로 더 생각하고, 고객을 위해 더 쇄신하겠습니다."

      지난 25일 황병구 DGB대구은행장이 대대적인 '읍소'를 했다. 일부 직원들이 고객 몰래 문서를 위조해 불법 계좌를 개설한 혐의가 적발되자, 금융감독원이 긴급 검사를 실시하는 등 압박 수위를 높이면서다. 

      대구은행은 금감원이 검사에 착수하자마자 황급히 '내부통제혁신위원회'(가칭)를 신설하기로 했다. 위원회 산하에서 임직원 윤리강령 교육 등 내부통제 시스템 전반을 재검토하겠다는 방침이나, 구체적인 실행안은 밝히지 않아 '면피성 행정'이라는 시각이 적지 않다. 

      실제로 대구은행이 이번 사건 전후로 추진한 것은 시중은행 전환 인가 신청 작업뿐이다. 대구은행은 지난달 조직개편을 단행해 시중은행 전환TF를 구성했고, 컨설팅사와 협업해 시중은행으로서의 경영 전략과 사업계획 수립 절차를 밟고 있다. 금감원의 검사 이후에도 시중은행 전환과 관련된 일정은 변동 없이 추진하고 있는 상황이다. 

      임직원 300여명이 함께한 내부통제위 설립 행사는 사실상 시중은행 전환에 문제가 없도록 만반의 준비를 다하겠다는 의지를 공공연하게 드러낸 행사였다. 황 행장 읍소문의 청자(聽者)가 '고객'보단 '금융 당국'에 가까웠다는 평가를 받는 배경이다.

      그러나 이번 대구은행 사건으로 지방은행의 시중은행 전환에 의구심을 품는 목소리는 높아지고 있다. 

      문제가 된 대구은행 직원들은 고객이 증권계좌를 개설하기 위해 작성한 신청서를 복사, 다른 증권사 계좌를 개설하는 데 사용했다. 이들은 몰래 증권계좌를 개설한 게 알려지는 걸 막기 위해 계좌개설 안내문자(SMS)를 차단하는 치밀함까지 보였다. 결국 증권계좌 개설 실적을 높이기 위해, 불법임을 알면서도 행했다는 말이 된다. 실적에 대한 내부 압박 분위기가 느껴지는 대목이다. 

      내부통제 이슈를 제외하고도, 대구은행의 영업 능력에는 물음표가 남는다. 한국기업평가 보고서에 따르면 대구은행은 지난해 4분기 이후 제조업, 도・소매업, 숙박・음식점업 등 기업여신 전반에서 건전성 지표가 전년 대비 저하됐다. 

      지난해 하반기부턴 충당금 적립 규모도 늘렸지만, 올해 3월 말 기준으로 재무 건전성을 나타내는 '대손충당금/고정이하여신 비율'은 140.1%를 기록하며 지방은행 중에서도 낮은 수준을 기록했다. 실제로 한기평은 지역 경기와 연계한 순부실채권 발생 규모, 요주의 여신의 추가적인 건전성 저하 등을 고려해 '모니터링이 필요하다'는 판단을 내렸다. 

      재무 지표가 악화되는 상황에서 내부통제 시스템마저 작동하지 않았던 셈이다. 준비가 되지도 않았는데 시중은행 전환을 서둘렀다는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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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당초 대구은행 입장에서 시중은행 전환은 당장은 큰 이득이 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시중은행으로 전환 시 영업가능 지역이 확대된다곤 하지만, 최근 비대면 금융이 활성화한 점을 고려하면 지점 확대를 시중은행 전환의 실질적인 효과로 보기 어렵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일각에선 시중은행으로 전환될 경우 낮은 조달금리를 형성할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유의미한 수준의 실적이 뒷받침되지 않는 한 먼 얘기에 불과하다. 통상 은행의 금리는 신용등급이나 자산규모를 고려해 책정되는 까닭이다. 게다가 올해 5월 말 기준으로 경남・대구・부산은행 등 지방은행 3곳의 주택담보대출 평균금리(4.6%)는 시중은행(4.77%)보다 오히려 낮았다. 

      실제로 지난달 당국에게 시중은행 전환 의사를 내비친 지방은행은 대구은행뿐이었다. 모 지방은행은 당국과의 교감 단계에서 직접 거절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만큼 혜택은 없고 책임은 늘어나는 부담스러운 자리였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그렇다면 대구은행은 왜 시중은행 전환에 박차를 가했을까. 금융권에서는 대구은행 조급증의 배경으로 '총선'을 꼽고 있다. 총선이 다가오자 보수 텃밭인 지역민들을 위한 선물이 필요했던 정부ㆍ여당, 청와대가 힘을 실었던 제도개선TF(은행권 경영・영업 관행・제도 개선TF)의 성과물이 필요했던 당국. 시기적으로 이들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진 결과물이라는 평가다. 

      경남권과 경북권의 중진 국회의원 두 명이 시중은행 전환 대상자를 두고 서로 파워게임을 벌인 것, 또 DGB금융지주 관계자가 대구은행의 시중은행 전환 사유를 두고 "지역민의 자부심"을 운운했던 것은 이미 국회에서 널리 알려진 얘기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내부통제 이슈가 터지면서, 당국과 대구은행의 선택이 자충수가 됐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당국의 '포용력'이 어디까지일지 궁금하단 말도 나온다. 

      황 행장은 "고객 중심"을 외친 임직원 행사에서 "내부통제를 실시함에 있어 바른 길이 가장 빠른 길"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시중은행 전환을 두고 당국과는 '예비인가 생략' 등 절차 간소화 방안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황 행장이 생각하는 '정도'(正道)와 '고객'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