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유럽 급성장…韓도 사모대출 시장 성장 예상
기관 사모대출 투자 아직 미미…주로 해외 출자만
수익성·안정성 긍정적이나 성장성에는 엇갈린 뷰
기업 부도율 증가 부담…해외선 벌써 '경고등'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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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세계적으로 은행들이 기업 대출을 줄이면서 사모대출이 기업의 새로운 자금 조달 창구로 떠오르고 있다. 미국과 유럽에서 사모대출펀드(PDF) 시장이 급성장한 가운데, 최근에는 글로벌 운용사들이 한국 시장을 ‘다음 타겟’으로 점찍고 나섰다.
국민연금을 포함한 국내 기관투자자(LP)들은 신중하다. 고수익 사모대출 투자에 관심을 두고는 있지만 주력 투자 시장으로 성장할 것이냐에 대해선 시각이 엇갈리고 있다. 위험 대응 능력을 갖춘 운용사를 선별하는 것이 투자의 성패를 가를 것이란 지적이다.
최근 글로벌 운용사들은 한국의 ‘사모대출’ 시장 공략에 속도를 내고 있다. 최근 미국계 사모대출 전문회사 뮤지니치앤코가 국내 연기금, 공제회 등 주요 기관과 미팅을 갖고 사모대출펀드 구축을 위한 자금 유치를 시작했다고 알려진다. 이 회사의 운용자산 규모는 374억 달러(약 50조원)에 이른다. 조지 뮤지니치 뮤지니치앤코 회장이 직접 펀드 자금 유치에 나서는 등 적극적이다.
앞서 타 대형 글로벌 투자사들도 한국을 주목해 왔다. 아폴로글로벌매니지먼트는 대체투자 운용사 EMP벨스타와 조인트벤처(JV)를 설립해 국내 PDF에 진출했다. 유럽계 운용사 퍼미라크레딧도 한국 시장에서의 기회를 엿보는 분위기다. 퍼미라크레딧은 사모대출과 대출채권담보부증권(CLO) 관리 및 구조화 크레딧에 집중하고 있다.
이들은 앞으로 한국에서 사모대출을 찾는 기업들이 크게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사모대출은 연기금 등 기관(LP) 자금을 모아 운용사(GP)가 기업에 자금을 제공하는 방식이다. 운용사가 경영권 인수 등 사모 주식(Private equity)투자를 하는 것이 아니라 은행과 유사한 역할을 한다. 부동산 등 담보 대출, M&A 인수금융, 저신용 기업들에 대한 다이렉트 렌딩(direct lending)을 제공한다. PDF는 이러한 기업대출을 포함해 회사채 투자 등으로 수익을 내는 펀드다.
코로나 팬데믹,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발 에너지 위기, 미국 지방은행 위기 등으로 지난 몇 년간 사모대출 시장은 더욱 커졌다. PDF가 자리잡은 유럽과 미국에선 최근 대규모 펀드들이 조성됐다.
해외 운용사들이 홍보(?)에 나서며 진출을 타진하는 가운데 국내 운용사들도 대비에 나서고 있다. 국내에선 1·2금융권의 영향력이 막대하다 보니 사모대출 시장 자체가 성숙하지 않았고 PDF 규모도 아직 크지 않다. 국내에선 IMM크레딧앤솔루션, 글렌우드크레딧이 펀드레이징에 나서고 있다. 앞서 VIG얼티너티브크레딧, 큐리어스파트너스 등은 PCF(사모크레딧펀드)를 조성한 바 있다.
한 대형 사모펀드 운용사 관계자는 “PDF가 국내에서 활성화되지 않은 건 기업 수요가 적은 것이 아니라 관련 인력이나 조직 확보에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이라며 “은행보다 금리는 높지만 PDF, PCF를 이용하면 전통 금융기관보다 빨리 자금을 조달할 수 있기 때문에 기업들의 수요도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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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주요 기관투자가들은 사모대출에 대해 신중한 시각을 유지하고 있다. 고금리 하에서 높은 수익률을 올릴 수 있다는 점, 주로 선순위 대출로 부실화 가능성이 크지 않다는 점은 긍정적으로 본다. 그럼에도 경기 불안 상황에서 기업 부실 위험은 예의주시해야 하고, 운용사 선정에도 신중함을 기해야 한다는 것이다.
