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발주자들에게 자산규모ㆍ실적 뒤쳐지고
든든한 금융지주 뒷배도 없어 증자 '부담'
"안일한 진출 방식…경영진 실적에 쫓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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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 증권 사업에 뛰어든 키움증권이 현지에서 고전하고 있다는 평가다. 무(無)이자ㆍ수수료 면제 등 국내 온라인 증권사 성공 모델을 그대로 적용했지만, 현지 분위기와의 괴리가 커 올해 상반기까지 적자를 거듭하는 상황으로 분석된다.
키움증권은 리테일(소매금융)에 기댄 브로커리지(위탁매매) 사업에 집중하고 있어 글로벌 거시경제 영향을 크게 받고 있다는 지적이다. 게다가 다른 대형사들처럼 모회사인 금융지주와 대기업 지주사의 지원을 받을 수 없어, 해외법인의 누적 적자가 회사 전체의 실적 저하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이 나온다.
일찌감치 진출한 인도네시아 시장에서 10년 넘게 가시적인 성과를 도출하지 못하면서, 금융권에선 황현순 키움증권 사장이 추진 중인 '인도네시아-베트남-태국' 동남아 3자 사업 구상에도 지장이 갈 것이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30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키움증권은 인도네시아 법인(PT Kiwoom sekuritas Indonesia)서 올해 상반기 기준으로 5억원 가량의 적자를 기록했다. 지난해 말 10여억원의 적자를 기록한 이후 손실 폭은 줄였지만, 2년여간 손실 기조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인도네시아 시장에 진출한 국내 증권사들은 키움증권을 비롯해 ▲미래에셋증권 ▲NH투자증권 ▲KB증권 ▲신한투자증권 ▲한국투자증권 ▲한화투자증권 등 총 7곳이다. 이중에서도 키움증권은 지난 2011년 대형 증권사들 중 NH의 뒤를 이어 두 번째로 인도네시아 시장에 진출했지만, 뒤늦게 진출한 미래에셋증권보다 자산총액 및 당기순이익 규모에서 크게 뒤쳐졌다.
인도네시아 주식시장은 뚜렷한 1위가 없는 신흥 시장에 속한다. 미래에셋증권이 약 8%의점유율로도 2020년, 2021년 말 인도네시아 증권시장에서 연간거래대금 1위를 기록했을 정도다.
인도네시아는 약 2억7000만명의 인구 수에 국채금리는 10년물 기준으로 7%대를 유지하고 있고, 주택담보대출 평균 금리가 15~18% 수준이다. 이로 인해 금융사 입장에선 '기회의 땅'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증권사 관계자는 "인도네시아 증시 시가총액은 아직 대한민국의 40% 정도다. 미국의 대형사마저 자리잡지 못한 이머징 마켓"이라며 "투자자 저변이 확대될 일만 남은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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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시장 진출에 앞장선 키움증권은 10년 뚜렷한 실적 상승세를 나타내지 못하고 있다. 흑자 전환 시기에도 순이익 두 자릿 수를 넘겨 본 적이 없을 정도다. 반면 유상증자는 지난 2016년부터 취득 비용(180억원)이 넘는 규모로 집행해오고 있다. 부채는 지난해 말 기준으로 133억2000만원에 달한다.
NH투자증권(당기순손실 67억원)과 신한투자증권(27억원), 한국투자증권(60억원) 등도 지난해 적자 성적표를 받았지만, 이들은 금융지주로부터 지속적인 유상증자가 집행될 계획이다. 지주 차원에서 투자를 단행하고 있어 부담도 적다. 올해 인도네시아 칩타다나 증권 인수를 발표한 한화투자증권도 모회사인 한화생명 및 한화그룹 차원에서의 지원을 받고 있다.
키움이 뚜렷한 대책 없이 인도네시아 시장에서 고전하고 있는 상황을 두고, 증권업계에선 사업 전략 자체를 문제 삼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온라인 증권사라는 정체성을 통해 낮은 거래 수수료율을 제공, 매매 거래를 독려하는 영업 방식이 해외 시장에선 통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키움증권 인도네시아 법인의 온라인(영웅문4,영웅문G) 수수료율은 약 0.3%로, 최저수수료는 40만 루피아다. 이는 미래에셋증권의 0.45% 및 45만 루피아보다 적은 수준이다.
다만 인도네시아의 투자인구(주식ㆍ펀드ㆍ채권 등 합계)는 지난해 말 기준으로 약 1106만명으로, 인구 대비 4.1%에 불과하다. 사치와 향락 등을 자제하고 율법에 어긋나는 업종 투자를 금지시키는 이슬람 문화권의 영향으로 주식 투자가 활성화되지 못한 까닭이다.
또한 인도네시아에선 최초의 증권 계좌 개설 시 반드시 지점에 방문해야 한다. 이에 미래에셋과 KB, NH 등 대형사들은 현지 회사를 인수해 다수의 지점망을 바탕으로 브로커리지 사업을 확장해 왔다. 일례로 미래에셋은 현지 최초로 홈트레이딩시스템(HTS)과 모바일트레이딩시스템(MTS)를 도입하면서도 오프라인 지점을 30곳 이상으로 늘렸다.
반면 키움증권은 지점 3곳으로 출발하다, 그마저도 2016년 보유 지점 중 1곳을 정리했다. 본사 1곳과 영업부문 지점 1곳이 전부다. 운영비용이 많이 드는 지점 대신 프랜차이즈 지점 형식의 갤러리 운영을 확대하기 위해서라는 것이 당시 회사 측의 설명이다.
인도네시아 법인은 키움증권이 동남아 진출의 거점으로 삼은 지역이다. 특히 황현순 사장이 나서 인도네시아 점유율 확대로 글로벌 IB 연계영업을 꾀하고, 베트남 및 태국 증권사 지분 인수를 통해 해외 시장 진출을 구상해 왔다. 앞서 황 사장은 올해 3월 주총에서도 연간 목표로 해외법인 확대를 꼽았다.
그러나 첫 단추인 인도네시아 법인이 적자를 거듭하고 상승세를 보이지 못하자, 회사 내부에서도 황 사장의 책임론이 부상하며 그의 입지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는 형국이다.
증권사 해외법인 관계자는 "인도네시아는 일 주식 거래량이 적고 제약이 많은 터프한 시장이다. 한국의 선진 디지털 시스템을 그대로 복사해 진출하자는 것은 안일한 생각"이라며 "일단 10년은 자리잡는 기간으로 봐야 하지만, 그 이후부턴 (경영진도) 실적에 쫓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