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企ㆍ소상공인 지원 규모 100兆→76兆...분할상환 2028년까지
비구이위안 채권 만기 연장하며 진화...유동화증권 시장은 우려
"작은 리스크에도 과민반응...부채상환능력 저하는 우려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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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에 '금융 쇼크'가 터지며 국내 경기가 본격적인 침체 국면에 들어갈거란 '9월 위기설'이 힘을 잃고 있다. 위기설의 배경으로 지목된 굵직한 이슈들이 실제로 발화할 가능성이 점차 낮아지면서다. 불씨가 살아있긴 하지만, 아직까지는 관리가 가능하다는 평가가 더 우세하다.
문제는 돌발적인 악재나 비현실적인 리스크에도 깜짝깜짝 놀라는 시장의 투자 심리라는 분석이다. 역사상 가장 가팔랐던 미국과 한국의 기준금리 인상 이후 고금리의 여파가 서서히 다가오고 있는 상황에서, 언제 어떻게 충격이 올지 아무도 확신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국내 경제 지표들은 아직 '쉽지 않다'는 신호만 보내고 있다.
'9월 위기설'은 금융시장 일각에서 7월을 전후해 서서히 퍼지기 시작했다. 9월말 코로나19로 인한 중소기업 및 소상공인 대출 만기연장과 상환유예 조치가 끝나면 부실 대출이 많은 제2금융권부터 부실율이 급등하며 금융시장 전반에 위기가 확산될 거란 논리였다.
여기에 부동산프로젝트파이낸스(PF) 부실 우려도 더해졌다. 주요 대형 증권사가 보유한 부동산 관련 브릿지론(본PF 전 부동산 개발 초기 투자를 위한 대출)의 만기 상당부분이 9월에 집중돼있다는 것이었다. PF 관련 대출의 만기연장이나 차환발행이 쉽지 않은 상황에서, 브릿지론이 대거 부실화하며 충격을 줄 거란 전망이었다.
8월 들어 '9월 위기설'이 힘을 받는 사태가 벌어졌다. 금융당국이 8월말 발표한 국내은행 원화대출 연체율 통계(6월말 기준)가 '분식'이라는 논란이 일어난 것이다. 금융당국은 원화대출 전체 연체율이 5월말 대비 0.05%포인트 하락했다고 발표했는데, 이는 은행들이 부실채권을 대거 상각하거나 매각에 없애버렸기 때문이었다.
6월 신규 연체 발생 규모는 2조원으로 5월(2조1000억원) 대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만 은행들이 3조1000억원 규모의 부실채권을 상각 또는 매각으로 재무제표에서 지워버리며 부실율이 떨어졌다. 이를 두고 '금감원이 부실율을 관리하라고 압박한 탓'이라는 해석이 나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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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최대 민간 부동산개발사 비구이위안(컨트리가든)의 채무불이행 이슈도 투심에 영향을 줬다는 지적이다. 비구이위안은 지난달 6일 2250만달러(약 300억원)의 달러채권 이자를 지급하지 못하고, 30일의 지급 유예를 신청했다. 달러채도 달러채인데, 9월초 만기 예정인 39억위안(약 7000억원) 규모의 위안화채권에 대한 상환 가능성도 문제가 됐다.
비구이위안이 최종 부도 처리되면 자금이 빠져나오며 달러위안화 환율이 급등하고, 이것이 원달러환율 및 국내 부동산금융 시장에 대한 악영향으로 퍼질 거란 우려가 '9월 위기설'에도 힘을 보탰다는 평가다.
9월의 절반이 지난 지금, 이 같은 우려들은 상당부분 희석돼가고 있는 상황이다.