국내 기업들이 ‘은행에서 거절당해’ 사모대출을 찾았다는 평판 위험을 감수하고 이 시장을 찾을 것인지도 점치기 어렵다. 이런 배경 탓인지 국내 기관들은 해외 운용사의 PDF에 출자를 하고는 있지만 국내 운용사를 통한 PDF 투자는 아직 걸음마 단계다.
국민연금 관계자는 “사모대출은 디폴트(채무불이행) 비율이 어느 정도인지, 디폴트의 절대 손실이 얼마나 되는지, 회수가 얼마나 가능한 지를 고려해서 투자하고 있다”며 “현재 선순위 금리가 많이 올라와서 수익률이 10% 넘게 나오고 있는데 해당 세 변수를 고려해 최종 수익률이 결정될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경기가 하강 중이라 향후 기업들의 디폴트 비율이 올라갈 것으로 예상되지만 사모대출은 선순위 대출이 대부분이니 디폴트여도 회수가 가능하다”며 "수익률 측면에서는 결국 펀드 포트폴리오를 어떻게 짤 것인가가 중요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A공제회 관계자는 “국내서도 사모크레딧펀드(PCF) 등 관련 시장이 커지고 있는 것은 알지만 아직 국내 운용사에 투자하거나 투자 검토를 하고 있는 사례는 없다”며 “해외 GP들에 투자하는 정도인데 PDF에 투자하면 일부 부실이 생겨도 위험 분산 효과가 크고, 현재 수익률도 10~15%에 달하는 등 고금리 상황에서 변동금리 혜택이 매력적이다”라고 말했다.
주식 시장은 등락이 있으니 비중 조정이 한정적이고, 부동산은 상황이 어렵다. 채권은 안전하지만 금리가 높지 않다. 현재의 고금리 상황에서는 리스크 분산만 잘 되면 수익률이 주식과 비슷하면서도 안전성은 채권과 가까운 사모대출에 주목할 수밖에 없다는 평가다. 다만 국내에는 아직 시장이 성숙하지 못했고 트렉 레코드도 많지 않아 운용사를 선별하는 데 특히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한 기관투자자 관계자는 “사모대출을 대체자산 중에서 유망 자산군으로 보고 있지만 전체적인 시장 유동성이 축소되며 기업 부도 위험이 커지는 등 불확실한 면도 분명히 있다”며 “운용사별 포트폴리오 구성 및 관리 역량 차이가 클 것이기 때문에 위기 대응 능력이 있는 운용사를 선별해 투자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B공제회 관계자는 “100곳을 투자했을 때 몇 개 기업이 망할 수는 있겠지만 나머지가 과거보다 3~4배 이상의 금리를 주니 PDF를 ‘할 만한 투자’로 본다”며 “다만 신용리스크를 잘 가려낼 검증된 운용사를 선정해야하고 리스크 분산이 잘 되어야 하는 전제조건이 붙는다”고 말했다.
이어 “사모대출은 국내에서 거의 활성화되지 않은 시장이라 트렉레코드가 좋은 운용사에만 돈이 몰리는 등 빈익빈 부익부가 심하다”고 말했다.
C공제회 관계자는 “이미 미국 국채 등의 금리가 높은 편이기도 하고, 작년 한창 올랐던 회원들의 자금 수요 증가와 급여율 인상 등 문제도 안정화된 상태라 굳이 사모대출을 본격적 늘기 위한 검토를 하고 있지는 않다”고 말했다.
국내 사모대출 시장은 아직 태동기인데 해외에서는 벌써부터 급격한 성장에 따른 '경고등'도 하나둘 켜지는 모습이다.
지난 6월 파이낸셜타임즈(FT)는 국제신용평가사 무디스를 인용해 1조4000억달러(약 1836조원)에 달하는 세계 사모대출 산업이 심각한 도전에 직면했다고 보도했다. 이자 부담이 커지면서 디폴트를 선언하는 기업이 급증하고 있어 사모대출 시장이 부실 요인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졌다는 것이다.
FT는 최근 글로벌 대형 PEF 운용사들이 과거 투자했던 기업들을 경쟁사의 PDF에 매각하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고 전했다. 베인캐피털, KKR, 칼라일, 골드만삭스의 PEF 등이 최근 경쟁사의 신용 사업부(PDF 운용 사업부)에 과거 투자했던 기업을 넘기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고 알려진다. FT는 최근 PEF의 투자기업들의 실적이 부진과 사모대출 시장의 급성장이 이 같은 현상을 불러왔다고 분석했다.