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 위해 아시아나 화물사업 매각할 가능성
수년간 사정 바뀌었고, 아시아나 이익도 모호해져
회사 이익되지 않을 결정…이사회 판단 귀추 주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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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적 항공사 통합의 명분이 많이 희석됐다는 평가에도 대한항공은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위해 총력전을 펴고 있다. 어떠한 출혈도 감수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바 있는데 아시아나항공의 화물사업 매각도 그 중 하나로 거론되고 있다. 아시아나항공은 이미 오랜 기간 기업결합이 표류하며 사업에 애를 먹었는데 합병의 대가로 또 자사의 먹거리를 내줘야 할 가능성이 있다. 사업 매각을 위해선 아시아나항공 이사회의 결단이 필요한데, 명분과 실익이 모호한 안건을 두고 이사회의 고민이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관련업계에 따르면 대한항공은 10월 초로 예정된 유럽연합 집행위원회(EC)의 결합심사 종료 시한에 앞서 가까운 시일 내 합병시정서를 제출할 방침이다. 시정서에는 아시아나항공 화물사업부 전체 매각과 일부 대한항공 노선을 유럽 측에 넘기는 여객 슬롯(시간당 이착륙 허용 횟수) 조정안이 담기는 것으로 알려진다.
대한항공의 ‘화물 매각’ 카드는 앞서 EC측이 제기한 글로벌 시장점유율 확대 등 경쟁 제한 우려를 해소하기 위한 조치다. EC는 올해 5월 대한항공에 전달한 중간 심사보고서(SO)를 통해 기업결합 승인 조건으로 일부 EU 노선에서 여객 운송 서비스 경쟁 제한 우려가 있다고 밝혔다. 아울러 6월 말 화물 운송 부문 경쟁 제한을 우려해 화물 운송 부문 정리도 추가로 요구했다.
당초 EC는 8월까지 합병 승인 여부를 최종 결정할 예정이었지만, 대한항공이 시간 연장을 요청했고 10월까지 합병시정서를 제출하라고 했다. 업계에서는 사실상 대한항공이 이번 시정안에 EC가 요구한 대부분의 사안들을 수용할 것으로 보고 있다.
대한항공 측은 “EU 경쟁당국과 현재 경쟁제한성 완화를 위한 시정조치안을 면밀히 협의하고 있으며 늦어도 10월 말까지는 시정조치안을 확정해 제출할 계획”이라며 “협의 중인 시정조치안의 세부 내용은 경쟁당국의 지침상 밝히기가 어렵다”고 밝혔다.
해외 합병 심사가 통과된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대한항공 측이 EC와 시정안 조정에 나서면 최종안이 아시아나항공 이사회의 안건으로 올라가게 된다. 결국 화물이든 여객이든 아시아나항공의 사업부를 팔려면 아시아나항공 이사회의 승인이 필요하다. 당장 매각하는 것은 아니라도 최종 거래 종결을 위한 전제 조건이기 때문에 사전에 승인을 받아둬야 한다. 아시아나항공은 화물운송 부문을 회계·사업적으로 분리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문제는 이런 결정이 과연 아시아나항공의 이익에 부합하느냐다.
대한항공이야 아시아나항공 화물 사업을 정리해서라도 합병만 마무리하면 최대 경쟁자를 줄이는 효과를 얻게 된다. 반면 아시아나항공과 이사회 입장에선 '남의 회사'의 이익을 위해 '내 먹거리'를 포기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 경영 부실에 코로나 팬데믹까지 이어지며 아시아나항공의 생존 가능성이 불투명하던 때야 '누가 됐든 인수만 해달라'는 분위기였지만 이제는 사정이 달라졌다. 항공 업황이 되살아 났고, 대한항공 수준의 지원을 해줄 만한 잠재 인수자도 몇몇 거론되는 분위기다. 합병도 사업 매각도 아시아나항공에 득이 된다 보기 어렵다.
아시아나항공 이사회도 회사의 이익을 우선적으로 검토하지 않을 수 없다. 화물사업을 팔고 기업결합도 승인되면 아시아나항공의 입지는 갈수록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죽지는 않아도 소멸에 가까운 상황에 놓이게 될 가능성이 크다.
특히 아시아나항공의 화물 분야는 코로나 이후 회사 수익의 70% 이상을 책임져 온 알짜 사업부로, 이를 넘기면 사실상 LCC와 다를 바 없어진다. 이사회가 회사에 득이 되지 않을 안건을 결정한다면 ‘배임(임무에 위배하는 행위)’ 여지가 있지 않냐는 시각도 있다.
EC는 아시아나항공의 화물 사업 매각이 실효를 거둘지 의구심을 가져온 것으로 알려졌다. 대한항공은 티웨이항공, 제주항공 등 복수의 인수후보들에 화물사업을 넘기는 안을 고민 중인데 이들의 사업·재무적 역량엔 의문 부호가 붙어 있다. 이 기업이 망가지기라도 하면 아시아나항공이 내놓은 화물사업은 결국 고스란히 대한항공 몫으로 돌아갈 가능성이 크다. 화물사업만으로 해결이 되지 않을 경우 아시아나항공이 더 많은 것들을 내놓아야 할 가능성이 있다. 이래저래 이사회의 고민이 깊어질 상황이다.
현재 아시아나항공 이사회는 총 6인으로 구성돼 있다. 원유석 아시아나항공 대표이사, 진광호 아시아나항공 안전보안실장(전무)이 사내이사로 자리하고 있다. 박해식 한국금융연구원 은행연구실 선임연구원, 배진철 한국공정거래조정위원장, 윤창번 김앤장 법률사무소 고문, 강혜련 이화여자대학교 경영대학 명예교수가 사외이사를 맡고 있다.
이사회 안건이 통과되려면 과반인 4명 이상의 찬성, 반대의 경우엔 3명 이상의 반대표가 있어야 한다. 사내이사는 사실상 산업은행과 대한항공의 영향력 아래에 있어 반대표를 던지기는 쉽지 않을 것이란 평가다. 찬성 과반을 막으려면 사외이사 중에서 3명은 반대표를 던져야 하는 상황인데, 사업 매각에 부정적인 시각을 가진 인사들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업계 관계자는 "대한항공의 이익을 위해 아시아나항공이 희생하는 모습인데 여기에 제동을 걸기 위해선 아시아나항공 이사회가 움직여야 한다"며 "사내이사는 다른 뜻을 보이기 어렵지만 사외이사들은 반대의 목소리를 낼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