9월 위기설의 진원지와도 같았던 소상공인 금융지원 종료는 큰 의미가 없어진 상황이다. 금융당국에 따르면 중소기업 및 소상공인에 대한 금융지원 규모는 지난해 9월말 100조원에서 지난 6월말 기준 76조원으로 크게 줄어든 상황이다. 특히 '이자를 내는 것조차 어려운 취약 차주'를 위한 이자상환 유예 규모는 2조1000억원에서 1조1000억원으로 줄어들었다.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지원 제도 자체는 9월말 종료되지만, 상환계획서상 상환 유예는 2028년 9월까지 5년간 분할로 이뤄진다. 실질적인 채무상환 지원이 2028년까지 진행되는 것이다. 9월 위기설이 확산되자, 금융위는 그럼에도 채무 상황이 어려운 차주에겐 새출발기금이나 각 금융사별 채무 연착륙 프로그램을 통해 지원하겠다는 대안을 내놨다.
한 은행 관계자는 "은행마다 규모는 다르지만 금융지원 종료로 인해 소상공인 대출에서 손실이 발생하더라도 현재 쌓아둔 대손충당금 내에서 대응이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면서도 "상환을 미루기 위해 사실상 가게 문을 닫은 상태임에도 폐업신고를 안하는 사례 등이 있어 현장 점검 등을 통해 대비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비구이위안 사태도 일단 한숨 돌렸다는 평가다. 비구이위안은 지난 2일 만기가 도래하는 위안화채권 39억위안의 상환 기한을 2026년으로 3년 연장했다. 5일에는 30일의 이자 지급 유예 만료를 앞두고 달러채권에 대한 이자 2250만달러를 정상 지급했다. 지난 12일에는 위안화채권 108억위안(약 2조원)에 대한 만기를 일괄 3년 연장하는 방안에 대해 채권단과 합의했다.
아직 총 부채 규모가 약 1087억위안(약 20조원)에 달하는데다 오는 27일 각각 1500만달러(약 200억원)ㆍ4000만달러(약 530억원) 규모 달러채권 만기가 돌아오는 등 아직 위기가 끝나지는 않았다는 평가다. 다만 중국 정부가 부동산 연착륙을 위해 규제 완화 및 경기 부양 의지를 보이며 '시스템 위기' 차단에 나선만큼, 당분간은 큰 문제가 없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남은 건 국내 부동산금융 시장의 안정화라는 분석이다. 브릿지론 연쇄 부실이 일어나지 않으려면 PF유동화증권의 차환발행이 시장에서 안정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신용도가 높은 A1 등급 유동화증권은 연 4~5%대에서 안정적으로 발행이 되고 있지만, 이보다 조금 떨어지는 A2등급은 비구이위안 사태 이후 다소 고전하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 8월 평균 6.9%안팎으로 발행이 가능했던 A2등급 PF유동화증권의 발행금리는 9월 첫째주 평균 11.8%로 급등했다. A3등급은 다시 발행 자체가 쉽지 않은 상황이라는 평가다. 주간 거래량도 뚝 떨어졌다. 시장 상황이 급변하며 조만간 정부가 규제 완화가 골자인 부동산대책을 발표할 것이라는 소문도 금융권에 파다하게 퍼지고 있다.
국내 경제 체력에 대한 우려도 만만찮다. 국내 8월 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PMI)는 48.9로 7월 49.4대비 하락세였다. PMI지수가 50 미만이면 축소 국면으로 해석되는데, 지난해 7월 이후 14개월 연속 50 미만에서 머물고 있다. 관세청에 따르면 9월 1~10일 수출액 잠정치는 148억6000만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7.9% 줄었다. 수출 감소 역시 11개월째 지속되고 있다.
한 증권사 전략담당 연구원은 "익숙지 않은 고금리 상황에서 수출 등 경기 지표도 우호적이지 않으니 작은 리스크에도 시장이 과민반응하거나, 실체 없는 위기설 등이 떠도는 것"이라면서도 "가계 및 기업이 지고 있는 빚의 규모가 이전 대비 커진 상황에서 경기 회복이 지연되며 부채상환능력이 떨어지고 있다는 점은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리스크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