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임 양종희 회장 체제 출범 맞춰 한달 여 앞서 거취 정리
'승계 시스템' 수명 다했고 의사결정 효율성만 떨어뜨려
-
KB금융지주의 부회장직이 없어질 전망이다. 현 부회장 체제는 최고경영자(CEO) 승계를 위한 시스템 역할이었기 때문에, 차기 회장이 결정된 지금 효용성이 사라진 까닭이다. 양종희 차기 회장 후보자를 제외한 다른 부회장들은 윤종규 회장과 임기를 같이할 것으로 예상된다.
18일 금융권에 따르면 허인 KB금융지주 부회장은 오는 11월말 윤종규 회장 임기 만료와 맞춰 부회장직에서 물러날 것으로 전해졌다. 허 부회장의 당초 임기는 올해 말까지다. 역시 연말까지가 임기인 이동철 부회장 역시 비슷한 절차를 밟을 것으로 예상된다.
새 CEO인 양종희 회장 체제 출범에 맞춰 한 달 여 먼저 거취를 정리하려는 움직임으로 파악된다. 양 회장은 취임 직후 CEO로서 계열사대표이사후보추천위원회(대추위)의 위원장을 맡아 조직 쇄신을 위한 계열사 CEO 인사를 진행할 전망이다. 조직에 새 회장의 청사진을 입히는 과정에 회장직 승계를 위한 옛 시스템인 부회장직은 존재 의미가 없다는 평가다.
양 신임 회장이 새 부회장을 선임할 가능성도 낮다는 분석이다. 새 회장 체제가 막 출범한 상황에서 벌써부터 차기 승계를 위한 2인자 자리를 만들어 둘 필요성이 없기 때문이다. 부회장직은 옥상옥(屋上屋) 의사결정 구조로 조직의 효율성만 떨어뜨릴 거란 지적이 많다.
KB금융은 2014년 이른바 'KB사태' 이후 2인자를 두는 시스템을 경계해오기도 했다. 당시 지주 회장과 은행장이 은행 주전산기 교체 과정에서 갈등을 빚다 동반 사퇴한 까닭이다.
이후 취임한 윤종규 회장은 갈등의 소지를 원천 봉쇄하기 위해 최초 임기 3년간 회장ㆍ행장을 겸임했다. 지주에 따로 사장을 두는 방안도 검토하다 철회했다. 부회장직을 처음 마련한 건 윤 회장이 3연임에 성공해 지배구조가 완전히 안정화되고, 차기 회장 승계 절차가 중요해진 2021년 이후였다.
차기 CEO 육성은 현재 지주 내 통합경영시스템인 부문장ㆍ총괄 체제를 통해서도 가능하다는 지적이다. 연말 인사를 통해 계열사 CEO군을 한 차례 혁신한 뒤 주력 사업에 맞춰 CEO들에게 지주 부문장을 안배하는 것이 효율적일 거란 평가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1961년생 회장, 1966년생 은행장, 1965년생 전후 계열사 사장으로 지배구조가 재편된 상황에서 부회장에 올릴만한 인사도 마땅찮은 상황"이라며 "새 부회장 임명은 적어도 양 회장이 첫 3년 임기를 보낸 이후에나 있을 일"이라고 말했다.
부회장들이 윤종규 회장의 임기 만료에 맞춰 자리를 정리하는 것은 어느정도 예견된 일이었다는 평도 나온다. 연초 회장이 바뀐 신한금융의 사례가 회자된다. 지난해 말 진옥동 현 신한금융 회장과 경쟁한 임영진 전 신한카드 사장은 임기 만료 후 다른 보직을 맡지 않고 물러났다.
양종희 후보의 회장 취임과 함께 KB금융의 지배구조는 격변을 겪을 전망이다. 부회장직이 사라질 가능성이 큰데다, 지주 제외 11개 계열사 중 9개 계열사의 CEO 임기가 올해 말 끝난다. 양 후보가 어떤 인물을 선임하고 양성해 그룹을 어떤 방향으로 이끌어나갈지 연말 인사를 통해 첫 색깔이 드러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